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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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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구성체를 이루는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정치학>의 명언언 중 하나다. 이 구절을 국내 번역가들 대부분은 정치적인 동물로 해석하는데 천병희 선생님은 이렇게 번역하셨다. 

 

어쨌든 저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 속에는 인간 군집성의 긍정을 뜻하며 국가 구성체라는 말속에는 국가조직의 존재를 긍정하며 그 안에는 필연적인 조직의 우열을 긍정하고 있다. 조직의 우열이라는 말속에는 결국 권력의 불가피성이 숨어있다. 

 

가끔 이 말을 보면서 부조리를 느끼기도 했다. 그럼 모든 인간은 정치적인 행위의 핵심인 권력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저 격언이 부조리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 나의 저 생각에는 정치와 권력 추구를 하나로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권력 추구는 어쩌면 정치의 범주로 보자면 중심 범주이기보단 하위 범주에 달할 수 있겠다. 정치적인 행위는 권력 추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린 나의 관념에서조차 권력과 정치를 하나로 보고 있었고 정치의 생활성보단 정치에서의 권력 추구의 시선만 너무 의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권력 추구에 입각한 정치 해석은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행위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만 있었다. 

 

정치와 권력 추구를 따로 갈라놓고 생각을 해 보니 스스로 해답을 내릴 수 있었다. 내 결론은 세간에 잘 못 번역된 격언인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가 옳은 명제인 것 같다. 왜냐하면 정치라는 큰 범주의 틀 안에는 권력 추구도, 그리고 국가 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리고 생활 속의 정치 모든 면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최종적으로 저 잘못 번역된 명제를 긍정하고 싶었다. 

 

축구 비판서 리뷰에 웬 쓸데없는 말을 하냐고 할 법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 나면 왜 내가 이런 정치와 권력에 대한 말을 구구절절 쓰는지 이해가 갈 것이라고 본다. 

 

이 책을 보고 나서 나는 오역한 명언, 내가 스스로 긍정한 명언에 또다시 회의감이 들었다. 피파라는 조직은 인간의 가장 큰 즐거움 스포츠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런 피파 역시 집단을 이루면서 조직과 위계 권력이 당연히 생겨났다. 여기까진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이 맞다. 그러나 공공성이 강한 피파 내부가 이렇게 썩어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피파의 부패. 그것은 정치라는 요소를 권력과 권력욕으로부터 떨어트려 정치의 생활적 요소,긍정성을 상기시켜서 결론지었던 나 자신의 결정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결국 정치의 중심은 밑을 향하는 것이 아닌 위를 올라가려는 권력욕이 전부인 것이란 말인가...라는 회의적 시각이 내면에서 꿈틀거렸다 

 

이 책은 피파라는 조직이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운영됐는지에 대해 소상하고 자세하게 밝힌 르포르타주다. 솔직하게 말해 책을 봤을 때 느낀 점은 흥미는 있고 재미있는 주제긴 했으나 그렇게 썩 잘 읽히진 않는 모순적인 책이었다. 

 

그 썩 잘 읽히지 않는 이유에는 일단 책에서 말하는 방대한 인물들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 없다는 점이 크다. 저자와 역자는 책의 주석을 통해 방대한 인물들에 대해서 간결하게 설명했으나 사실 내가 이쪽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다소 많은 사람과 많은 단체들을 기억해가며 독서를 하진 못 했다. 

 

그러나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야망인 권력, 그 권력을 사적으로 올바르지 않게 추구하는 것대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고찰하고 있었다. 피파 마피아 책에서 본격적으로 까고 있는 사람은 피파 왕국의 절대군주 제프 블라터다. 블라터는 피파의 공공성을 방패로 사용해 자신의 탐욕을 극한으로 추구한다. 

 

책은 그런 블라터를 고찰하기 위해 블라터 위의 주앙 아벨란제를 파고들었으며 아벨란제의 스승이자 국제스포츠를 이윤추구의 도구로 만들어버린 전 아디다스 창업자 호르스트 다슬러까지 책에서 다루고 있다. 

 

다슬러를 시작으로 국제 스포츠계와 피파는 극심한 상업주의로 물들었다 그것을 이어받은 사람이 아벨란제였으며 아벨란제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블라터였다. 그들의 그라운드 뒤의 협작은 스포츠계를 더럽히고 있었다. 

