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치킨'이라는 먹거리는 요즘 대한민국의 국가공인 마약이라고까지 알려진 먹거리다. 식욕이 없거나, 밥 먹기 귀찮을 때,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 1순위로 생각나는 것이 '치킨'이다. 여기에 맥주까지 곁들인다면, 흔히 말하는 환상의 '치맥'이 완성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러 사람의 기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데다, 아이들에겐 콜라를, 어른들에게는 맥주만 있다면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우리나라의 '치킨'이다. 저자는 이런 치킨에 대하여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책은 평이하게 잘 읽혀나갔다. 음식을 주제로 한 인문서는 내 개인적인 느낌일지 모르겠으나, 다른 분야의 인문서들보다도 진입 장벽이 친숙하고 부담이 없는 느낌이다. 이 책도 그랬다. 평이한 서술과 그러면서도 조곤조곤하게, 치킨과 치킨을 둘러싼 모든 부분을 설명하고 있었다.
책에는 치킨에 대한 유래와 치킨에 대한 역사를 시작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치킨에 대한 오해들을 바로잡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나라에서의 치킨의 역사,(백숙 - 전기구이- KFC를 시작으로 후라이드의 전성시대 - 양념치킨 - 그리고 다시 후라이드), 후라이드치킨의 종류(크리스피 치킨, 엠보 치킨, 민무늬 치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치킨과 맥주의 그 필연적인 만남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시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롯데 마트의 통큰 치킨'과 '대구 치맥 페스티벌', '조류 독감'에 대한 치킨 업계의 실태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하게 밝혀놓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2장의 '치킨집 사장으로 사는 것은'이라는 대목과 마지막 소챕터의 '양계유감' 즉 하림이라는 기업의 횡포에 대한 비판이 아닐까 싶다.
책은 치킨이라는 문화적 콘텐츠를 가지고 통시적으로는 치킨의 역사와 유래, 그리고 한국의 치킨의 발자취를 고찰하고 있었고, 공시적으로는 현대 치킨의 현황을 살피며, 프랜차이즈화, 기업화된 치킨의 현 실태와 그에 따른 부분들을 고찰하고 있었다. 즉 전자는 정보제공이라고 할 수 있겠고 후자는 치킨으로 알아볼 수 있는 현재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의 최종적인 칼날은 '자본주의화' 된 프랜차이즈 치킨의 부작용을 향해 겨누고 있었었다.
내가 성인이 된 시점에는 이미 치킨이라는 존재가 사회에 '보편적으로' 들어왔던 문화였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명동의 전기구이 치킨도 생소하며, 사실 KFC도 친숙하지 않다. 내가 친숙한 브랜드는, 교촌, 네네치킨, BBQ 등의 상업주의의 끝판왕을 달리는 프랜차이즈 치킨들만 각인되고 있었다. 그래서 치킨의 역사를 읽을 때, 공감을 하기보단, 내 이전 세대가 이런 치킨들을 먹어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나에게 있어 치킨이란 '크리스피 치킨' 만이 유일한 후라이드치킨이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엠보 치킨', '민무늬 치킨'을 보며, 후라이드치킨이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기도 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엠보 치킨'이나 '민무늬 치킨'의 존재를 알더라도 쉽게 먹을 수 있지 않다. 이미 시장은 '크리스피 치킨'에 장악당했으니까,
치킨과 맥주에 대한 고찰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치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맛은 원재료인 닭의 맛보다는 '튀김'의 맛이다. 뜨겁고 바삭한 맛의 치킨에 원재료의 닭 맛은 중요하지 않는다. 그저 닭은 냉장육, 국내산 닭이면 오케이인 것이 치킨의 현주소다. 맥주 역시도 특유의 보리 식감을 느끼기보단, 과한 탄산과 차가운 맛으로 원 재료의 맥주 맛을 느끼지 못한다. 닭의 느끼함, 그리고 튀김의 느끼함을 강한 탄산을 가진 차가운 맥주가 잡아주는 시스템, 그것이 바로 치맥의 탄생 비결이었다. 그 맛의 비결 앞에 너 나 우리 할 것 없이 중독되어 갔다고 책은 설명한다. 맥주를 못 먹는 어린아이는 맥주 대신 콜라를 먹는다.
책을 읽으며 정리해 보건대, 치맥의 본질적인 맛은 닭의 맛과, 음료의 풍미 짙은 맛이 아닌, 뜨겁고 바삭한 기름 맛과 그것을 중화시키는 차가운 탄산의 맛, 그것이 본질이었다. KFC가 우리나라에서 기를 못 편 것도 치킨에 짝꿍인 맥주를 판매하지 못해서라고 분석하는데 일리 있는 말이었다.
