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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아토포스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14년 8월
평점 :
제목을 봤을 때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문학'이라는 다소 익숙한 단어와, '아토포스'라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자아내는 미묘함. 그런 미묘함이 있는 책이었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그런 제목. 그리고 쉬울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았던 책의 내용. 책의 모든 속성이 이 미묘한 제목에 나타나져 있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이 달은 굉장히 바빴던 날이었다. 지방으로 여러 번 나가기도 했었고, 여유도 없었었던 한 달이었다. 그래서 책을 볼 시간이 없었고, 신간 평가단 리뷰 기한이 끝날 때 즈음에서야 나는 책을 펴 볼 수 있었다. 미묘한 제목의 책을 집어 들고 펼쳤을 때, 나는 당혹했다. 서문부터 책은 굉장히 불친절한 느낌을 자아냈기 때문이었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진은영은 이 책에서 '문학, 아니 나아가 예술과 정치의 진정한 만남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제로 보면 굉장히 흥미롭고 관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런 주제와는 다르게 책은 상당히 난해했다.
첫 번째 이유로는 범주다. 일단 다루고 있는 부분이 문학, 그리고 문학을 넘어선 예술, 철학 그리고 사회현상인 윤리, 커뮤니케이션(소통), 그리고 정치 등등의 굉장히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에 이 책은 문학과 정치 두 축의 올바른 소통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물론 맞다. 주 주제는 그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주제를 다루면서 여러 분야를 언급하여 종횡무진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일단 범주가 굉장히 다양하다는 점이 다소 나에겐 버겁게 느껴졌다. 원래 학문은 간 학문적인 고찰을 해야 함이 옳은데, 이 책은 한정된 지면에 비해 상당히 많은 범주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로 책의 서술 방식이다. 저자는 시인이며, 철학자다. 시인과 철학의 공통점은 상징과 추상성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책의 서술은 그런 상징과 추상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표현은 나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졌으며, 그녀의 논의보다도 더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그녀가 인용을 했던 무수한 철학자들의 통찰이었다. 사실 글을 읽다가, 몇 번이나 같은 문장을 다시 읽는 것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만큼 문체 서술이 나에겐 어렵게 다가왔었다.
세 번째로는 책의 불친절한 편집이다. 이 책에는 무수한 미학 용어들이 나온다.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정도야 애교라고 할 만 하지만, 아나크로니즘, 스노비즘 등등의 용어 앞에서 나는 무던히 스마트폰을 들고 검색을 해야만 했다. 저자는 이 책을 썼을 때, 독자는 이 정도는 지극히 알 것이라고 썼을지 모르겠지만, 대중 저술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다. 최소한 출판사에서 각주나 미주로 용어 풀이를 해 줬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을 끊어서 읽어야만 했던 나는, 책이 전개하는 관념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 해서, 같은 구절을 몇 번을 재독하기도 했으며, 때론 피곤한 몸으로 책을 펴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졸아, 지하철 몇 정거장을 지나친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책은 상당히 난해했다.
