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홈즈걸 1 -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명탐정 홈즈걸 1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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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추리소설을 매우 좋아한다. 사라진 범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명탐정들의 모습은 활력있고,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추리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은 내가 평소에 읽던 추리소설들보다 가볍고, 유쾌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표지의 귀여운 두 아가씨의 모습이 책의 느낌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은데 표 4의 글을 보면, 셜록 홈즈 뺨치는 서점 콤비의 흥미진진 일상 퍼즐 추리극이라 쓰여 있다. 홈즈걸이라. 처음 등장한 교코라는 이름의 서점 직원이 홈즈걸인 것 같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모두 다에의 몫이었으니 교코는 왓슨, 다에는 홈즈가 어울리겠다. 사실 그렇게 보기에는 좀 교코라는 인물이 더 부각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세후도 서점을 배경으로 한 이 책은 서점에서 일어난, 또는 서점에서 사거나 배달된 책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 다섯가지를 다루고 있다. 각 편은 각각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명탐정 코난’을 떠올리게 하는 만화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는 설정이다.

 

나는 첫편, ’판다는 속삭인다’와 두번째 편, ’사냥터에서, 그대가 손을 흔드네’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첫편은 한 할아버지의 메세지를 해독, 책의 제목을 찾아내는 이야기였는데 그 내용에 오싹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평소에 책을 읽으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숫자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두번째 편은 가슴이 무척 아픈 내용이었는데 사와마츠 다카시라는 인물에 왠지 묘한 매력을 느꼈다.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 날카로운 선을 가진 잘생긴 남학생이 떠올라서일까, 안타까운 사랑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이 책은 서점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작가의 소설이라 그런지 서점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던 서점의 여러 면을 발견하게 되었고, 서점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신간이나 인기있는 책들을 진열하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그동안 내가 진열대의 책들을 참 무심히 바라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다 읽고 가는 사람에 대해 묘사한 부분에서는 ’아, 그것은 실례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사실 서점은 도서관이 아닌데 내가 필요한 자료가 있거나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서점에서 당당하게 읽은 적도 많고, 의자가 없는 서점에서는 불평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 가지 궁금한 점도 있었는데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찾아주는 서점직원들이 정말 있는지였다.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었는데 우리나라 서점에서도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는지 시험해 보고픈 충동이 일었다.

 

왠지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약하지 않은가 라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추리하는 내용이라 그런지 사실감과 친근감이 느껴졌고, 단숨에 읽어질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후속편도 나와 있던데 한 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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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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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추천받은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제목은 평범한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매력으로 소설을 즐기지 않는 사람까지 매료시킨 것일까, 약간의 의구심과 약간의 기대감으로 평소 잘 읽지 않는 한국소설을 손에 들었다.

 

사각사각 연필을 보기좋게 깎아내는 모습. 그것이 이 책의 주인공 공진솔과의 첫 만남이었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연필을 깎는다는 이 9년차 라디오 작가의 모습은 단정하면서도 조용한, 차분하면서 고집있어 보이는 느낌이다. 개편으로 인해 새로운 PD와 일하게 된 그녀는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부담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PD가 시인이라니. 작가로서  글 쓰는 프로듀서와 일해야 한다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공진솔은 작게 한 마디 내뱉는다. '젠장'이라고. 이 짧은 한 마디에 쿡쿡 웃음이 나면서 그녀의 모든 감정이 나에게 전해진다. 이 여자, 왠지 나와 닮은 것 같아.

 

진솔은 새로 일을 시작하게 된 이건 PD과의 갑작스런 만남에 뜻하지 않은 편안함을 느끼고, 그의 시집에서 '불'과 같은 열정을 느끼며, 그의 미소에 설레임을 느낀다. 그리고 점차 그에게 물들어 간다. 이들의 모습에 어린 왕자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길들여진다. 그들은 서로에게 그들도 모르게 길들여지고 있다. 