가장 핵심적인 비평을 담고 있는 2장, 2장의 주제는 프랜차이즈 치킨점 사장들의 고뇌와 일상을 담고 있었다. 대기업을 다니는 친구도 숱하게 술자리에서 지껄이는 말이 이것이다. '임원이 되지 못하면 퇴직금 두둑하게 받아서 닭이나 튀기며 살아야지.' 그 녀석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기업을 위해 평생 '을'의 입장으로 일했으나 '갑'의 입장인 임원이 되지 못했으니, 말년엔 자신만의 가게를 차려서 '갑'이 되겠다는 심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말년에는 뭐... 치킨이나 피자집을 해야겠지...
그러나 이 책을 보는 순간 그런 기분이 싹 사라졌다. '갑'의 희망을 걸고, 자영업을 시작한 치킨 업주들의 한 맺힌 이야기, 프랜차이즈의 이름을 따내기까지의 '어마어마한' 자본의 필요성, 그리고 성사되는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노예 계약'과 같은 불공정한 대우 등등을 저자는 잘 밝혀놨다.
고객에 치이고, 지사에 치이고, 본사에 치이고, 가뜩이나 많은 동종 업체들과의 전쟁에서 치이고, '갑'을 꿈꾸며 창업을 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울며 겨자 먹기로 창업을 한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치이면서 좌절한다. '사장님'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사연'이 있었다. '갑'이 아닌 어쩌면 '병'과 '정'의 위치가 바로 대한민국의 곳곳에 있는 치킨 업주들의 실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이 부분은 치킨 업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프랜차이즈 업체나, 편의점 업주들의 입장이겠다. 본사는 이윤을 극대화하고, 오로지 하나의 깃발 '이윤창출'이라는 목표 아래에 대부분의 짐을 가맹점에게 떠맡기고 있었다.
그것은 뒤 장에 나오는 닭의 유통과정, 육계 사업에서도 분분했다. 우리에게 신뢰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하림'은 그렇게 육계 공장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책에서 나오는 양계농민과의 인터뷰, 그리고 치킨 사장 업주와의 인터뷰는 보여주고 있었다. 기업의 극대화된 이윤 창출에 억눌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업을 해야 하는 그들의 고뇌, 인터뷰에서는 그 고뇌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갑'의 횡포가 두려워서 자신들의 이름을 인터뷰 글에서 떳떳하게 밝히지 못 했다. 구구절절하고 자세한 인터뷰 내용보다도 자신의 불편사항을 본사가 알까봐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부분,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가볍게 먹는 '치킨'은 그렇게 기업에겐 가볍게, 누군가에겐 무겁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책을 보며 아쉬웠던 점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책을 보며 행했던 의문 '그래서 어떻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자주 먹는 치킨에 대한 실태를 소상하게 자세하게 밝혀놓은 것은 높이 사야겠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를 해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저자의 생각으로는 치킨을 통한 현 상황의 고찰만을 다루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비평서들이 가지는 고질적인 문제는 이것이라고 본다. '비평에만 그치는 것' 다소 좀 부족하더라도 비평에 그치지 말고 자신의 해결책이나 방안 등등을 밝혔으면 어땠으면 싶다. 해답이 아니더라도, 그런 모범 답안들이 여럿 모이고 토의와 토론을 거쳐, 부조리한 사회현상의 해결책으로 귀결되는 법이니까
두 번째로는 내가 알기로, 프랜차이즈 치킨에 유통되는 닭에는 많은 약품을 첨가한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밝혔으면 어떨까 싶었다. 닭의 유통과정과 대리점들의 아픔 등은 소상하게 잘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프랜차이즈 치킨의 영양이나 약품 등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으니 그 부분이 조금 아쉽다. 그리고 닭의 영양에 대한 이야기도 없으니, 이 부분도 아쉽다. 치킨전이라고 이야기를 붙였으면, 치킨의 외부적인 사정과 역사, 그리고 현재의 치킨 그 자체의 분석도 이뤄져야 하는데, 역사성과 외부적 사정에는 소상하게 밝혔지만 정작 치킨의 영양이나 치킨에 첨가되는 약물 등등에는 소홀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어쨌든 그런 단점이 보이긴 했어도, 재미있게 읽은 책임에는 부인할 수 없겠다. 치킨이라는 음식을 통해 우리나라의 과거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 사회 현상 등을 살펴볼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앞으로, 이렇게 생활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로 사회나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주제의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음식으로 예를 들면 '라면'도 꽤나 재미있을 텐데...
오타 부분 지적(1쇄 기준)
94쪽 7번째 줄 닭도리탕 -> 닭볶음탕
120쪽 주석 첫째 줄 가겨 -> 가격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