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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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을 꾸는 동안은 그것은 진짜 같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그것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지.

 

최근에 개봉한 한 영화에 나오는 대사이다. 진짜 같지만 진짜가 아닌 꿈, 그렇다면 우리의 지금은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꿈일까.

 

마흔두 살의 박선녀는 좋지 않은 몸을 이끌고 대성백화점의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다. 그때 시간은 다섯 시 사십분이었다. 그녀가 지하 일층 매장에 들어서서 베이커리를 고르고 있던 여섯시 오 분,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며 백화점이 무너진다.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박선녀는 외친다. “거기 누구 있어요?”라고....... 한 여자가 거기에 답했다. “네……. 여기요.”

거리의 소음도, 중장비 소리도, 바람소리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며 꿈과 같은 소설 ‘강남몽’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언젠가 황석영 작가가 한 특강에서 자신 작품의 화두가 ‘공동체와 개인’이라고 말했다 한다.

그의 소설은 얼핏 봐서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인 듯하나 궁극적으로는 개인과 개인이 모여 형성된 공동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작이었던 ‘개밥바라기별’이 ‘준’이라는 남자를 통해 청춘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했다면 ‘강남몽’은 5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강남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 근대화의 허상을 기록하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강남몽’의 형식은 대하소설과 비슷하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1995년까지이다. 그리고 다섯 인물들의 관계는 작가의 말처럼 욕망과 운명 속에서 서로 얽혀서 돌아간다. 짧지 않은 시간과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370여 페이지에 압축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박선녀가 박 여사님이 되는 과정, 김진이 일본의 밀정에서 대성건설의 회장으로 변모하는 모습 등은 그야말로 꿈과 같은 장면이다. 이 소설은 화려해보이지만 그 실체는 허무하기 짝이 없다. 매출순위 전국 2위를 기록했던 쇼핑 명소 대성백화점이 순식간에 붕괴된 것처럼 말이다. 박선녀에서 임정아까지 ‘강남몽’의 주역들은 인생의 덧없음을 체험하게 된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인물들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약간 기웃거릴지도 모른다. 실제 인물들의 본명을 약간 변형해 등장시켰다고 한다. 홍양태와 강은촌, 이희철과 장영숙 등, 80년대에 태어났거나 그 시기를 살아온 독자들의 경우 소설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8개월의 시차를 두고 차례로 무너졌던 1995년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을 그 참상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었던 우리들이 어찌 외면할 수 있을 것인가.

 

강남은 서울의 한강이남 동쪽과 남쪽지역을 가리킨다. 집값 급등의 핵심으로 불리는, 이론바 ‘버블 세븐’ 지역인 강남구와 송파구, 서초구가 바로 이 지역이다. 황석영은 제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삶을 융합시켜 지금의 강남이,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꿈은 이루어지긴 했지만 완전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았다. 꿈이 진짜가 아닌 것처럼…….

 

인생의 덧없음과 부귀영화의 헛됨을 비유하는 한단지몽(邯鄲之夢)이라는 말이 있다. 재력이 있는 박선녀가 무너진 시멘트 더미 속에서 죽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김진이 머리를 감쌀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거의 유명한 주먹이었던 홍양태가 카지노에서 시간을 소비하는 신세가 된 것 모두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헛된 것인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 황석영이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점은 무엇일까. 작가의 말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중국 고전 <홍루몽>은 주인공이 다른 이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현실의 자기 그대로인가 하는 구분이 문제가 아니라 서서히 몰락해가는 상류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현실세계가 어째서 변해야 하는가를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소설의 제목을 ‘강남몽’이라고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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