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줄곧 환자를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숨을 들이쉴 때가 있으면 내쉴때도 있어야 하듯이, 사람들은 병실 밖에서 ‘배터리를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고, 틈틈이 정상적인 삶을 누려야 한다. 항상 환자를 의식해서는 효율적으로 간호할 수 없다. - P271

환자가 처음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다양한 양상의 투병 생활이 이어지고 환자가 사망한 이후 긴 시간이 흐를 때까지 가족들의 욕구는 변화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환자 가족들은 정작 가장 필요한 순간에 쓰러질 지경이 되도록 스스로를 혹사하지 말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배분해야 한다. 사려깊은 조언자라면 가족들이 환자를 돌보는 것과 그들 자신의 욕구를 존중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도록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P272

나는 가족들이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한부환자 본인이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환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족들을 도울 수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가족들에게 자연스럽게 표현함으로써 가족들 역시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것이다. 환자가 자신의 슬픔을 극복하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다면, 가족들은 환자의 강인함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슬픔을 좀 더 품위 있게 견딜 것이다.
죄책감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의 동반자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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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때로 희망은 그들의 고통에 대한 합리화이며, 일시적이지만 필요한 부정의 형태로 지속되기도 한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건, 우리는 모든 환자들이 약간의 희망은 지니고 있으며 특별히 힘겨운 시간에는 그 희망이 그들에게 힘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런 희망 - 현실적인것이건 그렇지 않건-을 허락한 의사에 대한 엄청난 신뢰를 보여주었고 나쁜 소식임에도 희망이 있는 것에 감사했다. 그렇다고해서 의사가 환자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차도가 있을 수도 있으며, 예상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다는 희망을 환자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더는 희망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통상적으로 그것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환자는 "선생님, 이젠 할 만큼 한 것 같습니다." 혹은 "이젠 때가 된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도 있고, 항상 기적을 믿고 있다가 어느 날 우리에게 "이게 바로 기적인 것 같습니다. 전 이제 준비가 되었고 더는 두렵지가 않아요."라고 말했던 환자처럼 표현할 수도 있다. 그 환자들은 모두 24시간 내로 세상을 떠났다. 항상 그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이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절망의 포기가 아닌 수용의 포기일 때, 우리는 더는 희망을 강요하지 않는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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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란 배우기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도량형으로 배움의 의미와 의의를 사후에나 잴 수 있는 역동적인 과정을의미한다. 배우기 시작했을 때와 배우고 있는 도중 그리고 다 배우고나서는 배움의 주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이것이 배움의 과정에 몸을 던진 주체의 운명이다. 그러나 ‘교육 서비스‘를 구입하기 위하여 ‘교육 투자‘를 하는 소비주체로 자기를 확립한 아이들에게는 이러한 배움의 과정이 이해가 안 된다. - P76

아이들은 먼저 ‘변화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학습 과정에서 무엇보다 먼저 ‘외계의 변화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학습‘의 인류학적 의미는 여기에 있다. ‘학습‘의 - P80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이에 비하면 시장경제와 등가교환의 원리가 인간 세계에 도입된 시기는 극히 최근에 일이다. 따라서 시장원리를 들어서 학교 교육에 맞서는 아이들은 말하자면, 인류한적인 진화의 흐름에 역행하여 싸우는 것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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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인격체로서 사회관계의 장에 뛰어들었을 때 네 살짜리 어린아이를 교섭 상대로 대등하게 대우해 줄 어른은 없다. 그런데 돈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왔을 때는 그 사람의 나이나 식견, 사회적 능력 따위의 속인적 요소는 기본적으로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쓰는 돈의 과다만이 문제가 될 뿐 누가 돈을 쓰는지는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돈의 투명성‘이라는 특권적 성격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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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을 ‘모른 채‘ 그냥 놔두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 P29

지금 수험생을 둔 부모들이 ‘일본 고교생의 60퍼센트가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은 시간‘이라는 신문기사를 읽는다면, 겉으로야 걱정하는표정을 짓겠지만 열이면 열, 속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다. 자기자식의 경쟁상대가 계속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기뻐할 것이다. 본인은그런 괘씸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정말로그렇다. 학령기에 있는 자녀를 둔 일본의 성인들은 무의적으로는 자기자식 말고 다른 아이들의 학력이 내려가는 데서 이익이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런 무의식적인 욕망이 아이들의 학력 저하를 심리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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