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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두 주인공이 현실에서 처음 만나는 곳은 병원이었다. 손가락이 절단된 인선은 봉합 부위를 3분마다 찔러야 했다. 신경 윗부분이 죽지 않으려면 계속 피를 흘리고 고통을 느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손가락을 간신히 지킬 수 있다. 만약 고통을 외면하면 손가락을 완전히 잃게 되고, 그 후유증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환상통이라는 또 다른 고통도 함께 찾아온다.
인선이 기르던 앵무새를 살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경하는 눈보라를 뚫고 인선의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여린 생명은 이미 죽어 있었고, 경하는 언 땅을 헤쳐 새를 묻어 주었다. 그 순간, 경하에게도 환상통이 시작되었다. 죽어간 생명들이 어둠 속 작은 불빛 아래에서 그림자를 드러냈다.
작가는 묻는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의 바탕이 된 제주 4.3사건을 어떤 이들은 이미 너무 오래된 일이라고 한다. 사라진 존재를 굳이 불러내야 하느냐고도 말한다. 이미 실체를 잃고 환상으로만 남은 존재가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불빛 뒤에 남은 그림자를 통해 그들을 느끼고, 본다. 그것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어도, 우리의 눈과 감각,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들이 존재한다.
인선의 어머니는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했지만 삶의 곳곳에서 오빠를 느꼈다. 죽음을 확인하지 못한 채 살아 있을 거라는 기대가, 시간이 흐르면서는 차라리 죽음을 확인하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인선의 어머니는 평생 오빠라는 상처를 부여잡고 살아온 셈이다. 그 고통을 견디는 동안 그녀는 우리에게 그들의 죽음과 진실을 전했다. 그리고 고통을 견뎠던 이들은 그 이름들을 현대사에 남겼다. 공권력의 죽음이란 상처는 신경을 남기기 위해 찔린 바늘들이었다.
지난해 우리도 계엄이라는 상황을 맞았다. 공권력이 강력해지는 순간, 그동안 상처를 껴안고 살아온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바늘에 찔린 민초들이 신경을 지켜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또 한 번 살아남았다.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는 결국 작별하려 했지만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마음을 선언한 말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그들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고, 우리는 그들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끝내 작별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상처를 찌르고,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이 책은 끝나지 않은 고통을 상기시키고, 왜 우리가 그 고통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상처를 마주해야 하는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