<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끔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 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 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
감수성이 한창 예민하던 학창시절에 그러 서럽고 나만 억울한 기분이 들면서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한없이 웅크리고만 싶을 때 기형도 시인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우울한 감정선을 공감케 하여 위로가 되었습니다. 요절한 시인이 남긴 시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좋아해 읽히고 외워집니다. 저 역시 제가 좋아하는 시인 ‘잎 속의 검은 입‘과 ‘빈 집‘을 자주 낭송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위로가 되는 기형도 시인의 시집과 함께 다가올 봄을 기다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