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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은하계
마샬 맥루한 지음, 임상원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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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기 시대가 되어 우리의 기술적 도구 속에 함축되어 있는 공존의 즉시성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진정 새로운 전환점을 낳았다. (...) 하나의 경험적 장 (...) 집합적인 의식 (...) 감각간의 상호작용 (...) 기술이 바퀴나 알파벳 또는 화폐처럼 속도가 느린 것인 한 그들이 분리된 것이고 폐쇄적인 체계라는 사실은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수용될 만하다. 이 시대는 필수적으로 인간의 확장된 감각이 집합적으로 상호작용한다.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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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은하계
마샬 맥루한 지음, 임상원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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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시대에 우리는 인간의 상호의존이나 표현에 있어서 새로운 형상과 구조와 대면하고 있다. 이들 새로운 형상과 구조는 "구어적"이다. (...) 인지 형식의 변화는 항상 낡은 인지 형식의 고집 때문에 지연되곤 한다. 우리의 눈에는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이 중세의 사람들로 보인다. 중세인은 그들 스스로를 고전적인 사람으로 생각했고, 이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현대인으로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후손에게 문자 그대로 지난 150년 동안의 활동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놓은 중요하고 새로운 요소들의 의미를 충분히 깨닫지 못한 르네상스인으로 보일 것이다.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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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읽어 나가며 오르페우스와 나사렛 예수를 비교하는 귀절이 눈에 띄더군요.

역시, 그렇지, 싶었던 것이, 천상 예술가의 끝자락을 붙잡고 늘어질 수 밖에 없을

운명이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치면서 읽었습니다.

 

'열광적인 예언자'인 예수는 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자,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필요도 없이 무조건적인 추종을 요구한다지요.

언제나 반복되는 예수의 예언적인 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또 그럼으로 인해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보잘 것 없는 오르페우스.

그는 오직 한 사람, 에우리디케만을 사랑하여 지옥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모두들 다 아시듯이, 그는 자신을 뒤따라 오는 아내를 돌아보지 말라는

지하 세계 통치자의 조건을 어기고 말죠.

 

쥐스킨트는 오르페우스의 이러한 '실수'에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초인간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자,

인간으로서 언제든지 커다란 실수, 끔찍하게 바보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는 자.

흥미로운 건 그가 이런 오르페우스를 '예술가의 전형'으로 본다는 겁니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는 필연적으로 에우리디케(청중)가 있는 뒤쪽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어떤 오페라 가수도 청중에게 등을 돌린 자세로 계속 노래할 수는 없다. 설사 오페라 감독이 수천 번 달콤한 유혹이든 위협이든 그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그는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예술의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모든 예술가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밖으로 표출하기 위해 무대에 등장하며, 따라서 자신의 예술이 청중에게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볼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금지를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의 글을 읽고 예술가-되기를 지향하는 나/우리의 모습이 조금은 자랑스러워졌습니다.

나/우리/예술가 모두에게 이 구절을 바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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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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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킨트가 말하는 예술론이 드러나 있는 짧은 에세이.

읽어 나가며 오르페우스와 나사렛 예수를 비교하는 귀절이 눈에 띄더군요.

 역시, 그렇지, 싶었던 것이, 천상 예술가의 끝자락을 붙잡고 늘어질 수 밖에 없을

 운명이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치면서 읽었습니다.

 

 '열광적인 예언자'인 예수는 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자,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필요도 없이 무조건적인 추종을 요구한다지요.

 언제나 반복되는 예수의 예언적인 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또 그럼으로 인해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보잘 것 없는 오르페우스.

 그는 오직 한 사람, 에우리디케만을 사랑하여 지옥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모두들 다 아시듯이, 그는 자신을 뒤따라 오는 아내를 돌아보지 말라는

 지하 세계 통치자의 조건을 어기고 말죠.

 쥐스킨트는 오르페우스의 이러한 '실수'에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초인간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자,

 인간으로서 언제든지 커다란 실수, 끔찍하게 바보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는 자.

 

흥미로운 건 그가 이런 오르페우스를 '예술가의 전형'으로 본다는 겁니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는 필연적으로 에우리디케(청중)가 있는 뒤쪽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어떤 오페라 가수도 청중에게 등을 돌린 자세로 계속 노래할 수는 없다. 설사 오페라 감독이 수천 번 달콤한 유혹이든 위협이든 그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그는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예술의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모든 예술가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밖으로 표출하기 위해 무대에 등장하며, 따라서 자신의 예술이 청중에게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볼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금지를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의 글을 읽고 예술가-되기를 지향하는 나/우리의 모습이 조금은 자랑스러워졌습니다.

나/우리 모두에게 이 구절을 바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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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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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에 대한 서술을 해 나가는 쥐스킨트.

그의  예술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무엇보다 

오르페우스와 나사렛 예수를 비교하는 귀절이 눈에 띌 것이다.

역시, 그렇지, 싶었던 것이, 천상 예술가의 끝자락을 붙잡고 늘어질 수 밖에 없을

운명이구나, 하며 개인적으론 무릎을 탁! 치면서 읽었다.

 

'열광적인 예언자'인 예수는 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자,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필요도 없이 무조건적인 추종을 요구한다.

언제나 반복되는 예수의 예언적인 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또 그럼으로 인해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보잘 것 없는 오르페우스.

그는 오직 한 사람, 에우리디케만을 사랑하여 지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모두들 다 알듯이, 그는 자신을 뒤따라 오는 아내를 돌아보지 말라는

지하 세계 통치자의 조건을 어기고 만다.

쥐스킨트는 오르페우스의 이러한 '실수'에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초인간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자,

인간으로서 언제든지 커다란 실수, 끔찍하게 바보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는 자.

흥미로운 건 그가 이런 오르페우스를 '예술가의 전형'으로 본다는 것.

그에 따르면 예술가는 필연적으로 에우리디케(청중)가 있는 뒤쪽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어떤 오페라 가수도 청중에게 등을 돌린 자세로 계속 노래할 수는 없다. 설사 오페라 감독이 수천 번 달콤한 유혹이든 위협이든 그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그는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예술의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모든 예술가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밖으로 표출하기 위해 무대에 등장하며, 따라서 자신의 예술이 청중에게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볼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금지를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의 글을 읽고 예술가-되기를 지향하는 나/우리의 모습이 조금은 자랑스러워졌다.

나/우리 모두에게 이 구절을 바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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