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ㅣ 우리 아이 인성교육 37
리우쉬궁 지음, 우디 옮김 / 불광출판사 / 202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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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명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제겐 그림책이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정말 소중히 넘기고 싶은 책을 만났어요.


리우쉬궁 작가의 비雨 입니다.

지난 전주국제도서전에서 이 책을 넘겨보고 범상치 않다 했는데 일정에 쫓겨 천천히 넘겨보질 못했어요.

어쩐지 이 책은 그냥 휘리릭 넘길 책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지부터 너무 좋았던 터라 담아두고 있었는데 제이포럼에 서평단으로 참여할 기회가 생겨 만났네요. 사실 곧 만날 느낌이 강하게 있었죠. 어떻게든 가까이 두고 싶었던 책이니까.

받아서 잔잔한 음악을 틀고 천천히 넘겨 보는데 월요일부터 이것저것 심란했던 마음을 한 올 한 올 쓰다듬어 주는 느낌입니다.

이 책은 아래에서 위로 넘기면서 읽는 책이에요.

제가 최근 산 대만 작가의 책 중 이렇게 넘기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책을 여러 권 만났는데 대만에서는 이런 형식의 그림책이 더 많은가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림책<비雨>는 책의 내용을 따라 펼쳐지는 그림을 만나니, 역시 이렇게 이야기가 열려야 작가의 그림이 제대로 펼쳐지겠네 싶었어요. 스탠드 조명 아래 사진을 찍어 노란 빛이 더 강하지만 실제 붓의 질감과 재치어린 그림체를 보다보면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숲 속에 홀로 남겨진 아이.

전 이 표현이 특히 좋았습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절에서 자란 아이.

하루하루 천천히 자라는 아이.

천천히 자라는 아이라니.작가의 섬세함일까요? 번역가의 역량일까요?

쓸 줄 아는 글자는 비 雨 밖에 없던 아이.

그 비雨라는 글자에는 매일 매일 스님의 본 것과 생각한 것이 담겨 있었죠.

속상할 때, 화가 날 때, 슬플 때, 기쁠 때도 써내려가던

스님의 모든 순간을 담아온, 단 한 글자.


평생 쓸 줄 아는 글자라곤 한 글자 밖에 없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읽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글자가 비雨이어서 쓰기 시작한 글씨지만

경전을 읽을 수 없는 스님은 단 한 글자로 수행을 합니다.

그리고 나라에 비가 내리지 않아 근심일 때, 산에서 수행중이던 스님들이 힘을 보태고자 경전과 염주를 챙겨 내려가기로 하자, 비 스님 또한 그동한 써온 수많은 비 글씨를 챙겨 따라나섭니다.

스님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한 것일까요?

생각해보니 하늘도 감동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살아온 모든 순간을 꾹꾹 담아 적은 글씨이니

꾸준한 정성을 무엇이 대신 할 수 있을까요?

마침 스님이 쓸 수 있던 글자가 비雨였던 것은 운명이었을까요?

어떤 방식이든,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그저 묵묵히 적어 내려갔던 글씨들.

그림책을 넘겨 보는 내내 '캘리그래피 같은 글씨체네. 이건 그냥 폰트가 아닐거 같은데' 하면서 책을 살펴보았는데

앞에 서지정보에 캘리그래피 '해랑혜란'이라고 적혀있네요.

알고보니 해랑혜란 작가도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군요.


원서 또한 캘리그래피로 쓰여졌을까요?

작가의 그림과 이 글씨체가 너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 장 한 장 머물게 만드는 힘이 있었어요.


원서의 그림책 장면을 찾아봤는데 어때요? 한글로 번역된 캘리그래피 글씨가 이질감이 없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지는 그림은 컬러 잉크와 아크릴 물감, 연필로 그린 그림이라는데

완성하는데 약 3년이 걸렸다는 부분을 읽으며 작가가 책을 만드는 과정 또한 스님이 '비雨'를 써내려가는 과정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이 달라지고 조금더 많이 빠르게를 외쳐야 할 것 같은 요즘,

차분히 비를 넘겨보세요.

내 안에 한결같이 품고 픈 말이 있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해나가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따스한 손으로 등을 쓰다듬으며 응원해주던 책이었습니다.


*이 글은 제이포럼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남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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