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의 눈을 달랜다 -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60
김경주 지음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시집. 나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먼 장르의 책이다. 몇 번, 시집을 읽어볼까 생각했지만 짧은 문장을 한 번 쓰윽 읽어 보니 소설같은 재미도, 자기계발서같은  도전도 발견할 수 없어 수많은 음식 중 야채를 골라내어 편식하듯, 나는 수많은 책들 중 시집만 골라내어 버렸다.

사실 내가 '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국어' 수업에서 '시'를 다룰 때, 나는 그들이 내뿜는 아름다운 빛에 감탄했었고, 속 안에 꽁꽁 숨긴 진정한 의미를 찾는 일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생님'이라는 친절한 안내자가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었다.

그런 내가 '시차의 눈을 달랜다'라는 김경주 시인의 시집을 발견했을 때, 왠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간의 망설임도 있긴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언제가는 시를 읽으며 나의 사색력을 판단해보고 싶다는 오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이 '그때가 바로 지금이야'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탐정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시를 탐독하고, 그 안에 담긴 진주를 캐내겠다는 결심으로, 책을 손에 쥐고 첫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시집 읽기.

결과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나의 참패이다. 나는 김경주 시인의 시에 완전 넘어뜨림을 당했다. 첫 시부터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단어는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이 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시인은 어떤 의도로 이런 시를 쓴 것이지 아무리 읽어봐도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바보인 것일까? 김경주 시인에 대해 알아보니 김수영 문학상, 젊은 예술가 상을 받았고,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가졌다는 극찬을 받았던데 나는 왜 그의 시를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깜깜한 밤, 달빛 한 가닥 비추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느낌, 갑갑하고, 좁은 자루에 갇힌 느낌이었다. 내가 이렇게 시에 대해 문외한이었나 자책도 하고, 김경주 시인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며 그의 시에 대해 놀랍다고 평가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은 작가라 불평도 하며 시를 다 읽고 나니 작품해설이 눈에 띄었다. 아, 해설도 어렵구나. 하지만 해설을 읽다보니 김경주 시인이 이야기하는 '시차'에 대해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그의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유일하게 내가 받아들인 시가 있다면 '모래의 순장'인데 '모래는 스스로의 무덤을 갖지 못해 다른 것들의 몸을 빌려 자신을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만 년 전부터 떠돌고 있는 자신의 무덤을 찾기 위해 자신의 유랑 속으로 끝도 없이 다른 것들을 데려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구절이 다가왔다. 사실, 시에 대한 이해라기 보다는 '아, 무슨 말을 하는 지 알겠다!'라는 문장에 대한 이해에 불과했지만 이 한 문장에서 느낀 바, 시인은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이 있는 것 같았다.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 나에게는 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분 좋게 휩쓸려가는 그들의 이미지만 떠올랐는데 이 시를 읽고 나니 왠지 슬픈 느낌이 들었다. 그래, 슬픈 느낌. 김경주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단어들이 가진 이미지때문인지 무섭고, 슬픈 느낌이 들었다. '피', '머리칼'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왜이리 공포로 느껴지는지.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했던 '국어'수업에서 내가 배운 '시'. 그것은 나에게 감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공부의 대상이었고, 시의 느낌과 이미지를 떠올리기보다는 색색깔로 밑줄쳐 가며 단어의 숨은 뜻과 시의 의미를 외우기 위해 발버둥쳤던 수업의 일부였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시를 너무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굳이 의미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나의 감정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슬퍼진다. 시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책이 들어온 것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다음 번 도전에서는 성공의 실마리라도 잡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무겁게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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