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2 -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 시기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2
이계황 지음 / 혜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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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들이 센고쿠 다이묘 중 일반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오다 노부나가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순신과 세종대왕을 좋아하는 만큼 노부나가를 사랑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 왜 노부나가를 이토록 좋아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혁신적인 모습이 아닐까. 노부나가는 종래의 센고쿠 다이묘들보다 능력이 월등히 뛰어났고 사고도 앞섰다. 천재적인 발상에서 비롯하는 정치적인 감각, 군사적인 전략, 경제정책은 여느 센고쿠 다이묘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이런 천재적인 노부나가의 등장으로 인해 센고쿠 시대는 큰 전환점을 가지게 된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분열된 일본 열도의 통일 관념이다. 노부나가가 활약하기 전의 센고쿠 다이묘들은 중앙 정치에 대한 기대보단 자신의 영지와 영토를 넓히고 그곳에 군림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센고쿠 초기의 어지러운 세력구도가 정리되면서 권력 수호에 성공한 다이묘들은 거대한 영지를 확보하게 된다. 혼란스러웠던 일본 열도도 두각을 드러내는 극소수의 센고쿠 다이묘들에 의해 재편되는데 노부나가 역시 오와리 지방을 바탕으로 성장한 센고쿠 다이묘였다.


여기서 노부나가는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 다른 다이묘들이 생각하지 않은 일본 대륙의 통일을 야망 했다. 이것이 바로 노부나가와 다른 유력 다이묘들의 차이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이런 야망을 '천하인'이라고 명칭 했고, 일본 열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조정과 쇼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노부나가와 비슷한 규모의 다이묘들도 많았는데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그리고 모리 테루모토 등을 꼽을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종래의 다이묘들과 비슷하게 그저 자신의 지역구 내에서만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조정과 막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에, 굳이 무리하게 중앙을 장악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수도(교토) 점령을 지켜보면서, 뒤늦게 그들 역시 천하인을 꿈꾸며, 중앙으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노력했다. 정리해보자면 노부나가의 출현은 분열된 일본 열도를 통일하고자 하는 의식을 전국에 확신시켰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의의를 가진다.


책에서 개인적으로 재미있던 점은 무로마치 막부의 마지막 쇼군인 요시아키와 노부나가와의 미묘한 관계였다. 노부나가는 천하인을 꿈꾸고 있었지만 스스로 서기에는 세력이 약했으므로 쇼군을 옹립하는 행위를 통해 다른 다이묘들과 정치적인 차별화를 꾀했다. 이는 마치 중국의 후한 시대 조조가 한나라 황실의 후예인 헌제를 옹립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과 비슷했다. 공교롭게도 조조와 노부나가는 혁신가였으며 허례허식보단 실리를 중시했으며, 풍운아 기질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 둘은 시대를 상징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난세의 통일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결점도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쇼군 요시아키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노부나가의 후광을 입어 쇼군의 자리에 올랐지만 허수아비 쇼군으로 남아 노부나가와의 불편한 동거를 유지하지 않고, 실질적인 권력을 탐했다. 정치 10단인 노부나가 역시 쇼군에게 정치적 실권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쇼군은 전국 각지의 세력가들에 의탁하면서 끊임없이 반노부나가의 세력을 형성하고 압박한다. 이런 연합은 노부나가에게 있어서 최대의 정치적, 군사적 위기였고 부담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노부나가의 편이었던지 절체절명의 순간 반노부나가 연합은, 연합을 주도했던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의 죽음으로 빈번히 실패한다. 물론 노부나가의 뛰어난 군사활동도 있겠지만 신겐과 겐신의 죽음은 반노부나가 연합에 있어 너무나도 결정적인 패착 요인이었다. 이렇듯 노부나가는 시대에 앞선 혁신적인 사상, 그 사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역량, 그리고 운이라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요즘 말로 금수저에 실력도 좋으며 운까지 억세게 좋았던 셈이다. 이 삼박자를 고루 갖춘 노부나가는 결국 숱한 정적들을 무찌르고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부나가를 지켜줬던 운명의 여신은 천하통일을 앞둔 역사의 주인공을 외면해버린다. 오늘날까지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아케치 미쓰히데의 혼노지 급습. 믿었던 부하의 배신으로 인해 천하인을 목전에 앞둔 노부나가는 역사의 이슬로 사라지고, 모리 가문과 대립하고 있던 히데요시는 재빠르게 교토로 회군하여 미쓰히데 세력을 처단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임진왜란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 도요토미 히데요시. 우리나라에선 역사적 악연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일본에서는 출세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는 여러모로 노부나가와 대조적이었다.


