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1912년 - 현재)은 신해혁명의 성공으로 수립된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로, 이후 각 지방의 실력자들이 군벌로 등장하였고, 특히 위안스카이는 자신이 거느리는 북양 군벌을 이끌고 쑨원으로부터 대총통 자리를 넘겨받은 후 1916년 사망하자, 이후 그의 부하들이 할거했는데, 대표적으로 안휘파의 돤치루이, 직예파의 펑궈장, 차오쿤, 오패부, 봉천파의 장쭤린, 산시파의 옌시산 등이 중국 각지에서 할거하였으며, 한편 중화민국 최초의 공화정 체제인 북양 정부는 1928년까지 존속했고, 그 후 북벌이 재개되고 모든 세력이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 수중으로 들어오면서 이로써 난징을 수도로 하는 중국 국민당 주도의 국민 정부가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천두슈와 마오쩌둥을 주축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이 농민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고 있었고, 중국 국민당은 중국 공산당과 제1차 국공 합작을 이루어냈으나, 북벌 과정에서 분열이 일어나, 국공 내전이 시작되었는데, 국민 정부는 1931년 만주사변 이래 일본의 침략에 무저항주의를 택하고 오로지 '공산당 타도'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폈으나, 시안 사건을 계기로 제2차 국공합작이 성립되어 항일 민족 통일전선이 결성되었습니다. 중일전쟁 중에 수도 난징이 점령당하고 충칭을 임시 수도로 정해 옮겼지만, 끝내 일본 제국이 패망하자 난징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전후 처리 과정에서 내분이 생겨 제2차 국공 내전이 발발하였고, 한편 국공 내전 중에 정부는 새로운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을 통과시켜 국민 정부를 헌정 체제로 격상시켰고, 1949년 4월에 중국 인민해방군이 수도 난징을 점령하면서 중국 공산당이 사실상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되었습니다. 기세를 몰아 중국 공산당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이후 공식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는 이 과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패닉 상태에 빠져, 국민당에 내분이 일어나 공산당 밑으로 들어가거나(중국 국민당 혁명위원회) 타이완, 영국령 홍콩 또는 국외 등지로 피난하는 국민당 관계자도 속출했고, 한편 중국 국민당은 장제스의 지도하에 현재의 타이베이 시로 정부를 이전하여 지금까지 중화민국의 법통이 계승되고 있는 현대사의 과정에 대해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