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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의 루브르
박제 지음 / 이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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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에 한 번씩 기독교 성화를 블로그에 소개하곤 한다. 어릴 때 집에 있던 명화로 읽는 성서를 끼고 살았던 전력이 늙어가면서도 그림을 가까이 하게 만드는가 보다. 그리는 것 까지는 자신없고 구경하는 것은 좋아한다. 말 그대로 그냥 구경 말이다. 하지만 더 좋아하는 것은 그림과 관련된 미술사에 관한 책을 읽는 일이다. 그런 책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시기별로 유행을 하던 총체적인 예술사조는 비단 미술에서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묘한 끌림이 있다. 모든 예술이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는 것은 이미 느껴왔지만 특히나 이번에 접하게 된 책 <오후 네시의 루브르>를 통해서 다시 확인했던 부분이다. 미술사에서 드러나는 작품들이 당대를 살았던 인간군상과 각각의 존재론적 삶의 방식에 대해, 구체적 형식, 다시말해 그림 속에 담긴 풍자와 비판을 빌려 현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 같다. 어쩌면 미술사조를 알고, 화가의 이름을 아는 것보다도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프랑스 왕가의 궁전이었다가 1793년부터 예술품을 소장하게 된 루브르는 박물관으로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파리를 찾는 사람들이 평소 예술에 관심이 없더라도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다짐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물론 세계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미술 교과서에는 물론이고 각종 광고 등에도 자주 등장하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이슬람 전시실, 그리스 전시실, 이집트 전시실, 메소포타미아 전시실 등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엄청난 예술품이 가득하다. 어쩌면 이 책은 그 루브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위안거리이기도 하지만 루브르 방문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Portrait of a Venetian Woman (La Belle Nani) by VERONESE, Paolo

 

이 책에는 참 많은 화가와 작품들이 등장한다. 대충대충 읽으면 이 사람이 그 사람 같고, 그 사람의 작품이 이 사람의 작품처럼 혼돈이 와 갈피를 잡지 못할 듯하다. 책은 이를테면 독특한 양식에 의해 구별되었던가? 아니면 시대적 흐름에 의해 구별되었던가? 물론 이 양자의 구분에 의한 구별방법도 같이 동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자 박제의 이야기 흐름이 ‘명확한 주제의식’에 의해 구분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주저없이 루브르를 자기 인생의 보물창고라고 부른다. 당신이 이 책을 보고 있다면 그 보물창고에 초대된 것이다.

 

대부분의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현학적이거나, 지루한 구성으로 중도 포기하기 일쑤인데 이 책은 끝까지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다. 꼭 그림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 여성들이 진주를 장식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너무 심해지자 당국이 나서 벌금까지 책정했다는 이야기, <젊은 공주의 초상>에서 외계인같아 보이는 공주의 모습이 사실은 당시 이마의 머리털을 밀어버리고 머리채를 뒤로 바짝 당겨서 둥글게 틀어 올리는 것이 유행이었다는 이야기 등은 그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림에 대한 애정과 흥미를 일으키는 데에도 더없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무심히 보는 사람 눈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작은 문양이나 꽃밭을 날아다니는 나비, 작은 손짓, 귀걸이 하나에도 다 그것이 그려진 이유가 있고 작가의 의도가 실려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특유의 섬세한 어조로 일깨워준다.

 

독자가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그림과 화가, 다양한 사조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단지 저자가 마련해놓은 각각의 특색 있는 방으로만 발을 들여다 놓으면 될 일이다. 그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역시나 부담 느낄 필요가 없다. 까닭인 즉, 동그랗게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단 한가지 꼭 한가지 덧붙일 것은 눈을 뜨고 귀를 여는데서 그치지 말고 가슴을 열어두라는 점이다.

 

The Death of Sardanapalus by DELACROIX, Eugène
 

저자는 루브르에서 만난 예순일곱점의 그림들을 다섯가지 테마로 구분한다. 그 첫 번째가 초(肖)다. 즉 초상화다. 그리고 차례대로 속(俗), 풍(風), 성(性), 성(聖)이 뒤따른다. 풀이를 하자면 세속적인 부분, 세파와 관련된 풍속화 부분, 남녀 간의 성을 다룬 부분과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차원에서 다룬 부분으로 나눈다. 이 다섯가지의 주제는 저자 박제에 의해 임의로 구분된 주제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관조할 때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포함되는 요소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리들 인간의 삶은 화폭에 담겨지는 무한 색조의 그것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총천연색으로 그려지는 하나의 작품이다.

 

Christ at the Column by ANTONELLO da Messina
 

화가는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 그림이라 생각했던 좁은 소견일랑 버려라. 적어도 책을 통해 저자 박제가 소개하는 화가들을 접하면서 독자들은 화가라는 표현이 지니는 사전적 의미에 다른 이미지를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가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서 사건과 사건, 반목과 화해, 불규칙적이며 예상하거나 혹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인간존재의 수많은 감정들을 담아내는 숙련된 기술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친절한 저자의 설명에는 묘한 전염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매혹적인 전염성이다. 그런데 이 전염성이 갖는 효과는 대단하다. 내 시선에서 내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내가 느끼고 이해하는 작품의 수준은 분명 이 책을 읽고 난 전후가 달라졌을 거란 점이다. 각설하고 살면서 루브르를 대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예전 파리 방문은 오르세미술관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을, 그 루브르를 직접 보지 못했던 그 아쉬움을 이 책으로 달래본다. 도판은 그중 몇개만 이해를 돕기 위해 넣었다. 책은 사서 보시라. 그 전염성을 경험하고 싶다면 ㅎㅎ 그리고 그림 보는 눈이 높아졌다면 저자에게 감사하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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