노부나가가 천재적이고 이상적이라면, 히데요시는 기민하고 현실적이다. 노부나가가 독단적이라면 히데요시는 심리와 설득의 대가였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 노부나가와는 달리 히데요시는 신분이 낮았다. 그렇기에 그는 밑바닥에서 출세를 하기 위해 온갖 일을 도맡아 했으며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성장 배경을 가지다 보니,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에 능통할 수밖에 없었으며,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혜안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신분의 비약적인 상승은 히데요시의 단점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냈는데, 오다 노부나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다르게 히데요시는 상류층의 문화에 굉장히 심취한다. 그가 고용했다가 죽인 센노 리큐는 일본 다도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또한 히데요시는 자신을 드높이는 것을 매우 민감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모든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히데요시의 경우 그 강도가 매우 심했다. 그렇기에 그가 쓴 문서나 그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제시한 조건들을 보면,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과장한 부분이 많다. 이런 단점들은 결국 미천한 신분에 대한 열등감에서 기인한 것들이었고, 어쩌면 조선에게 자신만만하게 전쟁을 건 것 역시 자신의 정권과 능력을 너무나도 과대평가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이룩한 업적들을 단숨에 소화했다. 새로운 정권에 대한 반발이야 어느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있는 일이지만, 노부나가에 정권에 비해서 히데요시의 정권은 생각보다 큰 저항을 맞지 않았다. 히데요시의 시기 전국의 센고쿠 다이묘들도 세력 분쟁이 어느 정도는 끝나있는 상황이었으며, 히데요시는 그런 유력 다이묘들을 모략으로 회유하고 무력으로 치는 것으로 비교적 손쉽게 통일을 도모했다. 그러나 저자가 밝히는 대로 히데요시의 정권 역시 지방 군벌 세력들을 완전하게 제압한 것이 아니었기에,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지 않고 대외 원정(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벌인 것은 크나큰 실책이자 오판이었다.


책의 말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나오는데, 공간적 배경이 일본 영토에서 익숙한 우리나라로 설정되니 책을 보는데 한결 수월했다. 흔히 우리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가 일본군에게 수세에 몰린 것만을 생각하는데, 이는 개전 초기일 뿐이었고, 명군의 투입이 시작되는 시점부터는 일본군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책에서는 일본군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승승장구했다고 알려진 일본군의 전력 역시 커다란 고민을 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장기전이다. 전쟁 개전 당시 조선이 밀린 이유는 파격적인 규모의 기습에 놀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군 역시 문제가 생기는데, 중요한 점을 언급해보면 길어진 보급선과 예상치 못했던 의병과 승병의 활동, 그리고 명군의 참전과 이순신의 활약 등등이다.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바로 의병과 승병, 그리고 이순신의 활약이었다. 이들의 활약으로 호남과 영해권을 점유하지 못했던 일본군은 평양 너머로 진군을 꾀할 수 없었고, 결국 한성으로 후퇴를 한 뒤 최종적으로 남쪽으로 퇴각한다. 이후 일본군은 싸움보다 강화에 집중했고, 타국에서 피를 흘리기 싫었던 명나라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응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가 간의 이해타산이 맞지 않았고 회담은 결렬되었으며 정유년 일본은 다시 침공을 한다. 임진왜란은 조선을 넘어 명과 인도까지 점령하여 동아시아의 세력권을 일본을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히데요시의 과욕에서 비롯했다. 전쟁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히데요시는 이런 자신의 야망에 자신이 있었지만, 명과 인도는커녕 조선에서 고전하는 자국의 다이묘들의 모습을 보자 부풀었던 욕심도 사그러들고 현실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유재란은 이런 현실적 목표에 근거하여 한반도 남쪽 지역의 지배권을 목표로 하고 일어난 전쟁이었다. 전쟁의 최대 눈엣가시인 이순신을 실각시키고 조선 수군을 괴몰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명나라와 조선의 육상 병력도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또 결정적으로 복권된 이순신이 명량대첩을 통해 일본 수군에 지대한 타격을 입히자, 일본군은 전라도와 경상도 바닷가 근처에 성을 짓고 농성하면서 강화에 나선다. 불행하게도 히데요시는 정유재란 도중 죽음을 맞이하고, 조선에 파견된 일본군들은 자국 내의 영지와 중앙 정치의 흐름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귀환을 하며 전쟁은 종결된다.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시리즈는 무로마치 말기부터 히데요시의 집권기까지의 정치적 흐름을 최대한 깔끔하게 서술했는데, 종래의 특정 다이묘 중심의 서술이 아닌 대륙 전반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에 짧은 시기 수많은 인물과 수많은 세력들이 등장하는데 전권 리뷰에서도 강조했지만 일본에 대해 흥미가 없다면 읽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1권보다 2권이 더 재미있었는데,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와 우리나라와 관련이 깊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 여러 관점으로 심도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이들 외에도 다양한 군상들의 정치적 행위를 통하여 인간에 다양한 모습을 고찰할 수 있었다. 또한 임진, 정유재란을 일본군의 관점으로 기록한 부분도 매우 흥미로웠는데, 이를 통해 7년 전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전국 시대의 3걸 중 하나이자 최종적으로 센고쿠 시대를 통일한 승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통일전쟁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리즈의 목차를 보고 3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통일 전쟁과, 히데타다, 이에미쓰를 거친 에도 막부 정치의 완성을 기대했는데, 2권 말미에 맺음말이 있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물론 이 두 권으로 센고쿠 시대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는데 무리는 없지만, 근세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에도 막부의 성립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시각으로 세키가하라 합전을 살펴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으니, 드라마를 보다가 결말을 못 본 기분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3권을 출시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에도막부의 성립을 다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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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발도 2021-10-05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저자가 쓴 일본근세사라는 책이 이미 있어서 그렇게 마무리 되었나봅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