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가 웃는 순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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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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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이렇게 분량의 압박을 느끼지 않고 술술 읽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책은 총 8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뒤로 갈수록 긴장감이 점점 높아져 중간에 흐름을 끊기가 어려웠다. 찬호께이의 책을 처음 읽었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몰입해 읽으면서, 이래서 찬호께이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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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오래된 대학 기숙사를 둘러싼 괴담을 이야기하던 신입생들 앞에 갑자기 펼쳐진 섬뜩하고 미스터리한 상황들. 그 상황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학생들. 과연 악령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 그들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책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치밀해지고, 책장을 넘기는 손은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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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감 있게 읽으며 재미를 느꼈지만, 좀 아쉬운 면도 있었다. 각 장마다 다른 괴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부분에 개연성이 좀 부족하게 느껴졌다. 독자들이 유추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어떤 인물이 직접 설명해버리면서 채우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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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띠지에 쓰인 ‘뻔한데 재밌다!’는 문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학교괴담을 소재로 한 복고적인 친숙함을 느끼며, 작가의 유려한 글솜씨를 즐겼다. 찬호께이의 전작은 주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추리소설이라고 하던데, 아마 이 책은 그보다는 좀 가벼운 느낌의 미스터리 소설인 것 같았다. 이제 거꾸로 전작을 읽으며, 그의 진가에 좀 더 다가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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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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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세상을 이해하는게 더 쉬워지니까. 그러다 보니, 가끔은 자기 자신을 비난하기도 해요. 비난받을 누군가가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의 통제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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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구도 성인군자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모두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선한 일을 할 때마다, 당신은 다음번에도 선한 일을 할 가능성이 많은 인물로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건 의미가 있는 일이지요.” p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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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새롭고, 어렵고, 낯설어서,,, 너무 매혹적이어서. 놀라고 또 놀랐다. 과학적인 세계관 위에 치밀하고 섬세하게 빚어진 이야기들. 생소한 용어와 개념들이 가득하고, 이해한 것들과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복잡하게 뒤섞인 가운데, 반짝 빛나는 통찰력이 마음을 꽉 붙들었다. 사람들이 테드창에 열광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나도 주저없이 열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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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우주, 인공, 평행세계, 가상의 공간... 고차원의 상상력과 이해력이 필요한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결국 지금 나의 존재와 우리의 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들. 테드창의 상상속의 세계는 단순한 소설이라고 보기엔 허를 찌르는 통찰력이 담겨 있었고, 인간만이 지닌 무언가를 일깨우려는 대단한 시도를 하는것 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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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의 단편소설 중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과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 특히 좋았다. 점차 기술이 발전하고 그에 발맞춰 인간도 더욱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존재로 진화해 가는듯 하지만, 결국 인간은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비인간적 존재와 대조되는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단단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에 감탄했고, 의심의 여지없이 테드창은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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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책의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 그 부분을 뺀 나머지 세계를 향해 시야가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한권의 소설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대단한 작품. 쉽지 않지만,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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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 표정훈, 그림 속 책을 탐하다
표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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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저 책은 무슨 책일까?’ 에서부터 시작된 즐거운 상상. 지성인의 상상력을 따라다니며, 나 역시 즐거운 여정이었다. 어떤 상상은 역사적 배경이 뒷받침 된 꽤 근거있는 상상이었는데, 역시 상상의 수준도 지적인 수준에 비례하는구나 싶었다. 똑똑한 사람이 쉽게 말하고, 거기에 재밌게 말한다면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데, 표정훈 작가를 처음 만나봤지만 그런 사람이라는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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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다루는 그림 속 책은 단순히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시대를 반영하는 매개체로 보여진다. 작가가 그림을 그릴 당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도구로서의 책이 과연 무엇일지 적당한 근거와 상상력을 더해 추리해본다. 어쩌면 굉장히 정답에 가까운 추리인 것 같아서, 그 과정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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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실은 책과 책읽기에 관한 책이라고 해도 좋을것 같다. 거의 초반부에서 ‘표지독서’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때부터 난 이 작가분이 나랑 같은 부류(?)이구나 하는걸 알아봤다. 