그러나 나는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이런 불편함을 떠나서, 책은 상당히 심도 있고 진지했고, 열정을 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저자의 고민과 사색,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름의 논쟁과 해답을 담고 있는 저자의 열정이 담겨 있는 책이다. 2008년을 기점으로 저자가 생각한 문학과(예술) 정치에 대한 고민, 기존 사회 통념에서의 문학과 정치의 관점, 자신의 문학관과의 지향해야 할 반향과 현실참여에 대한 생각, 기존 문학계의 흑백논리에서부터 새로운 인식, 제3의 길을 모색하고자 했던 그녀의 땀방울. 그것들의 최종 결실이 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그녀의 응축된 사색을 한 번에 이해하기란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고민하던 그녀에게서 선물 상자가 떨어졌다. 바로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였다. 그의 저서를 본 그녀는 비로소 문학이 어떻게 정치와 연애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았다. 랑시에르가 추구하는 정치와 예술
'그(랑시에르)에게 정치는 감각적인 것을 새롭게 분배하는 활동, 즉 감성적 혁명을 가져오는 활동에 다름 아니다.' - 26쪽
'랑시에르는 새로운 감성적 분배에 참여함으로써 낡은 분배 형태와 불일치하고 그와 맞서 싸우는 한에서, 예술은 정치적인 것이 된다고 주장한다.' - 27쪽
핵심은 감성적 혁명, 즉 예술은 대중에게 감성적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며, 기존의 규정한 감성적 조직을 교란시키고, 낡은 분배를 타파해야만 한다. 그것은 정치가 지향해야 하는 목적이고, 예술 역시도 그렇게 대중에게 다가가야 하며, 대중에게 기존의 형성된 가치를 뒤흔들어 생각할 수 있도록의 감성을 심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예술은 한없이 정치적일 수 있다. 양자의 동일 속성(감성적 혁명)이 공명할 때 미학의 정치가 추구된다는 설명.
궁극적으로 정치와 예술은 감성적 혁명을 통해 '미학의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 이 결론을 도출하며 기존의 정치관과 기존의 문학관 그리고 문학과 정치를 둘러싼 시선들에 대해 저자는 조용한 비평을 가하고 있다.
저자는 랑시에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학계와 정치의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인상적인 문제는 바로 '윤리'를 꼽고 나선다. 랑시에르(그리고 저자인 진은영)는 문학과 정치를 규제하는 것에는 윤리라는 가치가 있으며, 그 윤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리에 입각한 가치판단은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나눠버리고 규정해버리는 부분을 통해, 문학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견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랑시에르는 윤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윤리를 대체할 모럴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윤리는 평가하고 선택하는 행동 원리를 이미 존재하는 삶의 양식(에토스)에 용해시켜 버리는 체류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 133쪽
'모럴이란 선과 악에 대한 관습적 해석들에 대항하여 새로운 감각적 분배를 만들어 내는 정치적 활동을 의미한다.' - 134쪽
이렇게 윤리의 한계를 넘어선 모럴이라는 관념을 문학과 예술은 추구해야 한다고 저자와 랑시에르는 말했다. 이것을 책에서는 '침입의 모럴'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것들을 추구하면서 모럴이 윤리화로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모럴을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책의 제목이라 할 수 있는 '문학의 아토포스' 이 기묘한 단어도, 문학과 예술이 지향해야 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아토포스는 그리스어 토포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여기서 'a'는 부정과 결여의 접두사로서, 아토포스는 비장소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단어는 어떤 장소에서 고정될 수 없어서 그 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로 소크라테스의 대화자들이 그에게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 -179쪽
'정체가 모호한 공간, 문학적이라곤 한 번도 규정되지 않은 공간에 흘러들어 그곳을 문학적 공간으로 바꿔 버리는 일. 그럼으로써 문학의 공간을 바꾸고 또 문학에 의해 점유된 한 공간의 사회적-감각적 공간을 또 다른 사회적 -감각적 삶의 공간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문학의 아토포스이다. 이렇게 떠도는 공간성. 그리하여 결코 확장할 수 없는 방식으로 순간의 토포스를 생성하고 파괴하여 휘발시키는 일에 예술가들이 매혹될 때 우리는 그들을 '공간의 연인'이라 부른다. 이 연인- 작가들에 의해 작동하는 문학의 아토포스는 우리가 미학의 정치라고 불렀던 것의 또 다른 이름이다. '
긴 문장이지만 사실 두 번째 인용 구절에 이 책의 주제가 나와있다. 규정되지 않은 공간으로 문학이 흘러들어 문학으로 바꾸는 것, 그것은 책에서 나온 대로, 공간적인 부분 뿐만이 아니라 작품의 기록에 대해서도 유효했다. 텍스트에 기록된 글을 넘어선, 구두 문학에 대한 인식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런 문학적이지 않은 곳을 바꾸고 기존의 감각적 공간을 감성적 혁명을 통해 새로운 감각적 공간으로 바꾸는 일말의 모든 것을 문학의 아토포스라고 정의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아름다울 것 같다. 예를 들어 문학이 아닌 공간인 다른 일상의 공간에서 문학과 예술이 스며드는 것, 예를 들면 벽화마을이라던지 이런 부분은 굉장히 아름다운 예이다. 더불어, 예에서 들었듯, 논쟁이나 투쟁의 공간에서도 과격한 이미지의 투쟁적인 모습보다는, 문학적인 시 낭송을 통한 부분이라던가, 조용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이미지의 문학이 곁든 투쟁은 생각만으로는 아름다울 것 같다.