 

책의 본문은 지독히도 역겨운 케케묵은 돈 냄새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인간의 사욕과 돈에 대한 욕심이 자행할 수 있는 모든 부정부패를 다 다루고 있었다. 배신, 로비, 협작, 굴복, 매수, 금권선거,돈 세탁 스폰, 막무가내 개최지 선정, 심지어 스포츠 내에 편파적 심판 동원 등등 온갖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있는 피파의 내부 사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스포츠 정신. 스포츠에 대해 우리는 공정성을 당위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제 스포츠 대회는 그런 공정성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이번 축구 대회에서도 의혹은 많았으며, 축구뿐만 아니라 피겨 스케이팅만 봐도 그렇다. 우리가 경기장 위의 화려하고 열정적인 플레이에 정신이 몰두될 때 

 

그라운드 밖에서는 화려하고 열정적인 선수들의 노력 그 이상으로 협작정치 뒷거래가 이어지고 있었다. 모든 스포츠 업계를 이런 시각으로 바라볼 순 없겠지만 이 책에 의하면 "적어도 피파"는 그랬다. 

 

피파의 부정 피파의 부패 그 중심에 블라터와 그의 충견들이 자행했던 일들을 보니 생각 이상으로 충격이었다. 얼마나 부정부패가 심각한지 소상하게 압축할 수 없을 정도로 조직은 구린내가 진동했다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의 대부분은 이런 피파를 비판하기보단 피파가 가진 축구라는 주제의 대중성을 파악하고 오히려 피파를 옹호해주고 그렇게 자신의 평판을 널리 알리기 위해 축구와 피파를 이용하려 했다.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3s 섹스 스포츠 스크린 정책만 봐도 그렇고, 얼마 전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의 발언(월드컵을 이야기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블라터도 마찬가지다. 대중성이 강한 축구를 감성적으로 이용했다. "축구는 우리를 하나로 만듭니다."라는 다소 감정적인 말로 자신들의 비판세력들을 누그러트렸다. 책에 묘사된 대로라면 피파라는 조직은 공공성을 앞세운 공익 기업이지만 사실은 회장 블라터에 블라터에 의한, 블라터를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었고 그 밑의 사람들은 그의 충견들이었다. 

 

스포츠는 현대인이 즐길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오락 거리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물론 국가주의 민족주의적인 면도 있지만, 스포츠라는 것은 적어도 공정하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정정당당하고 공정한 경기를 보며 어쩌면 사람들은 부조리하게 느꼈던 세상에 생각에 대한 조금의 보상(공정한 룰의 경기에서 오는 승패)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보상은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대리만족을 선사하여서, 그렇게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봤다. 

 

블라터 역시 그랬다. 스포츠는 공정해야하며 독립적으로 정치와는 구분되야 한다고 지껄였으나, 그라운드 밖에서의 그의 행동은 음험한 정치인을 넘어섰고 경기는 공정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2002년 우리나라가 붉은빛으로 물들 때, 경기에서 우리가 환호성을 지를 때의 그 열정 그 내면에는 블라터의 치를 떠는 부정선거가 있었다. 더불어 이 책에서는 2002년 우리나라에 유리했던 편파적 판정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 일리가 있다 생각했다. 그 외 정몽준의 로비 활동 의혹 등등도 기록하고 있다. 

 

나는 솔직히 저자의 논의나 비판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할 수준의 지식은 갖추지 않았다. 책에서 나오는 그 방대한 인물들에 대해 선행 지식도 없고 그래서 저자의 이 방대한 르포가 올바른 비판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보며 경의를 표하고 싶다. 첫 번째로 블라터라는 인간이 자행한 부정에 대해서 조롱의 경의를 표하고 싶고, 이걸 밝혀내기 위해 노력한 저자의 집념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책을 보며 느낀 것은 역시 사물이나 현상의 겉과 속을 다 보는 것이 참 어렵구나 싶다. 누가 알았겠나, 공정과 공평의 아이콘인 스포츠 그 스포츠 대회를 주관하는 공익단체가 이리도 부패했는지... 사람들은 그라운드 안만 주목할 뿐 저자와 같이 그라운드 밖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우리나라는 지금 피아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관피아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군대 문제가 불거져 군피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책은 피파라는 "마피아"조직이 행하는 온갖 부정부패를 집요하고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일독을 권해본다. 

 

사실 이런 비평서를 보고 나면 마음속이 허하며 세상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부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블라터의 블라터에 의한 블라터를 위한 피파 제국을 보며 인간 존재의 염증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을 치밀하게 밝혀 낸 저자의 집념 피파 제국을 상대로 싸우는 저자와 같은 사람을 생각하니, 그래도 염증을 해소할 빛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초독을 할 때는 내 지식이 이 책을 비판할만한 그릇이 못 되어서, 논의를 따라가고 읽어나가는데 만족했지만, 나중에 꼭 한 번 다시 읽고 싶다. 이 책에 논거 된 인물들에 대해 자세하고 소상하게 알아 본 뒤에 이 책을 다시 재독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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