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은 선하다고 믿는다 - 안네 프랑크, 희망의 씨앗에 관한 이야기
마조리 아고신.프란시스카 야녜즈 지음, 우혜림 옮김 / 홍익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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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마다 각자 각자 자신의 삶에서 하나 이상의 잘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그 숙제가 너무 많아 아예 모든 숙제를 미뤄두고 그냥 내 편한대로 살고 보자는 편인데, 어제 읽은 새 책에서 그 숙제 중 하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어 이렇게 몇 자 적는다.
 성선설, 성악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내가 학생이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열심히 듣고 외워서 시험까지 쳤던 단어들이 떠오르는 제목이다.
이 문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나는 '선하다'보다 여전히에 마음이 갔다.
사람과 사람... 우주의 가장 작은 단위가 아닐까? 아 너무 인간 중심 사고인가 싶기도 하구나.. 그럼 사회,문화의 가장 작은 단위? 이 작은 단위가 가장 힘들지 않은가? 그래서 그 에 대한 답 아닌 답을 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고, 그에 화답하여 인간관계에 대한 책들만 한 해에 수십권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그 답을 거시적 관점에서 시작한다. 홀로코스트..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큰 악의 대표로 이야기되는 나치즘이 횡횡하던 시절, 작은 유태인 소녀가 그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피해 숨어살면서 지은 핍진한 기록들... 그 기록에서 사람의 선함을.. 작가는.. 찾아낸다. 그것도 잘, 억지없이... 몽글몽글한 필체로.
 생의 3분의2를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세상 최고의 오지랖, 긍정여왕,여행조증, 호구안 이라는 말로 정의되는 나이기에, 어쩌면 당연하게도 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선하게 태어났다고 믿고 살아왔다. 그리고 이건 정말 나의 복이겠지만, 대학 때까지 그 믿음을 깨기는 커녕 흔들리게 하는 사람 조차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다르더라.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밖에 없게 되니 확률의 영역인가? 가끔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물론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그 끝도, 거기다 그 근간도 알 수 없는 악의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 악의가 나를 괴롭힌 적은 없었지만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그들의 생각과 말을 나누는 것 만으로도 진이 빠지고 헤어나올 수 없는 깜깜한 늪에서 허우적 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럼 또 그냥 피하면 마련인데 나는 그 사람을 좀 밝은 곳으로 데리고 나오고 싶어진다. 그렇게 오지랖을 피우다 보면 그 사람의 그 악의에 동조는 못하는데 계속 친하게는 지내면서 그러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고, 주변의 내가 정말 좋아하고 친한 사람들은 그 관계에서 나를 구해주고 싶어하고, 그럴수록 더 많은 인간관계가 이상해지고 직장 업무에도 영향을 주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런데 나는 또 도움은 주고 싶고.. 한마디로 완전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직업의 특성상 내가 근무처를 옮기던지 아니면 그 사람이 옮기게 되든지 하여 이 이상한 관계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 더 노력해야 할까? 아니, 이 노력이 맞는 것일까? 그 사람의 인생을 사는 방법일 수도 있는데, 그걸 내가 바꾸려고 하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되기는 할까? 사실 이렇게 파고 들어가면 끝이 없다. 사람과 사람, 가장 작은 단위에서 일어나느 일이 이렇게 어렵다. 그래서 책은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시작하여 위로를 주려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선한지 악한지를 보려 하지 말고, 내 안의 선함으로 세상을 보라고. 엄청난 삶의 기둥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 기둥이 있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도,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고 이 각박한 세상이 더 메말라지더라도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기둥.. 근데 어떻게 세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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