즉 이 책의 제목 문학의 아토포스라는 것은, 미시적으로는 문학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을 응축시켰고, 마지막 단락에서 볼 수 있듯, 문학의 아토포스는 결국 거시적으론 궁극적인 예술과 문학 정치가 추구하는 '미학의 정치'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과 특히 랑시에르의 논의를 인용하며 '문학'이 어떻게 '정치'와 밀애를 해야 하는가를 고찰하고 생각했었다. 그 사색의 흐름을 책은 나타내고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결론과 이러한 결론에 다다르기까지의 문제점 그리고, 바람직한 길까지도 제시하고 있었다.
책이 전달하는 핵심은 결국, 문학(예술)과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고찰 그리고 저자의 문학관에 의거하면 이 저술을 통해 대중들의 통념에 있는 정치와 문학 인식을 깨부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분명 그래서 대중 저술로 책을 냈을 것이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그녀의 고민에 해답을 준 랑시에르라는 철학자를 소개하는 입장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책은 두 목적 어느 것에도 부합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 문제 제기 자체는 옳고 설사 랑시에르라는 철학자의 논의가 참고할 만 하고 기존의 통념을 깰 대안이라 하더라도, 이 책은 너무 불친절하다. 대중이 이 책을 이해하기에 굉장히 난해하며, 대중이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으면 어쨌든 대중의 감성적 혁명을 일으키기엔 무리가 있다. 랑시에르라는 해답을 이렇게 불친절하게 설명해놓는다면 감성적 혁명은 고사하고 싸늘한 시선을 부르지 않을까? 저자의 깊은 숙고와 저자의 깊은 논의, 사색을 좀 더 친절하게 설명을 했으면 어떨까 현학을 조금 덜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줬으면 싶은 '깊은' 아쉬움이 있다. 어쨌든 이 책은 대중 저술로 출판된 책이 아닌가? 이 불친절한 논의 덕분에 기존 사회에 주목받을 법한 '랑시에르'의 이론마저도, 결국은 학계 내부에서만 머물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대중과 함께 하는 감성적 혁명과 궁극적으로 저자가 추구하는 '미학의 정치'와도 떨어지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다소 급하게 읽고 시간에 치여 읽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다시 읽은 나의 과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난해했었다. 원래 나는 철학적인 주제의 책을 읽을 때 두꺼운 철학 책이 아니면, 쉬는 날 쉬지 않고 책을 쭉쭉 읽어가서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는 독서를 선호하는데 이 책은 그렇게 읽지 못 했다. 책은 솔직하게 말해서 미와 정치를 규정한 하나의 철학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분야의 알라딘 신간 평가단을 하면서, 예술에 대한 책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런 핵 폭탄급의 예술 책을 만나게 돼서, 한 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즐겁기도 했었다. 책의 난해함을 떠나서, 문학과 예술에 대해 이러한 시도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문학과 예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며, 어쨌든 저자의 글을 보며, 저자가 굉장히 문학의 길에 대해 노력하고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는 문인이라는 점도 알았다.
어쨌든 한 줄로 요약하자면 '불친절하지만 의의는 있는 책'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