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축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야말로 모든 일의 원인이 인간이라고 여기는 인간중심적 사고일지도 모른다. - P89
글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갈 길을 찾아갔는데 돌이켜보면 그 방향은 내가 찾아준 것이 아니라, 이미 나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눈 친구와 선생님들로부터, 읽은 책으로부터, 만난 사람들로부터,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어떤 영향으로부터 말이다. 어쩌면 글쓰기란 기준에 맞게 구색을 갖춰 말을 만들어내는 일이아니라, 주변의 상황과 온몸으로 호응하고 있으므로 자연스레 빚어지는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P106
증자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매일매일을 돌아봤던 모양이다. 오늘날도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물 1리터 마시기‘ ‘군것질 안 하기‘ ‘5000보 이상 걷기‘와 같이 자기 관리용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증자에게 스스로를 체크한다는 것은 세상과의 연결 관계를 돌아보는 일에 가까웠다. - P113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율성에 기초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유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유교의 恕는 항상 推己及人(能近取譬)으로 설명되어 왔는데, 이는 각자 사람들 ‘자신(己)‘이 바로 판단의 준거요 주체라는 점을 의미한다. - P143
주자는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한다는 것은 또한 어려운 일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일을 도모할 때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할 때에는 반드시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바있다.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자기의 최선을 다함은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면, 忠을 모든 사람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실천의 원리로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교에서의 忠은 다만 ‘권장사항‘에 해당되는 것이었음 또한 분명하다. - P133
유교에서는 ‘소극적 측면의 恕‘를 더욱 긴요한 실천의 원칙으로 삼는다. 이것은 공자가 종신토록 실천해야 할 하나의 원칙을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로 제시한 것이나, 『대학』의 絜矩之道에 대한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공자가 恕를 말하면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설명하였듯이, 유교에서 恕를 말할 때에는 이 ‘소극적 측면의 恕‘에 우선적 초점이 있었다. - P131
자유주의에 있어서 몽매한 대중을 합리적 이기주의자로 ‘계몽‘시킨다는 것은 있었어도, 정치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책임‘진다는 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자유주의는 오히려 정치적 소극주의를 배태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 P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