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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컬러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ㅣ 현대지성 클래식 63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페스트>는 1940년대 프랑스령 알제리의 작은 도시 오랑을 무대로 시작된다. 평온하던 일상은 어느 날 거리 곳곳에서 쥐들의 죽음이 발견되면서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이내 정체불명의 질병이 퍼지고, 당국은 도시를 폐쇄하기에 이른다. 의사 리외를 중심으로, 기자 랑베르, 공무원 그랑, 신부 파늘루 등 다양한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전염병과 맞서 싸운다. 죽음과 고립, 두려움 속에서도 이들은 서로 연대하거나 때로는 절망하고, 인간의 나약함과 존엄을 동시에 드러낸다.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 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알베르 카뮈(1913~1960)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철학자이다. "부조리"와 "실존"의 문제를 깊이 천착한 그는 <이방인>, <시지프 신화>, <페스트> 등으로 현대문학사의 거장으로 자리잡았다. 1957년, "심오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양심의 문제를 다룬 문학"을 평가받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카뮈는 삶의 부조리를 직시하면서도 인간적 연대와 저항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문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삶의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든다.
이번에 내가 읽은 <페스트>는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새롭게 펴낸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중 하나다. 현대지성은 고전문학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로, 엄선된 번역과 정성스러운 편집을 통해 명작들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표지는 통일된 짙은 녹색 바탕에 세련되면서도 고전의 품격을 나타내는 명화를 싣고, 본문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여백을 많이 넣는 편집을 선보인다. 단순한 재출을 넘어, "지금 이 시대에도 고전이 왜 읽힐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주는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스트>는 <이방인>과 더불어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사실 나에게 카뮈는 이 작품으로 처음 다가왔다. 그때가 중학교 시절,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이번에 현대지성의 새 번역본으로 다시 읽으며, 마치 처음 읽는 사람처럼 신선한 긴장감을 느꼈다.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카뮈는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과 후의 인간 군상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평범했던 삶이 무너지고,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담담하고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냉소적이면서도 따뜻한, 이 모순된 듯 조화를 이루는 그의 문체 덕분에 <페스트>는 단순한 재난 서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 작품이 된다. 언뜻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함 속에서 인간성과 연대, 희망을 끄집어내는 힘이야말로, 알베르 카뮈를 대단한 작가로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임을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