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15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15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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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권의 핵심은 민무휼 민무회 형제의 실각이다. 책의 절반이 민씨들을 탄핵하는 상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만큼 조정의 분위기가 무척 살벌했다. 사실 무휼과 무회는 형인 무구와 무질에 비해 다소 억울하게 희생됐다. 무구와 무질은 태종 즉위에 큰 공을 세웠고 이후 군권을 장악하며, 붕당을 이루고 세자에 기대어 '권력'을 탐했기에 처벌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무휼과 무회는 권력을 노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형들이 반역죄로 죽었기에 전전긍긍하며 조심스레 지낸 것 같은데, 화근은 역시 '말' 때문이었다.

 

 민씨들 중 가장 불쌍한 인물은 셋째인 무휼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사단이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민무회의 입방정이기 때문. 태종 역시도 두 처남의 그릇이나 자질이 형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거친 무회의 성정이 다소 거슬린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편전에서도 이숙번을 비롯한 근신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데 "무회가 성질이 다소 거칠다."라고 언급할 뿐이니 민무휼 입장에서는 동생을 잘 못 둬서 같이 죽음에 이른 셈이다. 몇몇 사이트에는 민무회가 아닌 민무휼이 염치용의 노비 송사 불만을 듣고 충녕에게 옮겼으며, 중전 민씨 편전에서도 세자에게 거친 항의를 한 인물로 설명하던데, 실록을 살펴본 바 무휼은 무회의 거친 입방정을 막으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사건의 중심인물은 무휼이 아닌 무회였다.

 

 사실 무휼과 무회는 세자 양녕의 고변만 없었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당시 세자는 공부를 게을리하고 큰아버지인 정종의 애첩과 관계를 맺으며 막장 일탈을 거듭하고 있었다. 태종은 이런 세자의 일탈에 강한 불만을 가졌고, 세자 역시도 호랑이 같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일이 터진 것이다. 외삼촌들이 탄핵을 받으니 세자는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구태여' 2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 외숙들을 죽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따져본다면 세자 양녕이 무휼, 무회의 목숨을 끊은 것이나 다름없다.

 

 태종 이방원을 다룬 드라마인 '용의 눈물'은 명작으로 알려졌는데, 극 중에서 양녕은 외숙들을 감싸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다르다. 실록에 기록된 양녕은 오히려 외숙들을 죽이는데 앞장섰으며 국문에 대질하며 죄를 이끌어내는데 큰 공헌을 했다. 사람들은 처남을 죽인 태종만을 기억하는데, 무휼과 무회의 죽음은 세자 양녕이 외숙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으로 해석하는 게 합당하다. 이렇듯 잘 만든 웰메이드 사극도 역사왜곡으로부터 피해 갈 수 없었으니 연말에 방영 예정인 '태종 이방원' 드라마에서는 또 어떤 왜곡이 나올지 새삼스레 걱정이 앞선다.

 

 아무튼 양녕이 자기 외삼촌들을 죽이면서까지 유지하려고 했던 세자 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우 충녕을 향하게 되는데... 이번 권에서도 충녕의 활약이 '새삼스레' 부각된다. 술자리에서 남재의 지나친 발언, 누나인 경안궁주의 죽음에서도 굳이 충녕에 대한 칭찬이 노골적으로 기록된 것은 '대권에 대한 충녕의 정치적 야심'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다르게 생각해 보자면 《태종실록》은 세종조에 편찬된 책이니 현재 권력에게 바치는 사관의 애교 있는 아부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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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14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14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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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조가 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정리하자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토지문제, 두 번째는 노비 문제다. 조선은 고려의 부조리를 비판하며 새운 신생국이기에, 이 두 문제를 해결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개국 초, 태조와 정도전, 조준이 집중한 부분은 토지문제였다. 권력을 잡은 신진사대부는 '과전법'을 통해 기존의 불합리한 토지제도를 대폭 개혁하였다.

 

 왕좌를 두고 벌어진 2차례의 난 이후, 집권한 태종은 아버지 태조가 완수하지 못한 노비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생각해야만 했다. 노비제가 왜 문제일까? 고려 말 사찰과 권문세족들은 노비를 많이 거둬들여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당시 여자 노비와 관계하여 나오는 자식들은 여자 노비의 주인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평소에 집안의 가노로 활용되었지만, 위급 시에는 사병으로 활용되었다.

 

 국가 입장에서는 사노비가 많아질수록 부담이 커졌다. 사노비는 세금을 내지 않으며, 귀속된 주인에게만 충성하며, 사병으로 활약할 수 있기에 부담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성계나 이방원 역시 사병으로 권력을 쟁취한 이들이지 않은가. 이렇다 보니 신권의 강세와 깊은 관련이 있는 노비제는 군주라 할지라도 손 데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였다. 태종은 서두르지 않았다. 집권 초에 노비제를 집중적으로 건드렸다간 기득권 사대부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차근차근 강화하며 재위 13,14년 차에 이르자 어느 정도 국정을 장악했다 판단한 태종은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하고 노비 송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그러나 변정도감의 역할은 노비 쟁송에 대한 업무를 담당할 뿐 노비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진 않았다.

