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 한성주


간서치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들려주는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내면 풍경


책은 총 545페이지다.

받자마자 무겁다 ㅋㅋㅋㅋ 빼곡히 글씨가 적혀있다

처음에 훑어봤을 때 ... 어려운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목차를 읽어봤다.


제 1장 : 영처의 눈과 마음으로

제2장 : 독서하고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제3장 : 조선을 모습을 담아내다.

제4장 : 새로 쓴 동아시아의 삼국의 문예 비평사

제5장 : 조선의 풍속과 문화의 재발견

제6장 : 북학의 높은 뜻을 세우다

제7장 : 18세기 일본을 통찰하다.

제8장 : 마지막 호, 아정에 담김 의미


이 책을 지은 한성주님은 역사 평론가겸 고전 연구가 이다.

그가 왜 '이덕무 마니아'가 되었나?

처음 이덕무에게 관심을 둔 것은 18세기 동서양 백과전서파 지식을 연구하던  10년 전이다.

그의 글을 접할수록 당대의 엄격한 성리학적 틀에서 벗어나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왕성한 호기심과

지식욕, 일상이 글쓰기를 통해 자의식을 드러낸 개성적인 문장 등에 매료되어 '이덕무 마니아'가 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 '책만 보는 바보(간서치)와 같은 일부 모습만 알려진 이덕무의 다양하고 깊은 내면세계의 주목한

그에 대한 오랜 애정과 연구의 결실이다.


여기서 잠깐 이덕무에 대해서 알아보고 가자 ^^

조선후기 서울 출신의 실학자 그룹인 이용후생파()의 한 가지를 형성한 이덕무는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과 더불어 청나라에까지 사가시인()의 한 사람으로 문명()을 날린 실학자이다. 그는 경서()와 사서()에서부터 기문이서()에 이르기까지 박학다식하고 문장이 뛰어났으나. 서자였기 때문에 출세에 제약이 많았다. 그러나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하여 서얼 출신의 뛰어난 학자들을 등용할 때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 등과 함께 검서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박물학에 정통한 이덕무는 사회 경제적 개혁을 주장하기 보다는 고증학적인 학문 토대를 마련하여 훗날 정약용(), 김정희() 등에 학문적 영향을 준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영처고 의 책 첫머리에 이렇게 쓴적이 있다.

"글을 짓는 것이 어찌 어린아이와 장난치며 즐기는 것과 다르겠는가?

 글일 짓는 사람이 마땅히 처녀처럼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감출 줄 알아야 한다."


이덕무는 자신이 글을 쓰는 그간엔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처녀의 순수함이 자리잡고 있어서

'진정' 그대로임 말한다. 천친함과 순수함은 가식이나 인위가 아니라 진정성을 공통분모로 삼는다

다시 말해 이덕무에게 창작의 원동력을 다름 아닌 진정성이다. 그것은 많이 배우고 자식을 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억지로 힘쓴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글을 짓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처녀처럼 순수한 진정 그대로의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사람에게 과시하거나 명에를 구하기 위해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이기에,

애써 꾸미거나 잘 쓰려고 억지로 힘쓸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천진하고 순수한, 진실한 감정을 드러낼 뿐이다.


이 글을 보니 얼마 전에 읽은 노자의 인간학에서 나온 글이 떠오른다

'진실한 말에는 꾸밈이 없고, 꾸며진 말에는 진실이 없다.


필자는  이덕무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독서와 기록, 그리고 호기심과 탐구를 자신 있게 꼽았다.

이 키워드가 이덕무가 조선의 풍속과 문화를 재발견하는 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덕무는 나이 스물여덟 때 '서해여언'이라 제목을 붙인 여행기를 썼다.

이글은 단순한 여행기록이 아니라 개성과 해주와 장연 일대에 이르는

서해 중북부 지방의 독특한 풍속과 역사 문화를 고찰하고 기록한 일종의 풍속 역사서이다.


시아버지가 상을 당한 사촌 여동생을 데려오는 이 특별한 숨 가쁜 여정에도

이덕무는 자신이 거쳐간 곳의 풍속과 역사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 그리고 기록을 한순간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한양을 오고 가는 20일 동안 보고, 듣고, 묻고, 겪은 일들을 기록해 한 권의 책을 만든 것이다.


이덕무는 동서양의 학문을 두루 섭렵했을 뿐아니라 조선의 문물과 제도, 인물과 역사, 문화와 풍속 등

백과사전적 지식ㅇ르 탐구하고 기록으로 남긴 전례를 찾아 보기 힘들정도의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성리학 질서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던 시대에서 제대로 취급받지 못했던 온갖 분야의 지식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혁신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패관 소설과 소품문 등 새로운 문제를 주창해 문예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평생 성현의 삶만을 모델로 추구했던 성리학적 지식인들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개인의 개성과 기호를 중시한 다양한 활동을 선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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