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냉동인간? 이번에도 디스토피아 이야기인가?
뒷 표지에 나온 " 꼭 기억해 다오. 사랑이 가장 강하다는 걸"이란 말은 너무 뻔하지 않나
선입견을 가득 안은 채로 시작한 동화.
작가가 그린 미래는 희귀질환자들이 냉동됨으로써 고통없는 미래를 꿈꾸고 방사능오염과 기후변화 등으로 과거에 즐기던 음식들이 사라진 미래. 익숙한 바나나와 같은 과일도 사라졌고, 곤충이나 벌레, 알약을 대체식으로 먹으며 지역으로 대신 숫자로 나뉘어진 거대돔세계에 살고 있다.
희귀병으로부터는 멀어졌지만, 당연한 줄 알았던 과거의 삶, 내가 누리던 것들이 꿈꾸는 삶이 된 미래에 깨어나게 된 것.
#환경오염 #기후위기 #대체식량자원 #빈부의격차 등의 주제어를 떠올리다보니
어쩌면 당연하게 이런 문제를 받아들이며 미래를 맞고 있는 것인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희귀질환으로 냉동되었다 40년만에 깨어난 이시후는 완벽한 세상을 꿈꾸며 깨어나지만
정작 자신이 깨어난 때 사랑하는 가족은 함께 할 수가 없다. 홀로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본인만 40년 뒤에 깨어났으니 어쩌면 이 정도 희생은 각오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언제 깨어나게 될지 냉동인간이 된 이후의 삶은 그가 결정한 바가 아니다.
시후가 얼어있는 동안, 온가족의 삶과 행복은 시후의 냉동인간 보존을 위해 담보로 잡혔고
시후는 과거의 가족, '우리'에도 낄 수 없었고 앞으로도 낄 수 없을 듯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텅빈 시간의 간격을 메워줄 것은 무엇일까
가족의 생명을 담보로 온갖 이익을 창출하는거대기업, 프로즌의 실체.
이 사건의 발단을 만든 냉동인간을 만드는 회사 프로즌이 말하는 완벽한 세상과 엔딩없는 삶, 행복하게 오래 살 권리에 대해 자꾸 곱씹게 된다. 학생 시절 시험에서도 '절대. 결코, 완벽한-'등의 명제가 나오면 일단 의심의 눈으로 바라봐야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행복하게 살 권리는 당연한 듯한데 행복하게 +오래+ 살 권리, 엔딩 없는 삶은 행복하기만 할까? 힘든 시간을 피해가는 것은 완벽한 삶일까 같은 의문이 계속 맴돌았고 후에 함께 읽는 어린이들의 생각도 궁금해진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다시 깨어난 현재에 절망하며 가족의 희생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여기고 절망에 빠진 시후에게 각성을 안긴, 조카 진진보라의 대화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 세대 진진보라가 가르쳐주는 진짜 가치있는 삶에 대한 깨달음. 아끼고 모아 66구역을 후원하는 조카를 보며 시후는 지금 무얼할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