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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평점 :
[서평] 하우스프라우 - 이유없이 우울한 날에 읽기 딱 좋은 소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269913
p.51 어떤 아픔도 완전히
그 사람을 떠나진 않는다는 것을.
소설이란.. 읽는 사람에 따라 빠져드는 맥락이 있는 것 같다. 하우스프라우의 주인공이자,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안나..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가, 막바지에 뜻하지 않게도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의 사건으로 인해 삶이 전체적으로 휘청이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그녀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런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겪게되는 연속된 비극과 삶의 비극이란게 늘 그렇듯, 작은 흔들림에도 큰 파장으로 끝날 수 있는 인생의 모순이 코너로 몰아간다.. 결국 소설 속 마지막 그녀의 선택은 안타까우면서도 그녀 나름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라는 점에 이해도 되기도 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이유없이 우울한 날에 읽기 딱 좋은 소설이다.
이 책의 소설로써의 매력, 혹은 예술적/문학적 가치라는 것은.. 안나가 융 분석심리학자에게 개인 상담을 받으며 정신분석을 받는 내용들이 그녀의 삶과 평행선상에서 어떤 형태로 드러나게 되는지와, 정신분석가와 나누며 논의하게 되는 언어적 중의적 표현들 또한 안나 그녀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편들이라는 점에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소설 속으로 이끌려가듯 이야기를 읽게 되고, 자신의 세계에 수동적인 모습으로 선택하지 않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어쩌면 그 의미나 언어의 차이, 비유적 표현들, 인생에 대한 의문점을 날카롭게 논의할 만큼 안나는 똑똑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왜 수동적이었을까..?...
동일 선상에서, 그녀가 독일어를 배우며 익히는 표현들, 언어적 차이와 의미들,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둘러싼 현상에 갖는 의문점들의 표현들의 중의성은... 독자인 나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한 언어를 배운다는건,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그럼에도 미국인인 그녀가 스위스 안에 살면서도 영원한 이방인일 수 밖에 없던 점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수동과 일탈.. 그녀의 삶을 언어적 표현으로 인식해 나간 점들.. 그럼에도 안타깝지만 벗어나지 못한 것...
그녀가 무의미한 성적 일탈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그녀를 도와줄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진정한 도움을 받지 않고 영원히 이방인으로 남은 것, 공허함, 그녀가 안타깝게도 보지 못했던 삶의 행복들, 다시 바로 세울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그녀의 도미노 한 개 한 개들...
이 책은 인생의 공허함, 나에게 주어진 도미노 조각들, 나의 무의식적 가면들, 안나의 감정적 동요들을 공명하듯 전해 받을 수 있게 했다.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비극적인 건, 그녀가 도움을 청하려고 할 때.. 신의 버린듯 한명한명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 받을 때.. 그녀는 그 순간 웃고 만다. 거기까지가 자신의 인생의 내리막이자 신의 시험임을, 원래가 인생이 신의 시험임을 깨달은듯한 그녀의 체념.. 너무 공감되어 울뻔한 대목이다. 마음이 아리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본인이 정신분석을 배우지 않았기에, 책의 정신분석적 상담 내용을 맹신하지 말라는 주의도 사려깊게 잊지 않았지만, 소설 속에 잘 엮어냈다고 보며, 융의 분석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저자의 문학적 뛰어남에 감탄하리라 생각한다.
p.74 한사람의 꿈과 한사람의 상처 사이에는 언제나 연관이 있죠.
P.98 외로움이 끔찍한 통증이 되어 그녀의 목을 무는 밤에도.
p.206 몸 안에 감정이 너무 많아서, 그 감정 자체가 되어 버린 것 같죠.. 그렇게 되어 버리면, 그 감정은 더는 내 안에 있지 않아요. 그것이 바로 나예요. 그리고 그 감정은 절망이예요.
p.218 ‘집착과 강박의 차이는 뭐죠?’
‘집착은 통제 불능이라는 느낌에 대한 방어예요. 강박은 그 방어의 실패죠.’
p.259 인간은 똑똑히 알면서도 여전히 끔찍한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인식에 자동적으로 윤리가 따라오진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