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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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이하 어나벨)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우선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이름값이 소설의 인기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정적이고 은유적인 문체로 ‘청춘’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솜씨도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방황하는 젊음을 그리는 장면은 언뜻 생각하면 급류처럼 사납고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도 실제는 독자의 상상과 많이 다르다.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자문하는 인물들, 우리가 또 하나의 그들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이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약 2년 전,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대히트했던 이유가 모든 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엄마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다면 ‘어나벨’의 원동력은 누구나 앓아봤을 혹은 앓고 있을 청춘의 열병이다.

그것은 질풍노도처럼 밀려온다.

 

대학 때 은사인 윤교수가 병원에 입원해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전화를 받은 정윤은 윤교수와의 첫 대면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 그녀는 스무 살이었다. 윤은 스무 살의 자신을 추억한다. 대학 동창인 명서, 미루,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인 단이와 함께 했었던 젊은 날, 이야기는 다시 오지 않을 그 날로 시간을 되돌리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단테는 “오늘이라는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다. 나는 오늘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 것일까?

 

신경숙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에서 어쩌든 슬픔을 딛고 사랑 가까이 가보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읽히기를,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한쪽 손가락이 가 닿게 되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병을 앓던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갈 필요가 없는 병원의 대기실에 가 앉아 있었고 학교를 휴학한 윤이 단이와 첫 키스를 한 뒤에 소리를 내며 웃는 것이나 아픈 기억이 있는 집에 윤과 함께 가보는 마루의 모습 등은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장치이다. 알게 모르게 배치되어 있는 장치와 의미들을 탐색하는 것도 어나벨을 읽는데 재미를 더해준다.

 

이 소설은 최신작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약간 엔틱하다. 인터넷, 휴대폰 대신 전화기와 노트가 등장하는 어나벨은 독자의 나이에 따라 각기 조금씩은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윤이 마음속에서 의문이 솟아날 때마다 하는 행동인 도시 걷기, 타자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황제’.......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는 읽으면서 의아해할 것이 분명하다. (사실 나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4명의 주요등장인물 중 굳이 우선순위를 따져보자면 제1순위는 윤, 2순위는 명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소설 전체적으로 4명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서로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각자의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상대를 의지했고 아픔이 치유, 회복되기를 바랐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시간은 언제나 밀려오지만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젊은 날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누군가는 작별하지 않고 누군가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또 다른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p. 11)

 

표지를 인상적으로 장식한 그림에 대해 간략히 적어볼까 한다. 그 그림은 ‘존 앳킨슨 그림쇼’라는 화가의 ‘와피데일’(영국의 한 골짜기 지명)이라는 작품이다. 작가가 직접 고른 표지여서 더 그런지도 몰라도 이 소설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러고 보면 요즘의 책 표지들은 예사롭지가 않아 보인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는 의미심장한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끝으로 적어볼까 한다. 청춘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음미해보면 좋을 듯하다.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편으로 건너가는 와중에 있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종교 애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야.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어. 우리는 무엇엔가에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너야 해. 그 무엇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기도 할 테지. 지금 여러분은 당장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배나 뗏목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할 거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 실어나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p.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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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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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을 꾸는 동안은 그것은 진짜 같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그것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지.

 

최근에 개봉한 한 영화에 나오는 대사이다. 진짜 같지만 진짜가 아닌 꿈, 그렇다면 우리의 지금은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꿈일까.

 

마흔두 살의 박선녀는 좋지 않은 몸을 이끌고 대성백화점의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다. 그때 시간은 다섯 시 사십분이었다. 그녀가 지하 일층 매장에 들어서서 베이커리를 고르고 있던 여섯시 오 분,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며 백화점이 무너진다.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박선녀는 외친다. “거기 누구 있어요?”라고....... 한 여자가 거기에 답했다. “네……. 여기요.”

거리의 소음도, 중장비 소리도, 바람소리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며 꿈과 같은 소설 ‘강남몽’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언젠가 황석영 작가가 한 특강에서 자신 작품의 화두가 ‘공동체와 개인’이라고 말했다 한다.