 

다른 여자를 마음에 담고 있는 남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씩 자신의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그에게 용기있게 사랑을 고백한 진솔은 그가 그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노라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연인이 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두 사람. 그들은 몇 번의 굴곡을 거치고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네, 라고 단정지어 버릴 수 있는 스토리이지만 그 안에 담긴 글들이 잔잔하게 마음을 두드린다. 고요한 수면 위로 작게 튀겨지는 돌멩이들처럼 문장들이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다룬 듯 편안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이 안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의 삶에 그려진다. 자신의 삶보다 그의 삶을 아껴주는 여자 애리, 고집스럽게 바람을 따라 살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내려놓는 남자 선우, 오랜 시간 한 남자를 바라본 여자 희연, 젊은 날의 추억을 고이 간직한 채 시끌벅적 소란스러우면서도 조용하게 삶을 살아가는 이필관 할아버지. 최작가와 김작가, 방송실의 여러 PD들의 모습도 눈앞에 살아나는 듯 하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작가의 묘사가 무척이나 섬세했나 보다.

 

빨리 읽어내야 한다는 재촉도 하지 않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듯 자연스럽게 읽게 만드는 책. '참 괜찮은 책이네'라는 생각에 주변에 추천하자 '아, 나 그 책 알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글귀가 유명하다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문장을 보았노라고. 맞아, 조용하면서 깊이 있는 글들이 많이 있었지. 다시 책을 펼쳐 인상깊은 글들을 추려내어 본다.

 

살아가는 게 늘 장밋빛은 아니지만, 장미빛이라 부를 수는 있어요. 오드리 헵번이 그랬던가요? 와인 잔을 눈앞에 대고 세상을 바라보라! 그게 바로, 장미빛 인생이다-라고요. (p. 80)

 

진솔씨는, 나한테 일기장 같은 사람이에요. 수첩에 몇 줄 적는 것처럼 꼭 진솔 씨한테 하루를 정리하게 되잖아요. (p. 155)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p. 206)

 

나 사랑하는 게 정말 힘들면...사랑하지 말아요. 내가 당신한테 아무 위로도 못 됐다는 거 아니까. 도망가지만 말아요, 내 인생에서. (p. 377)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이 책에는 서울 땅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 나온다. 마포, 종로, 혜화동, 신촌, 인사동, 광화문. 즐겨가지는 않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그리울 때 찾아가는 곳. 이곳들의 모습을 이 책에서 다시금 발견하게 된 것 같다. 이필관 할아버지의 주소, 이화동 산 1-1번지도 찾아가 보고 싶다.

 

책을 덮은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도 가슴 한켠이 아리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소설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일까? 주인공들이 겪었을 가슴앓이를 나도 함께 했나 보다.
지금 나는, 네 명의 주인공보다  이필관 할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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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이단과 웜로드의 전설 기사 아이단 시리즈 2
웨인 토머스 뱃슨 지음, 정경옥 옮김 / 꽃삽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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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이단과 비밀의 문을 읽은 나는 아이단에게 매료되어 서둘러 그와의 재회를 준비했다. 기사 아이단 시리즈의 2권, 기사 아이단과 웜 로드의 전설. 1권보다는 분위기있는 보라빛에 용의 발가락이 음산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표지였다. 이번 편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잔뜩 기대가 되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아이단이 현실세계로 돌아온 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이단은 학교에서 그웬의 인간 쌍둥이인 앤트워넷을 만나게 되고, 그녀 또한 아이단처럼 앨리블과 엘리엄 왕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단은 엔트워넷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주고, 그녀가 렐름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엔트워넷은 몇 가지 시험을 거쳐 열두번째 기사로 선택받게 되고, 주변국과의 동맹관계 유지라는 막중한 임무를 띄고 유랜드로 떠나게 된다.

 

1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단이 다시 렐름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이번 편에서 그의 활약을 내심 기대했었는데 아이단의 비중이 많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글림스 쌍둥이, 왠지 아이단보다 어른스러운 듯 하면서도 순수한 소년같은 에일릭이 등장하여 새로운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사'라는 명칭을 들으면 남자를 많이 떠올렸는데 칼과 말타기에 출중한 능력을 보여주는 여자 기사의 등장과 용기있는 그녀의 활약에 색다르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번 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의 하나는 엔트워넷이 자신의 칼을 팔아 여자 노예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부분이었는데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하여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 생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번 편에서 등장한 웜 로드는 실제로 보지 못한 동물이지만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왠지 그 어두운 기운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것 같아 무섭고, 떨린 마음이 들었고, 세븐 스프링스는 반지의 제왕에서 검은 망토를 두르고 날아다녔던 이들을 떠올리게 했는데 내가 이 책의 등장인물이 된 듯, 이 무시무시한 적들을 어떻게 물리칠지 막막한 느낌이 들면서, 기사들의 활약에 기대가 되었다.

