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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트릴로지 - 디지털 자산 과연 투기인가, 새로운 질서인가
박상민 지음 / nobook(노북)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슈퍼 트릴로지(Super Trilogy)는 박상민 작가가 디지털 전환의 핵심 키워드로 설정한 세 가지 큰 줄기, 즉 암호화폐(Crypto Asset),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거버넌스(Governance, 이 단어를 어떤 한국말로 해석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ㅠ)를 통합적으로 묶은 개념이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디지털 시대의 가치 저장(Value Storage), 가치 생성(Value Creation), 그리고 의사결정 체계(Decision-Making System)를 담당하며, 저자는 이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기존의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급격하게 재편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슈퍼’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의미하지 않고, 기술이 구조를 바꾸고, 구조가 다시 인간의 행동과 인식을 바꾼다는 역동적인 상호작용 체계를 강조하는 의미인 듯 하다. 예를 들어,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시스템이 기존의 금융 거버넌스를 무력화시키고, DAO(탈중앙화 자율조직)가 실질적인 기업 운영의 대안이 되는 현상까지 포괄하는 거다. 단순히 비트코인의 가격이나 챗GPT의 기능에만 집중하는 기존의 책들과 달리, <슈퍼 트릴로지>는 이 세 축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적 전환(systemic shift)을 바라본다.
박상민 작가는 디지털 산업과 공공 정책 양쪽 모두에서 경험을 쌓아온 하이브리드형 전문가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디지털 자산 관련 스타트업 컨설팅뿐 아니라, 정부 기관 및 정책 자문에도 참여해왔다. 단지 기술을 설명하는 기술서 저자라기보다는, 기술이 현실 세계의 권력 구조, 제도, 법률 시스템을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를 예리하게 읽어내는 메타 시선의 분석가에 가깝다.
그의 전작들과 강연에서는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항상 권력 구조를 반영하거나 재편한다'는 문제의식을 일관되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책 역시 그런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더 정제된 언어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독자는 그의 글을 읽으며 최신 기술을 이해하는 동시에, ‘누가 이 기술을 통제하는가’,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가’ 같은 정치철학적 질문까지 마주하게 된다.
<슈퍼 트릴로지>는 얼핏 보면 이미 나왔던 수많은 디지털 전환 관련 책들과 유사해 보인다. 블록체인의 잠재력, AI의 급진적 발전, 디지털 자산의 제도화 가능성 등은 이미 국내외 수많은 책에서 다뤄져왔다. 나 역시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반복되는 정보의 재탕이겠지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읽고 나니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매우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압축된 통찰, 그리고 세 가지 키워드를 하나의 틀로 엮는 구조적 사고였다. 특히 이 책은 독자에게 ‘지금까지의 기술서가 설명하지 못했던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예컨대, AI 기술의 발전이 DAO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기계-인간 협업 거버넌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설명이나,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가 단순한 화폐 혁신이 아닌 국가 주권의 재정의일 수 있다는 주장은 꽤 인상적이다.
또한 ‘거버넌스’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도 흥미롭다. 대부분의 기술책이 이 부분을 소홀히 다루거나 단순히 제도적 장치로 축소시키는 데 반해, 이 책은 거버넌스를 디지털 시대의 권력 분산 메커니즘으로 다룬다. 인간 중심의 판단 구조가 점점 알고리즘과 자동화된 룰셋에 의해 대체되는 현재, 우리는 어떤 윤리적·정치적 기준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독자가 꼭 테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친절하게 쓰여 있다. 요약 중심의 구성, 반복 없는 문장, 정확한 예시 덕분에 복잡한 개념도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디지털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데, <슈퍼 트릴로지>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재와 미래를 하나의 연속된 스펙트럼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보기 드문 책이라 느꼈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정보 전달서가 아니라, 질문의 지형을 바꿔주는 안내서였다. 익숙한 기술 이야기를 낯설게 바라보는 힘,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