그의 소설은 얼핏 봐서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인 듯하나 궁극적으로는 개인과 개인이 모여 형성된 공동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작이었던 ‘개밥바라기별’이 ‘준’이라는 남자를 통해 청춘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했다면 ‘강남몽’은 5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강남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 근대화의 허상을 기록하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강남몽’의 형식은 대하소설과 비슷하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1995년까지이다. 그리고 다섯 인물들의 관계는 작가의 말처럼 욕망과 운명 속에서 서로 얽혀서 돌아간다. 짧지 않은 시간과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370여 페이지에 압축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박선녀가 박 여사님이 되는 과정, 김진이 일본의 밀정에서 대성건설의 회장으로 변모하는 모습 등은 그야말로 꿈과 같은 장면이다. 이 소설은 화려해보이지만 그 실체는 허무하기 짝이 없다. 매출순위 전국 2위를 기록했던 쇼핑 명소 대성백화점이 순식간에 붕괴된 것처럼 말이다. 박선녀에서 임정아까지 ‘강남몽’의 주역들은 인생의 덧없음을 체험하게 된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인물들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약간 기웃거릴지도 모른다. 실제 인물들의 본명을 약간 변형해 등장시켰다고 한다. 홍양태와 강은촌, 이희철과 장영숙 등, 80년대에 태어났거나 그 시기를 살아온 독자들의 경우 소설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8개월의 시차를 두고 차례로 무너졌던 1995년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을 그 참상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었던 우리들이 어찌 외면할 수 있을 것인가.

 

강남은 서울의 한강이남 동쪽과 남쪽지역을 가리킨다. 집값 급등의 핵심으로 불리는, 이론바 ‘버블 세븐’ 지역인 강남구와 송파구, 서초구가 바로 이 지역이다. 황석영은 제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삶을 융합시켜 지금의 강남이,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꿈은 이루어지긴 했지만 완전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았다. 꿈이 진짜가 아닌 것처럼…….

 

인생의 덧없음과 부귀영화의 헛됨을 비유하는 한단지몽(邯鄲之夢)이라는 말이 있다. 재력이 있는 박선녀가 무너진 시멘트 더미 속에서 죽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김진이 머리를 감쌀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거의 유명한 주먹이었던 홍양태가 카지노에서 시간을 소비하는 신세가 된 것 모두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헛된 것인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 황석영이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점은 무엇일까. 작가의 말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중국 고전 <홍루몽>은 주인공이 다른 이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현실의 자기 그대로인가 하는 구분이 문제가 아니라 서서히 몰락해가는 상류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현실세계가 어째서 변해야 하는가를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소설의 제목을 ‘강남몽’이라고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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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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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비의 인물 헤르타 뮐러

 

헤르타 뮐러는 200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전까지는 우리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시인)였다. 데뷔한 지가 20년이 다 되어가는 그녀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정식으로 출판된 시기가 바로 올해 초이다. 1953년 8월 17일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뮐러, 가난한 마을에서 자란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장난감은 TV나 인형이 아닌 낱말(언어)이었다. 낱말들을 가지고 노는 습관은 단순함을 벗어나 그녀의 삶과 문학에 밑거름이 된다. 뮐러의 이러한 특징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동구권의 근현대사가 융합된 소설 중에서 하나가 바로 <숨그네>이다.

 

2. 처참하게 아름다운 말들의 향연

 

<숨그네>는 열일곱 살의 동성애자 레오의 시점에서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강제수용소는 군사적, 정치적 이유 또는 처별이나 격리 등의 목적으로 재판을 거치지 않고 강제로 다수의 사람들을 수용하는 시설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된 곳의 실상을 소설로 표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뮐러의 곁에는 든든한 협력자이자 동료가 있었다. 실제로 강제수용소에서 5년간 노역했던 파스티오르의 경험에서 이 책은 탄생되었다.(저자의 어머니도 그와 똑같은 일을 겪어야 했다.)

