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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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여동생 집에 놀러 갔다가 빌려 본 책이다.

 

화제가 된 TED 강연을 책으로 냈다는데, 동영상을 직접 찾아 보진 않았지만, 활자로 읽는 감동은 기대만 못했다. 그래도 일독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남자들의 적대적인 오해에 대해 쉽고 선명한 사례와 명쾌한 논리로 잘 설명해준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남자아이들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도록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하지만 거꾸로는 하지 않습니다.(27)

 

그런데,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 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자신을 움츠리라고, 자신을 위축시키라고 가르칩니다.(31)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그랬어"라는 말은 남자든 여자든 공히 자주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 말을 할 때는 보통 어차피 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포기한 경우입니다. ... "아, 우리 마누라가 매일 밤 클럽에 가는 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주말에만 가기로 했어." 반면에 여자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할 때는 보통 직장이나 경력이나 꿈을 포기한 경우입니다.(35)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일 우리가 젠더에 따른 기대의 무게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요? 각자의 진정한 자아로 산다면, 얼마나 더 자유로울까요?(37)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 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44)

 

또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좋아요, 이건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는 젠더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고요." 어쩌면 정말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 그리고 많은 남자들이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45)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봐요, 가난한 남자들도 어렵게 살아간다고요." 그건 실제로 그렇습니다. ... 가난한 남자들은 부자의 특권은 누리지 못할지라도 남자의 특권은 여전히 누립니다. ... "당신은 왜 자신을 여성으로만 봅니까? 왜 그냥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까?" ... 왜 당신은 그냥 남자나 그냥 인간으로서의 경험을 말하지 않나요? 왜 하필 흑인 남성으로서의 경험을 말하나요?(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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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 Vol.1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 전복과 반전의 순간 1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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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한 사람이 쓴 책이라면 그 책의 주제가 무엇이든 명쾌하고 재미가 있어서, 나도 덩달아 똑똑해지고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이 책 이전에 비슷한 느낌을 받은 작가는 '남경태'다. 종횡무진 역사 시리즈!) 책의 주제에 대해 완전히 통달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관점과 기준을 가지고 맥락을 잡아 이야기를 끌고 간다. 손바닥 위에 놓고 맘대로 주무르는 느낌.

 

책 내용은 생략. 엄청나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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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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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여동생이 지나가듯 말해준 성폭력 경험에 충격을 받은 오빠가 주변 친구들의 비슷한 경험들을 모아 팩트만 가지고 썼다는 만화책이다. 지난 주에 여동생 집에 놀러 갔다가 아내가 이 책을 빌렸고, 나도 아내의 추천으로 덩달아 읽었다. 프랑스나 한국이나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한 '남성에 의한 성폭력' 경험담이, 곱씹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 다시 남성에게 전달되는데 이렇게 많은 단계를 거치게 된다는 게 시사적이다. 남성들이 이 책에 도달하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이다.

 

프랑스 여성-그 여성의 오빠-책-한국 여성의 번역-내 여동생-내 아내-남성인 나

 

본문에서 모든 남자가 악어로 표현되었다는 점이 프랑스에서도 논란이 되었나 보다. 그 얘기는 저자의 서문에도 나오고 번역자의 후기에도 나온다. 왜 남성 독자들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고는 억울해 하냐고. 피해를 당한 여성 입장에서는 모든 남성이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로 보일 수밖에 없을텐데 말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내 아슬아슬 했다. 나 역시 저 '악어'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성폭력 가해자가 되고 안 되고는 정말 한 끝 차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평소 성인지감수성을 예리하게 벼려 놓지 않으면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이 여성에게는 비수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내 입장은 반박이 가능하다. '성폭력의 원인을 남성의 타고난 본성 탓으로 떠넘기는 것이냐. 모든 남성이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란 말이냐. 등등' 모든 남성이 내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을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로 인식하고 내내 조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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