 

 산재한 소송들을 보며 태종은 생각했을 것이다. 신하들이 왜 이렇게 노비를 확보하고 송사에 집착하는 것인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수단에 집착하기 마련인데 노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태종은 사노비를 줄이고 국가에 도움이 되는 양인층을 늘려 세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신권의 강세를 꺾는 방법을 고심했을 것이다. 그 결과 정립된 것이 바로 '종부법'이었다. 고려조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의 신분과 상관없이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 났다. 태종은 이를 바꿔 아버지가 양인이고 어머니가 천인이면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게 했다. 물론 이는 아버지의 신분이 어디까지나 양인 이상이 되는 경우에만 해당됐다. 그렇기에 태종이 선포한 종부법은 엄밀히 따지면 '종모법'을 근간으로 하되, '종부법'의 조항을 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분적인 적용이라고 하더라도 종부법 제정은 이전 시대의 사회 계급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양인의 수가 늘어날수록 부강해지고, 권신들의 세를 견제할 수 있으며, 노비들 입장에서도 신분 상승에 길이 하나 더 생기기 때문에 여러모로 득이 되는 정책이었다. 정리해보자면 태조 정권에서 정도전과 조준이 과전법을 통해 토지개혁을 이뤘다면, 태종은 종부법 제정을 통해 고려가 품고 있던 노비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했다. 토지제와 노비제의 개혁... 굵직한 두 사업이 태종 시기에 이르러 완수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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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13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13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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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권을 읽으면서 '태종의 자신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냥도 무척 잦았고, 상왕과 술자리도 유난히 많이 가졌는데, 취미생활과 여가생활의 빈도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에 대해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하지 않았다. 호패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된 것도 이 무렵이고, 학교 제도와 세세한 형법들, 그리고 효녀와 효부를 기리는 도덕을 적극 권면하여 유교적 규범을 강조하기도 했다. 관제 개편, 한양 천도, 외척 제거, 권신들 제거, 창덕궁 공사, 청계천 건설, 종묘 증축 등 재위 13년 이전까지 시행했던 정책들은 대체로 굵직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프로젝트들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자, 태종은 정국을 운영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은 모습이었고, 그런 자신감으로 취미생활인 사냥에 집착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권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이 태종의 인간적인 면모였다. 대체로 평탄하게 흘러간 한 해여서 그런지 정치적인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이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왔었다. 백성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 불교를 싫어하지만 중전이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대궐에서 불교 의식을 거행한 모습. 양녕의 일탈에 진노하다가도 결국은 처벌을 하지 않는 자식바보의 모습. 대간들의 청을 싫어하면서도 결국은 들어주는 모습... 등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피도 눈물도 없는 태종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인간적인' 면모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KBS에서 올 연말 '태종 이방원'을 32부작으로 만든다고 한다. 사람들의 여론은 '또방원' , '또말선초'라며 질린다는 의견과, 기대가 크다는 의견으로 팽팽하게 나뉜다. 아무리 정통을 표방한다 한들 분량이 제한적인 영상물에서 실록에 실려있는 태종의 인간적인 면모를 모두 다룰 순 없을 것이다. 결국 드라마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기에 태종이라는 인물을 단편적으로 표현하는 필연적인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태종이라는 인물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록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것이 우선이다.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보여준 태종의 다음 과제는 무엇일까. 권신으로 성장한 하륜과 이숙번에 대한 처결, 이후 하륜을 대신하여 정국을 이끌어갈 2기 관료진 구상, 그리고 남은 외척에 대한 경계를 통하여 권력의 안정화를 더욱 도모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태종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악역을 자처하며 안정적이고 탄탄한 군왕의 권력을 확보했지만, 이를 물려받을 양녕의 일탈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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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 - 하 관자
관중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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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상권의 리뷰에서도 밝혔듯 《관자》의 사상은 무척 다양하다. 흔히 몇몇 사람들은 《관자》를 두고 《한비자》와 같은 법가사상으로 분류하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다. 《관자》는 공자를 비롯한 유가의 왕도정치와도 다르고 법가의 패도정치와도 거리가 있다. 흥미롭게도 《관자》에서는 유가가 강조하는 도덕과 예의도 중시하고, 법가가 강조하는 법률 역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백성의 민생 역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민생을 구휼하는 데 있어 '경제정책'을 으뜸으로 손꼽는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가와 법가의 공통된 맹점은 바로 경제관이다. 두 사상 모두 국가의 운영을 철저하게 정치학, 통치학으로 접근하는데 반해, 《관자》는 경제학적 시각으로 정치를 접근하고 있다. 이 점이야말로 《관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자》에서는 정치를 흥하게 할 조건으로 백성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백성의 욕망이란 바로 의식주를 포함한 경제적인 실익을 뜻한다. 정치 문제를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시각. 이것은 바로 상인 출신이었던 관중이 제나라를 경제 정책을 통하여 강성한 나라로 만들었던 방법론과 일맥상통하다. 그렇기에 설사 《관자》가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은 아니더라도, 이런 부분을 통하여 독자는 《관자》라는 문헌이 관중의 사상을 토대로 정리되었다는 점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다.

