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일본인은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을 싫어하는데 좀 심할 정도로 민감한 것 같다. ‘도움을 주고받는 쌍무 관계가 아니면 상호지원·상부상조 네트워크는 작용하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고 싶지 않으니 내버려 두세요" 는 젊은 일본인들의 상투어다. 그 사람은 정말로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속내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이 나에게 폐를 끼칠까봐 두려운 것이다. 자기결정에 대하여 타인이 관여하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워서 "당신이 어떻게 살든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되돌아올 길 없는 사회적 하강의 과정을 걷기 시작한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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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잊고 작품에 몰두해도 그것이 나와 직접 연관되어 나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 나로부터 외화(外化)되었다면 그것은 나와 직접 상관이 없이 따로 노는 외물(外物)일 뿐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그것을 나와 일치시키는 수행이 필요하다. 내가 하는 다른 무엇보다 그게 더 중요한 일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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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의사들이 환자들을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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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말한 논어 활용법도 이런 것이 아닐지?

언론을 향해 신뢰를 강조하면 의외로 신뢰를 돈벌이와는 무관한 ‘도덕‘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성공한 자영업자나 기업가들을 만나보라. 파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채 돈을 벌 수있느 냐고 말이다. 신뢰라고 해서 많은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열망과 실천 의지에 대한 믿음을 갖게끔 하는 수준이면 족하다. 지역엔 신뢰에 목마른 사람이 많다. 연고와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지역의 삶에 대해 마음껏 수다를 떨면서 서로 믿을 수 있는 유대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지역을 사랑하고 싶어도 그 사랑을 음미하고 실천할 수 있는 마당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일을 지역언론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한단 말인가?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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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어떤 인간인가?"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질문을 쉽게 입에 올리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뉴욕, 로스앤젤레스 아니면 파리나 밀라노 또는 발리 섬이나 캘커타 또는 바그다드나 탄자니아 그 어디라도 좋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 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언어와 종교,생활습관이 다른 곳으로 가서 산다면 내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리라,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좀 이상한 발상이다. 만약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로 알고 싶었다면 자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예컨대 부모라든가) 묻는 편이 훨씬 유용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외국까지가서,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대와대화하고, 그 결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는 말을 나는 믿지 못하겠다. 고로 ‘나를 찾는 여행의 진짜 목적은 ‘만남‘에 있지 않고, 오히려 나에 대한 지금까지의 외부평가를 재설정하는 데 있다고본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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