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15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15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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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권의 핵심은 민무휼 민무회 형제의 실각이다. 책의 절반이 민씨들을 탄핵하는 상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만큼 조정의 분위기가 무척 살벌했다. 사실 무휼과 무회는 형인 무구와 무질에 비해 다소 억울하게 희생됐다. 무구와 무질은 태종 즉위에 큰 공을 세웠고 이후 군권을 장악하며, 붕당을 이루고 세자에 기대어 '권력'을 탐했기에 처벌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무휼과 무회는 권력을 노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형들이 반역죄로 죽었기에 전전긍긍하며 조심스레 지낸 것 같은데, 화근은 역시 '말' 때문이었다.

 

 민씨들 중 가장 불쌍한 인물은 셋째인 무휼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사단이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민무회의 입방정이기 때문. 태종 역시도 두 처남의 그릇이나 자질이 형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거친 무회의 성정이 다소 거슬린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편전에서도 이숙번을 비롯한 근신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데 "무회가 성질이 다소 거칠다."라고 언급할 뿐이니 민무휼 입장에서는 동생을 잘 못 둬서 같이 죽음에 이른 셈이다. 몇몇 사이트에는 민무회가 아닌 민무휼이 염치용의 노비 송사 불만을 듣고 충녕에게 옮겼으며, 중전 민씨 편전에서도 세자에게 거친 항의를 한 인물로 설명하던데, 실록을 살펴본 바 무휼은 무회의 거친 입방정을 막으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사건의 중심인물은 무휼이 아닌 무회였다.

 

 사실 무휼과 무회는 세자 양녕의 고변만 없었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당시 세자는 공부를 게을리하고 큰아버지인 정종의 애첩과 관계를 맺으며 막장 일탈을 거듭하고 있었다. 태종은 이런 세자의 일탈에 강한 불만을 가졌고, 세자 역시도 호랑이 같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일이 터진 것이다. 외삼촌들이 탄핵을 받으니 세자는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구태여' 2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 외숙들을 죽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따져본다면 세자 양녕이 무휼, 무회의 목숨을 끊은 것이나 다름없다.

 

 태종 이방원을 다룬 드라마인 '용의 눈물'은 명작으로 알려졌는데, 극 중에서 양녕은 외숙들을 감싸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다르다. 실록에 기록된 양녕은 오히려 외숙들을 죽이는데 앞장섰으며 국문에 대질하며 죄를 이끌어내는데 큰 공헌을 했다. 사람들은 처남을 죽인 태종만을 기억하는데, 무휼과 무회의 죽음은 세자 양녕이 외숙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으로 해석하는 게 합당하다. 이렇듯 잘 만든 웰메이드 사극도 역사왜곡으로부터 피해 갈 수 없었으니 연말에 방영 예정인 '태종 이방원' 드라마에서는 또 어떤 왜곡이 나올지 새삼스레 걱정이 앞선다.

 

 아무튼 양녕이 자기 외삼촌들을 죽이면서까지 유지하려고 했던 세자 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우 충녕을 향하게 되는데... 이번 권에서도 충녕의 활약이 '새삼스레' 부각된다. 술자리에서 남재의 지나친 발언, 누나인 경안궁주의 죽음에서도 굳이 충녕에 대한 칭찬이 노골적으로 기록된 것은 '대권에 대한 충녕의 정치적 야심'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다르게 생각해 보자면 《태종실록》은 세종조에 편찬된 책이니 현재 권력에게 바치는 사관의 애교 있는 아부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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