애서가,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책 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걸! 표지를 읽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독서라고 할 수 있다니, 책을 잔뜩 쌓아두고 전전긍긍하는 나에게 너무 속시원한 이야기였다. 표지독서 뿐 아니라 책 이곳저곳에 책을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도록 돕는 글들이 포진되어 있다. 그러니 자꾸만 마음이 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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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받아보고, 제목과 표지를 보며 조금 묵직한 메세지를 담고 있을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읽고보니 그보다는 좀 더 가볍고 즐거웠던 것 같다. 책 읽는 내내, 내가 그림 속 주인공이 된다면 들고 있을 단 한권의 책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를 표현하기에 알맞은 책 한권, 몇몇 후보가 떠오르지만 아직은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 모든 책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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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지혜의 시대
김현정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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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뉴스를 잘 챙겨보지 않는 그야말로 뉴알못인데, 김현정의 뉴스쇼기사는 한번씩 본다. 예전에 우연히 뉴스쇼를 청취한 적이 있었는데, 김현정 앵커가 시민과 인터뷰하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휘와 담백한 어조로 뉴스를 진행하는 것이 신선했고, 왠지 신뢰가 느껴졌었다. 그 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관심있는 이슈가 있을때는 한번씩 뉴스쇼의 기사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뉴스쇼가 이제 대한민국에서 공히 영향력 있는 뉴스가 되었고, 게다가 그것을 소재로 한 책이 출판되다니... 열성팬까지는 아니지만, 괜히 뿌듯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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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슈가 내일엔 거짓으로 드러나는, 거짓정보의 홍수 속에서 뉴스조차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김현정 앵커는 10년 넘게 뉴스쇼를 진행하며 쌓인 노하우와 경험을 통해 제대로 된 정보와 뉴스를 만나는 지혜를 말한다. 어떤 정보를 모른다고 해서 세상 살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자신만의 올바른 시각을 지니는 것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매개이고 삶의 질로 연결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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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정보라는것은 주로 믿을 것인가, 말것인가의 취사선택의 문제로 여겨진다. 단순히 드러난 정보를 직감적으로 판단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때론 알게 모르게 거짓정보를 믿고 그것을 퍼트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을지도 모르겠다.

김현정 앵커는 하나의 이슈에 대해 여러 가지, 힘들다면 적어도 반대 입장이 존재하는지를 찾아보며 진짜 정보를 가리는 힘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뉴스쇼역시 이슈에 대한 다각적 정보를 제공해 청취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마련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러한 객관적인 자세가 다른 뉴스에 뉴스를 제공하는 영향력을 지니게 된 원동력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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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앵커의 책도, 뉴스처럼 쉽고 간결했다. 그녀의 조언은 전문가적 이라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담담히 전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방법도 있다고 슬며시 말해주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친한 언니에게 믿을만한 조언을 듣는 듯, 흐뭇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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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아델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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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최근에 읽었던 <연인>이 생각났다. 여성의 뒤틀린 욕망, 육체적 쾌락에 대한 집착이 <연인>의 주인공인 프랑스 소녀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연인>과 달리 <그녀, 아델>은 아델의 행동에 어떤 설득과 면죄부를 부여하지 않는,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트라우마를 이유로 주인공의 행동에 개연성을 더하지 않고, 그저 끝없이 펼쳐지는 욕망을 차갑게 그려내어 왠지 슬픈 느낌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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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은 신문기자이자, 외과의사 남편과 세 살 난 아들을 둔 파리지앵이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고, 남들이 보기엔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었지만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낯선 남자를 유혹해 관계를 맺는다. 그녀가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 모습은 야하거나 관능적이라기보다는 폭력적이었고,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고독과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아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절망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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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의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다. 나는 그녀의 선택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속에서 그저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집착과 광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었고... 결국 담담히 그녀의 슬픔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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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책을 통해 금기시 되어 온 여성의 ‘성적욕망’과 ‘쾌락’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여성에게도 통제할 수 없는 성적욕망이 있고, 결국은 추락을 선택하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옳고 그름의 판단여부를 떠나 남성의 세계로 여겨져 온 것에 대한 반전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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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를 읽고, 작가의 날카롭고 감각적인 표현력에 놀랐었다. 이 책이 작가인 레일라 슬리마니의 데뷔작이니 <달콤한 노래>의 전작인 셈인데, 어쩌면 더 도발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이었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작가 중 한명이라고 하던데, 명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도 같은 책이었다.
여성의 삶에 대한 그녀의 시선은 그 누구보다 예리하고 현실적이다. “나의 영원한 주제는 여성이다.”라고 하는 그녀, 이제는 믿고 보는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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