파스티오르는 수용소의 상황을 ‘실존의 절대영도’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이론적인 온도의 최저점인 절대영도 -273.15 °C, 상상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의 삶은 얼마나 처참할 것인가. 뮐러와 파스티오르 두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처참함을 시적인 말들로 표현했다. 무른 석탄을 하역할 때만 쓰는 심장삽, 배고픔을 의미하는 배고픈 천사, 인간의 숨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흔들리는 것을 뜻하는 숨그네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은 겉모습과 달리 강한 힘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3. 인간은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

 

레오가 수용소에서 배고픈 천사와 싸울 수 있었던 힘은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서 파생되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 는 심장삽의 공범이 되었고 배고픈 천사의 적수가 되었다.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p. 17)

 

그는 이 말을 되뇌며 삽질을 했고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어냈다. 지금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어쩌면 희망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고통은 없다. <숨그네>는 공포와 불 안속에서도 희망을 갖고자 했던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죽하면 타인의 죽음을 보고 한방울넘치는행복이라고 말했을까. 그만큼 수용소에서의 삶은, 그리고 배고픔을 참아내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었다.

 

4.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숨그네>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그 당시 루마니아를 포함한 다수의 동구권 국가들은 소련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고 희생되었는지는 현재까지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6,70년 전의 일이지만 과연 그것이 단순한 과거사의 한 부분이기만 한 것일까. 사실 현재에도 소설 속 수용소와 같은 공간들이 존재하며 처참한 상황들이 계속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뮐러가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북한이 강제수용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큰 강물이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들의 삶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이야기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 인류가 소멸되지 않는 한 완전히 끝나는 이야기라는 것은 없다.

 

5. 고정관념을 깨는 도끼

 

소설가 카프카는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보통 고정관념이나 편견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변화무쌍하기를 즐겼던 카프카에게 문학(책)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구였다. 그렇다면 헤르타 뮐러는 자신의 문학을 어떻게 정의할까.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 “

 

슬픔과 비참함을 이야기하는 비극에 시의 옷을 입힌다. 비극은 문자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다. 과연 이런 생각을 누가 해 보았을까. 비극은 슬픈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시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도전장을 던진 뮐러의 작품 <숨그네>는 그야말로 고정관념을 깨는 도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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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2010-08-0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문학동네 편집부의 고우리입니다.
이번에 제작하는 소책자 <헤르타 뮐러 스페셜북>에 독자님의 리뷰 일부를 게재하고 싶어 사용 허가 요청 드립니다. ^^ 보시는 대로 답글 또는 메일kupsch@naver.com로 허락 여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용하려는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고통은 없다. 『숨그네』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자 했던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맙습니다.


고우리 2010-08-09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겸성님, 진행 일정이 급해 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책 나오면 한 부씩 보내드리겠습니다. 메일로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겸성 2010-08-30 21:34   좋아요 0 | URL
집에 사정이 있어 이제야 봤네요...
 
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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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에 속지 말라고, 현실이라는 건 언제나 단 하나뿐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택시 운전기사, 또한 그 말을 되새기며 철책을 넘어 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려가는 한 여자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화제작 ‘1Q84는 현실의 세계와 현실이 아닌 세계의 경계선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소설은 웬만한 장편소설 네 권 정도의 분량을 자랑하는 그야말로 대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끼게 하기는커녕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몰입감을 독자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택시 운전기사가 여주인공에게 그런 말을 한 이유,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1Q84의 의미, 그리고 같은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 두 남녀주인공인은 재회할 수 있을지……. 수많은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해두었다. 아! 남자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신비의 소녀에 대한 궁금증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더 정확하게는 여자들을 불행하게 만든 남자들을 저쪽 세계로 보내버리는 살인자이면서 사람들에게 운동을 지도하는 인스트럭터이기도 한 아오마메, 그녀에게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덴고. 열 살 때 좋아해서 손을 잡았던 기억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그 짧았던 순간, 그러나 그 강렬했던 기억 때문에 1Q84라는 새로운 세계로 와버린 아오마메는 언제부터인가 풍경이 변하고 자신이 존재하는 장소의 룰이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소설가 지망생이면서 입시학원의 유능한 수학강사이기도 한 덴고, 어느 날 문예지 편집자인 고마쓰가 조금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다고 말하며 그에게 후카에리라는 소녀가 쓴 소설 응모작 <공기 번데기>의 리라이팅을 부탁한다. 이 일로 인해 후카에리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덴고의 삶은 출구를 찾기 힘든 숲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조금 특별한 아이디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가 느꼈던 불길한 울림은 현실로 다가온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상실되어 가고 소설 속에 묘사했던 세계는 진짜가 된다.