 

 그럼 어떤 경제정책을 통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점은 상업을 중시한 것이다. 이 당시 대부분의 제자백가 철학서들은 경제정책에 대하여 농업을 강조하였다.(중농주의) 이는 유가와 법가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상인 출신인 관중은 상업의 유용성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어서 상업을 적극 진흥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자원을 융통성 있게 배분하려고 노력했다. 국가는 시장에 개입하여 수요와 공급을 통제하고 시세를 관장하였으며, 돈이 되는 소금과 철을 독점하여 국가의 자금을 충당하려고 하였다.

 

 게다가 《관자》에서는 분업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어서, 사농공상 4개의 계층의 거주지를 나눠서 분업화, 경쟁 유도를 통한 전문화를 도모하였다. 경기부양을 도모하기 위해 부자들의 소비를 적극 유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용품을 만드는 수공업에 종사하게 하여 실업을 극복했다. 이런 모습은 거친 비교가 되겠지만 미국 케인스의 수정 자본주의 정책과도 유사하다. 또한 대외적으로 문호를 적극 개방하여, 자국의 우수한 물산들을 외국에 유통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제나라의 시장은 열국의 상인들이 드나드는 국제 시장으로 거듭났다.

 

 이렇듯 제자백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관자》는 경제에 대한 부분을 무척이나 강조한다. 정치가 중요한 것일까 경제가 중요한 것일까? 단순하게 우열을 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피부로 와닿는 것은 아무래도 경제일 수밖에 없다. 동양고전을 읽으며 커다란 맹점 중 하나는 바로 경제에 대한 담론이다. 유가와 도가 법가는 모두 정치적인 입장은 뚜렷하게 내세우지만 이에 상응하는 경제에 대한 담론은 결여되어 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유가인데, 개인적으로 동양이 서양에게 뒤지게 된 핵심 중 하나가 바로 경제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한 시대 한 무제의 사상 일원화 정책 이후 중원에서는 유가를 숭상했으며, 이런 추세는 동아시아 국가들 전체로 확대되었다. 근대 이후 서구권에서는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하여 경제학을 발전시켰고, 이는 서구 열강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정책을 지탱하는데 커다란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경제에 문외한 유가 학문을 존숭하는 입장을 고수하였기에, 서구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했다. 만약 공자나 맹자의 유학이 아니라 관중의 《관자》를 존숭했더라면, 동양의 경제학도 크게 발전하지 않았을까. 한 가지 또 생각해 볼 점은 유학을 중원의 메인 철학으로 확정 지은 지도자는 전한의 무제인데, 무제 역시도 무조건적으로 '유학만을' 숭상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사회 규범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유학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지, 실제 무제의 통치는 법가적 성격이 강했다. 또한 무제는 《관자》의 실용주의 정책도 참고하여 받아들였는데, 그 일환으로 막대한 정복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소금과 철 등을 국유화하여 국가에서 독점하여 관리하였다. 무제 이후에는 소금과 철에 대한 경제 토론이 심오하게 펼쳐졌는데 이를 정리하여 《염철론》이라는 명작 경제 고전이 탄생했다. 아무튼 유학을 존중한 한 무제도 유가의 철학만을 신봉하지 않고 법가와 《관자》의 경제정책을 참고하고 받아들였다. 문제는 후대로 가면 갈수록 사상의 고착화, 보수화가 심해져서 유학이 아닌 다른 사상들은 무조건 이단으로 치부하고 배척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현대는 유학을 으뜸으로 내세웠던 전근대 사회와는 다르다. 자본이 우선이고 중심인 자본주의가 보편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관자》는 오늘날 더 빛을 볼 여지가 많은 고전이다. 비록 2700년이라는 시대적인 거리가 있지만, 이익과 경제라는 측면을 우선하고 중시하는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동양의 최초 경제학서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이 책을 탐독할 가치는 충분하다.

