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 간의 질서를 잡고, 구성원을 양육하고, 구성원을 교육하는 것은 유교에 있어서의 가족과 국가의 공통점일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 모든 가족과 모든 국가의 공통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근거로 유교가 가족과 국가의 차이를 무시했다고 비판한다면, 이러한 비판은 동서고금 모든 학파와 모든 사상조류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 P426

陳亢이 공자의 아들 伯魚에게 "그대는 아버지(孔子)로부터 특별히 들은 것이 있느냐‘’고 묻자, 백어는 "아버지께서 ‘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셔서 詩를 배웠고, ‘禮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가 없다‘고 하셔 禮를 배웠다. 이 두 가지를 들었을 뿐이다"라고 답하였다. 이에 진항은 기뻐하면서 "하나를 물어 셋을 얻었다.
詩를 들었고, 禮를 들었고, 또 군자는 그 자식을 멀리함을 들었노라"라고 하였다(『論語季氏』 13). 이에 대해 배병삼은 다음과 같이 주석하였다(『한글 세대가 본 논어』 2, 문학동네, 2002, 354-355쪽). "마지막 구절, ‘군자는 그 자식을 멀리함을 들었노라‘는 것은 공자의 公平無私함을 지적하여 찬탄한 발언이다. 자기 자식이라 하여 사사로이 親狎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공공성을 至親에게도 통용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유교에 대한 끈질긴 오해, 즉 공공의 업무를 혈연의 사사로움으로써 개입하여 망가뜨린다는 이른바 가족중심주의(familism) 또는 연고주의(cronyism)를 유교의 탓으로 돌리는 주장들은 망발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적어도『논어』 속에서는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차라리 이 대목이 말해주는 것은 서구에서 사사로운 영역으로 치부하는 가정에서조차 공공성을 관철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족중심주의(anti-familism)라고 이름 붙일 수 있거나, 달리 공자의 가족주의란 오히려 ‘가족마저도 공공의 영역으로 공개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정반대의 정의가 가능하게 된다. 요컨대 ‘유교=가족주의=공적 영역의 부패=크로니 캐피털리즘‘이라는 근간의 항등식은 결코 경전적 근거를 갖지 못한 것이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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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는 ‘다른 사람의 몫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자유를 제한하였고, 밀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원칙으로 자유를 제한하였으며, 롤즈는 ‘다른 사람과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원칙으로 자유를 제한하였다. 그런데 역으로, 자유는 ‘다른 사람의 몫을 남겨주어야 한 - P274

다‘는 원칙을 제약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원칙과 ‘다른 사람과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원칙도 제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몫을 남겨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끼쳐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과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원칙은 자유에 우선하는 상위개념인 것이다. 로크의 단서나 밀의 위해원칙, 그리고 롤즈의 공평원칙은 논자가 제시한 ‘세 강령‘ 가운데 둘째의 "다른 사람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호혜적으로 감응하라"는 강령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논자가 ‘둘째 강령‘을 자유에 우선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 P275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를 기본권으로 규정하고서, 다시 다른 원칙을 끌어들여 기본권(자유)을 제약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역설적인 노릇이다.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는 다른 원칙이 있다면, 그 원칙은 기본권보다 더 기본적인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원칙을 보다 상위개념으로 설정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논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천도에서 도출한 ‘세 강령‘을 ‘자유‘에 우선하는 상위개념으로 삼는 것이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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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이 다양성을 옹호한 또 하나의 논거는 각자의 천부적 재능이 온전하게 발휘될 수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다양한 재능을 부여한 ‘神의 意志‘에 부합된다는 것이었다(밀, 『자유론』, 85쪽). 이것은 당시의 지배적인 종교였던 기독교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관용을 정당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神의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능력은 무엇이든지 다 활용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즉 ‘남을 죽일 수 있는 능력, 남을 속일 수 있는 능력, 남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는 능력‘ 등 이른바 ‘危害‘ 능력을 다 활용해도 되는 것인가?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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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金炯孝 교수는 ‘徒想像乎理一兮 若有田而不治‘는 ‘형식적 보편주의자들의 공허함‘을 지적한 것이고, ‘徒拘拘於分殊兮 若不耕而求穫‘은 ‘국수적 특수주의자들의 맹목성‘을 지적한 것이라고 강의한 바 있다. ‘형식적 보편주의자‘들은 ‘보편적 원리를 土着化ㆍ自己化하는 길을 자득하지 못하고 뻔한 소리만 외치는 빈곤한 知性‘들이며, ‘국수적 특수주의자‘들은 ‘보편적인 理法을 외면하고 어리석은 헛소리만 외치는 無識者‘들이라는 것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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恕 즉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를 중심으로 유교를 이해한다면, 유교가 우리의 삶에 결코 그렇게 ‘무거운 짐‘을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恕는 위해원칙보다는 포괄적인 것으로서, 타인에 대한 직접적인 해악은 물론 혐오감을 주는 행위까지 금지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위해원칙보다는 무거운 짐을 부과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흔히 지적하듯이, 오늘날 자유주의 사회에서 과연 "전통적인 미풍양속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사회적 유대감이 약화되어 사회가 불안정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소외감이 증대되었고, 경제분야에서는 착취현상이 현격하게 나타났다"고 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점들을 우리가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좀 더 많은 짐을 부담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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