 

1Q84의 모티브는 조지 오웰의 1984이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빅 브라더라는 독재자를 등장시켰고 그 용어는 그 이후 사회적 아이콘이 되었다. 그렇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1Q84>에서 무엇을 등장시켜 사회적 아이콘으로 만들고 있을까.

 



"실제 이 세계에는 더 이상 빅 브라더가 나설 자리는 없네. 그 대신 리틀 피플이라는 것이 등장했어. 상당히 흥미로운 언어적 대비라고 생각지 않나? “

 

“리틀 피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야. 그것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조차 우리는 알지 못하지. 하지만 그건 분명하게 우리의 발밑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어.”

 

에비스노 선생의 말처럼 이 소설에는 빅 브라더 대신 리틀 피플이 등장한다. 빅 브라더가 나설 자리가 없는 이 세계에 대타로 등장한 리틀 피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선한지 악한지,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그 어떤 것도 알려져 있지 존재이다. 그런데 과연 리틀 피플이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는 리틀 피플과 같은 존재가 없는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특징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 중에 “입체적이다.”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라는 말이 있다.

 

1층 홀에서는 네 명의 여자들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마를 맞대고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오마메의 눈에 그것은 현실의 풍경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은 가상의 그림에서 구도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림 제목은 ”비밀을 함께 나누는 여자들“쯤 될까. 아오마메가 그 앞을 지나가도 그녀들이 만들어낸 구도를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 책은 각 장마다 부제가 존재한다. 위에 인용한 문장에서 “비밀을 함께 나누는 여자들”은 ‘1Q84' 1권 제19장의 부제이다. 그냥 얼핏 보면 평범한 문장이지만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거장이나 천재라는 말을 듣는 이들에겐 확실히 특별함이 있다. 타인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말이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열광하는 것이리라. 나와 같이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참 부러운 특별함이다.

 

덴고는 소설을 쓰고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그 이야기는 달이 두 개인 세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개의 달이 뜬다면 인간의 머리는 더 이상해지는 거 아니냐고, 정상이 아닌 일이 줄줄이 생길 것 같다고 걸프렌드는 말한다. 1Q84를 읽다 보면 정말 그런 세계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지금 있는 달 한 개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괴로운데 말이다.

 

하루키의 작품들에 많이 등장하는 테마 중에 하나가 바로 ‘상실’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그 상실의 느낌이 조금씩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윽고 썰물이 되자 나는 혼자 모래밭에 남겨져 있었다. 나는 무력해서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슬픔은 깊은 어두움으로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울곤 했다. 운다기보다 마치 땀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다.

 

위는 ‘상실의 시대’의 한 대목이다. 상실의 슬픔을 처절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럼 ‘1Q84에서의 상실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가.

 

슬슬 고양이들이 올 시간이다. 그는 자신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은 고양이 마을 같은 게 아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곳은 그가 상실되어야 할 장소였다. 그곳은 그 자신을 위해 준비된 이 세상에는 없는 장소였다. 그리고 열차가 그를 다시 원래의 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그 역에 정차하는 일은 이제 영원히 없는 것이다.

 

작품의 시점이나 분위기가 달라서인지 상실의 감정이 조금은 담담하게 느껴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전작들과 비교, 대조를 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또 그런 방법이 독서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오마메에게 있어 덴고와의 기억이 지울 수 없는 것이었듯이 덴고 역시 아오마메와의 기억은 용기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항상 격려해주었다. ‘너는 고독하지 않다.’고…….