 

※. 《관자 하》 권의 구성은 35장 치미에서 86장 경중 경까지 번역됐다. 나머지 부분은 상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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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 - 상 관자
관중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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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철학의 아버지가 소크라테스라면 동양 철학의 아버지는 공자를 손꼽는 것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상사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 소크라테스나 공자의 철학도 앞선 시대의 선각자들의 사상이 있었기에 꽃피울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관자》의 저자로 알려진 관중은 공자보다 앞선 시대의 사람이었으며, 그의 사상은 공자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공자는 선대에 활약한 관중에 대해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질투였고 또 하나는 동경이었다. 공자의 어록집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는 공자의 말과 행동을 최대한 찬양하며 기록했는데, 제자들이 그렇게 신경 쓰며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중에 대한 공자의 질투심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공자는 왜 관중을 그토록 질투했으며, 왜 그토록 동경한 것일까. 우선 질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공자의 철학은 인으로 대표되는 유가 사상으로 형식적인 예를 높이고 위계와 질서를 바로잡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관자》에 나온 관중의 철학은 공자의 그것과 무척 상이하다. 관중은 사상가이기 이전에 정치가였다.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다분히 실용적이었다. 공자의 철학은 현실주의를 '추구'하였지만, 허례허식과 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관중의 철학은 추구를 넘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현실을 대변하는 성격을 가진다. 이렇다 보니 철학적, 사상적, 학술적으로 볼 때에는 공자의 사상은 성공했지만,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관중은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으며, 자신이 모신 왕에게 중원의 패자 자리를 선사했다.

 

 따라서 공자는 자신의 철학과는 상반되지만, 현실에서 성공한 정치가 관중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공자는 정치적 야심이 많았기에, 열국을 주유하며 자신의 이상과 철학을 실천하고자 노력했지만 끝내 시대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러나 관중은 공자의 방법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현실에서 성공했다. 공자에게 있어서 이는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며, 현실에서 성공한 관중의 모습과 실패한 자신의 모습도 많이 비교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공자는 관중의 부도덕한 면을 물고 늘어잡아 정신승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관중은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철학가, 경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관중의 사상과 관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책이 바로 《관자》라고 전한다. 학계에서는 이 책의 일부분이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이라고 규정한다. 역자는 《관자》를 상가(商家 - 상업과 관련된)로 규정하고, 제자백가에 있어서 최초의 경제학자로 칭송한다. 실제로 관중은 제나라를 다스릴 때, 농업보다는 상업을 적극 권장하여 부강을 이뤘다. 이는 농업을 중시하는 유가의 입장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제나라는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였기에 상업 활동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관중은 부유함이야말로 국력의 가장 큰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예의와 염치도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때에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은 배가 고파도 곧 죽어도 인간답게 인과 예를 따르겠다는 공자의 사상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관자》가 경제학과 관련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자》에는 유가, 도가, 음양가, 병가 등등의 여러 제자백가 철학들이 잡탕처럼 섞여 있다. 개인적으로 《관자》는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이 아니라, 춘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관중의 문하나 조국에서 활약한 여러 문인들의 생각들이 섞인 책이라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책의 챕터가 잡다하게 섞여있다는 점, 관중은 춘추시대에 활약했는데 전국시대에서 볼 수 있는 문체와 관념들이 보이는 점 등으로 볼 때 후대인이 관중이라는 이름을 빌려 가필한 책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겠다.

 

 그러나 《관자》가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이 아니라고 해서 책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중국의 지자들은 정치와 관련된 고전을 읽을 때 《관자》를 필독서로 여겼다. 삼국시대의 유비와 제갈량 역시 《관자》, 《한비자》, 《상군서》 등을 무척 애독했으며, 후주 유선에게도 읽을 것을 추천하였다. 관중이 직접적으로 저작을 하진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이 책 안에 녹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다 보니 중국과 일본에서는 《관자》를 주기적으로 연구하고 애독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조선 이후로 사상이 성리학 유일주의를 추구하여서, 《관자》와 같은 실용 고전을 애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관자》라는 책이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날 시중에 완역된 《관자》는 총 2개인데, 하나는 지금 리뷰하고 있는 신동준 선생님의 역본이며, 또 하나는 4명의 역자가 공동으로 옮긴 책이다. 두 책 모두 소장하고 있기에 비교해보자면, 주석이나 해설은 확실히 신동준 선생님의 역본이 뛰어나다. 역자는 특히 《한비자》나 《상군서》와 같은 패도와 관련된 제자백가를 중시하는 입장인데, 이는 유가에 치우친 전통적인 학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기에 나는 패도와 관련된 중국 고전을 읽을 때에는 신동준 선생님의 역본을 꼭 챙겨 보는데, 《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관자》 상권에는 역자의 자세한 해설과 분석이 200페이지나 할애되어 있는데, 이 내용만 읽더라도 《관자》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사상을 파악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책은 총 86장으로 나눠졌는데, 상권의 경우 1장 목민에서부터 34장 정언까지 번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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