 

아이단의 절친한 친구였던 로비의 글림스가 파라고어의 충실한 신하가 되어있다는 사실은 1편에서 이미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이고 안타까웠는데 권력, 명예라는 것이 사람의 욕심을 얼마나 자극하고, 사람을 악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3권에서 그가 엔트워넷과 아이단의 노력으로 마음을 되돌리고, 함께 앨리블의 편에 서서 파라고어와 대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판타지 소설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상상의 세계에 대한 즐거움과 더불어 악과 맞서는 기사들의 용기,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가치있는 것을 내어주는 희생, 언제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그분에 대한 믿음을 배우게 된다. 책을 처음 잡았을 때보다 지금, 나는 이 책이 주는 커다란 기쁨에 사로잡혀 있다. 마지막 권에서는 아이단이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며 엔트워넷과 함께 렐름의 세계를 구해내고, 어두움에 빠진 세계를 빛으로 인도해낼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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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의 눈을 달랜다 -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60
김경주 지음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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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나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먼 장르의 책이다. 몇 번, 시집을 읽어볼까 생각했지만 짧은 문장을 한 번 쓰윽 읽어 보니 소설같은 재미도, 자기계발서같은  도전도 발견할 수 없어 수많은 음식 중 야채를 골라내어 편식하듯, 나는 수많은 책들 중 시집만 골라내어 버렸다.

사실 내가 '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국어' 수업에서 '시'를 다룰 때, 나는 그들이 내뿜는 아름다운 빛에 감탄했었고, 속 안에 꽁꽁 숨긴 진정한 의미를 찾는 일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생님'이라는 친절한 안내자가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었다.

그런 내가 '시차의 눈을 달랜다'라는 김경주 시인의 시집을 발견했을 때, 왠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간의 망설임도 있긴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언제가는 시를 읽으며 나의 사색력을 판단해보고 싶다는 오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이 '그때가 바로 지금이야'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탐정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시를 탐독하고, 그 안에 담긴 진주를 캐내겠다는 결심으로, 책을 손에 쥐고 첫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시집 읽기.

결과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나의 참패이다. 나는 김경주 시인의 시에 완전 넘어뜨림을 당했다. 첫 시부터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단어는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이 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시인은 어떤 의도로 이런 시를 쓴 것이지 아무리 읽어봐도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바보인 것일까? 김경주 시인에 대해 알아보니 김수영 문학상, 젊은 예술가 상을 받았고,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가졌다는 극찬을 받았던데 나는 왜 그의 시를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깜깜한 밤, 달빛 한 가닥 비추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느낌, 갑갑하고, 좁은 자루에 갇힌 느낌이었다. 내가 이렇게 시에 대해 문외한이었나 자책도 하고, 김경주 시인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며 그의 시에 대해 놀랍다고 평가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은 작가라 불평도 하며 시를 다 읽고 나니 작품해설이 눈에 띄었다. 아, 해설도 어렵구나. 하지만 해설을 읽다보니 김경주 시인이 이야기하는 '시차'에 대해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그의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유일하게 내가 받아들인 시가 있다면 '모래의 순장'인데 '모래는 스스로의 무덤을 갖지 못해 다른 것들의 몸을 빌려 자신을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만 년 전부터 떠돌고 있는 자신의 무덤을 찾기 위해 자신의 유랑 속으로 끝도 없이 다른 것들을 데려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구절이 다가왔다. 사실, 시에 대한 이해라기 보다는 '아, 무슨 말을 하는 지 알겠다!'라는 문장에 대한 이해에 불과했지만 이 한 문장에서 느낀 바, 시인은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이 있는 것 같았다.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 나에게는 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분 좋게 휩쓸려가는 그들의 이미지만 떠올랐는데 이 시를 읽고 나니 왠지 슬픈 느낌이 들었다. 그래, 슬픈 느낌. 김경주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단어들이 가진 이미지때문인지 무섭고, 슬픈 느낌이 들었다. '피', '머리칼'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왜이리 공포로 느껴지는지.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했던 '국어'수업에서 내가 배운 '시'. 그것은 나에게 감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공부의 대상이었고, 시의 느낌과 이미지를 떠올리기보다는 색색깔로 밑줄쳐 가며 단어의 숨은 뜻과 시의 의미를 외우기 위해 발버둥쳤던 수업의 일부였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시를 너무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굳이 의미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나의 감정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슬퍼진다. 시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책이 들어온 것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다음 번 도전에서는 성공의 실마리라도 잡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무겁게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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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이단과 비밀의 문 기사 아이단 시리즈 1
웨인 토머스 뱃슨 지음, 정경옥 옮김 / 꽃삽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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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나는 매일 밤 잠을 자기 전, '오늘은 어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 고민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꿈으로 꾸었을 때는, 그 이야기가 무섭거나 재미있거나 괴롭거나에 상관없이 즐거워했고, 중간에 꿈이 끊겼을 ?는 다시 꿈을 꿔야 한다며 억지로 잠을 청하곤 했다.