사람은, 그리고 우리의 삶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타인들이 존재한다. 우리들이 존재하는 세계자체가 공동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고독을 느낀다. 자신에게 따스함을 전해줄 누군가를 소망한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볼 때 아오마메와 덴고는 행복한 존재들이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소설 곳곳에 적절하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감정은 ‘1Q84'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책의 후반부에 가서야 덴고는 이 세계가 변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소설에 묘사했던 것처럼 두 개의 달이 뜨는,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그런 세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계의 어딘가에는 아오마메가 존재한다. 또한 덴고에게는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다. 그는 생각한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자고.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겠다고 결심한다.

 

아오마메를 찾자, 덴고는 새삼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리고 그녀가 누구이건.

 

‘1Q84' 제3권이 내년 여름에 출간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현재 이 소설은 완결된 상태가 아니다. 2권의 결말이 아오마메를 찾기로 한 덴고에서 끝났으니까 아마도 3권은 두 사람의 재회를 다루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완전한 결말을 기다리는 동안 하루키가 1,2권에 숨겨둔 수많은 퍼즐들을 풀어보자.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세계,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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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인생에 있어서 큰 기쁨은 당신은 못해낸다고 세상에서 말한 것을 당신이 해냈을 때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려 좌절을 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약 12년 동안이나 재임했다. 세상에서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을 바로 루즈벨트 자신이 해냈다.

 

<나는 가능성이다>의 주인공 패트릭 헨리는 1988년 3월 10일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눈이 없는 상태(무안구증)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두 다리와 팔이 기형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경우 죽음보다 더한 심적 고통을 겪으며 힘겹게 살아갈 테지만 그는 달랐다.

 

그러니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 가족이 전혀 생각도 못 했던 레몬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이 세상에 온 셈이다. 아마도 우리 가족은 레몬보다 오렌지를 더 좋아했을 것이다. 오렌지가 더 달고 덜 시니까. 하지만 삶은 원래 이런 것이다. 싫어도 받아들고 가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애를 써본들 레몬을 오렌지로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 부모님은 살면서 어떤 일이 생기든 포기하지 말고 맞서 부딪쳐나가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p. 19)

 

헨리는 레몬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태어난 존재였다. 그것도 최하품의 레몬…….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고난과 맞서 싸웠다. 극심한 장애 앞에서 포기할 만도 하련만 자신이 처한 현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감동과 놀라움을 선사한다. 헨리의 부모님 또한 대단한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의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의 부모님들도 감당하기 벅찬 시련을 겪고 있었다.

 

“당신 이거 알아요?”

아내가 울면서 소리쳤다.

“내가 얼마나 강하다고요! 난 남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련을 겪고 있어요. 하지만 잘 감당하고 있다고요. 내 뜻대로 해내고 있어요. 어쩌면 내 아들에게 다른 아이들 같은 발전이란 게 없을지도 몰라요. 유명한 운동선수나 훌륭한 외과의사가 못 될지도 몰라요. 아니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조차 그 아이에겐 어려울지 모르죠.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아둬요. 그 아이도 자기 능력 안에서 뭐든 될 수 있다고요.” (P. 143)

 

세상의 편견에 노출된 아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엄마의 슬픔과 아픔 , 아마도 할 수만 있다면 아들 대신 엄마인 퍼트리샤 본인이 장애인이 되고 싶었으리라.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니까 말이다. 이 부모는 믿고 있었다. 자신들의 아이도 뭐든 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그런 믿음과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패트릭 헨리는 피아노를 칠 수 있었고 기적의 트럼펫 소년이 될 수 있었다.

 

이 책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20대 청년의 이야기이다. 그가 불가능의 벽을 깨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특히 아버지 존의 도움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존은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봤으며 헨리의 첫 번째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헨리를 위해 자신을 헌신했다. 아들의 그림자가 되어 살신성인하는 그의 모습은 모정 못지않은 부정을 느끼게 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패트릭 헨리가 긍정적인 태도와 충만한 사랑으로 우리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생의 본보기라고 말했다. <나는 가능성이다>를 통해 우리는 어떤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을까.

 

헨리는 책의 말미에 매일을 여름방학 마지막 날처럼 살라고 써 두었다. 비록 똑같은 하루지만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아쉽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매일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게 된다면 누구나 다 지금보다는 좀 더 보람찬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We are potential! 우리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현실의 나는 지금 이 순간에 노력하고 있는가를 반성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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