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14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14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려조가 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정리하자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토지문제, 두 번째는 노비 문제다. 조선은 고려의 부조리를 비판하며 새운 신생국이기에, 이 두 문제를 해결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개국 초, 태조와 정도전, 조준이 집중한 부분은 토지문제였다. 권력을 잡은 신진사대부는 '과전법'을 통해 기존의 불합리한 토지제도를 대폭 개혁하였다.

 

 왕좌를 두고 벌어진 2차례의 난 이후, 집권한 태종은 아버지 태조가 완수하지 못한 노비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생각해야만 했다. 노비제가 왜 문제일까? 고려 말 사찰과 권문세족들은 노비를 많이 거둬들여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당시 여자 노비와 관계하여 나오는 자식들은 여자 노비의 주인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평소에 집안의 가노로 활용되었지만, 위급 시에는 사병으로 활용되었다.

 

 국가 입장에서는 사노비가 많아질수록 부담이 커졌다. 사노비는 세금을 내지 않으며, 귀속된 주인에게만 충성하며, 사병으로 활약할 수 있기에 부담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성계나 이방원 역시 사병으로 권력을 쟁취한 이들이지 않은가. 이렇다 보니 신권의 강세와 깊은 관련이 있는 노비제는 군주라 할지라도 손 데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였다. 태종은 서두르지 않았다. 집권 초에 노비제를 집중적으로 건드렸다간 기득권 사대부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차근차근 강화하며 재위 13,14년 차에 이르자 어느 정도 국정을 장악했다 판단한 태종은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하고 노비 송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그러나 변정도감의 역할은 노비 쟁송에 대한 업무를 담당할 뿐 노비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진 않았다.

 

 산재한 소송들을 보며 태종은 생각했을 것이다. 신하들이 왜 이렇게 노비를 확보하고 송사에 집착하는 것인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수단에 집착하기 마련인데 노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태종은 사노비를 줄이고 국가에 도움이 되는 양인층을 늘려 세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신권의 강세를 꺾는 방법을 고심했을 것이다. 그 결과 정립된 것이 바로 '종부법'이었다. 고려조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의 신분과 상관없이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 났다. 태종은 이를 바꿔 아버지가 양인이고 어머니가 천인이면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게 했다. 물론 이는 아버지의 신분이 어디까지나 양인 이상이 되는 경우에만 해당됐다. 그렇기에 태종이 선포한 종부법은 엄밀히 따지면 '종모법'을 근간으로 하되, '종부법'의 조항을 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분적인 적용이라고 하더라도 종부법 제정은 이전 시대의 사회 계급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양인의 수가 늘어날수록 부강해지고, 권신들의 세를 견제할 수 있으며, 노비들 입장에서도 신분 상승에 길이 하나 더 생기기 때문에 여러모로 득이 되는 정책이었다. 정리해보자면 태조 정권에서 정도전과 조준이 과전법을 통해 토지개혁을 이뤘다면, 태종은 종부법 제정을 통해 고려가 품고 있던 노비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했다. 토지제와 노비제의 개혁... 굵직한 두 사업이 태종 시기에 이르러 완수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