 

판타지 소설은 현실에서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면에서 내가 꾸던 꿈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야기가 보다 짜임새 있고, 흥미진진하고, 내가 원하는 때마다 꺼내어 볼 수 있다는 것이랄까. 어쩌면 꿈을 보다 현실감있게 꿀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판타지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기사 아이단과 비밀의 문'은 '기사 아이단 시리즈'의 첫 편으로, 웨인 토머스 뱃슨의 데뷔작이다. 주인공 아이단은 십대소년으로,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돌보러 가족과 함께 콜로라도로 이사를 한다. 유일한 친구이자 가장 좋아하는 친구인 로비를 떠나 이사를 했다는 사실에 아이단은 불만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어느 날 우연히 지하실의 항아리에서 두루마리 세개를 발견한다. 두루마리를 읽던 아이단은 '믿고 들어가라'는 문구를 보고, 엘리엄 왕의 목소리에 이끌리어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앨리블 왕국에서 열두번째 기사로 선택된 아이단은 훈련을 받고, 앨리블의 반역자 파라고어의 무리들과 전쟁을 치루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기독교적 색채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단이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통로로 들어가는 부분에서는 '믿는다, 믿는다'라는 머릿속 주문이 '믿음'이 아니라 '발을 내밀고 다리 위를 걸어가는 것',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내가 지켜 주리라'라는 목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으며, '넌 절대 혼자가 아니다. 엘리엄 왕이 네 안에 계시다'라는 말은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떠올리게 했다. 왕을 배신한 파라고어는 타락한 천사 루시퍼를, 12명의 기사는 예수님의 12제자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란노'에서 판타지 소설에 출간되었다는 것에 의아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기독교적 시각을 떠올리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책 자체의 내용도 흥미진진했는데 유약해보이고, 작아보이던 아이단이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능력을 발휘하고, 점차 성장하는 모습은 나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책을 읽으면서 소년에서 남자로, 겁많던 아이에서 기사로 변모하는 아이단의 모습이 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고, 글림스들의 파란 눈과 반짝이는 빛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 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를 기초로 해서 엘리엄왕, 발리토어 대장, 그웬 등의 모습도 떠올랐는데 인물의 생김새를 추론해보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면서 마주친 로비의 충격적 모습이 2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땅 앨리블이라고 했지만 2편이 있으니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겠지? 얼른 다음편을 읽어봐야겠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진심으로 보는 이에게 반드시 열린다. 당신은 지금 보고 있는가? 믿고 들어가라."

아이단을 두루마리 안으로 초대하는 문장처럼, 이 책은 독자를 초대한다. 이 문장은 책의 내용이 사실임을 믿는다면 나도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꿈을 꾸게 만들 정도로 소름끼치게 다가온다. 환상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이여, 이 책에 빠져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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