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가 말해주는 '여행을 하게 되는 9가지 이유'에 대한 나의 거친 요약

 

1. 무언가를 찾기 위해 떠났다가 원래 찾던 것과 전혀 다른 것, 훨씬 중요한 어떤 것을 얻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에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51)

 

2. 낯선 환경이 나를 받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스스로 반복 극복하기 위해서

 

나의 유년은 잦은 이주로 점철되었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하여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원경험들이 쌓여, 그것이 프로그램으로 내 안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안의 프로그램은 어서 이 편안한 집을 떠나 그 고생을 다시 겪으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어디로든 떠나게 되고, 그 여정에서 내가 최초로 맛보게 되는 달콤한 순간은 바로 예약된 호텔의 문을 들어설 때이다. 벨맨이 가방을 받아주고 리펩션의 직원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나는 다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은 안전하다.' 평생토록 나는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61)

 

3. 오직 현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82)

 

4. 인류는 진화론적으로 끝없이 이동하도록 설게된 존재이므로

 

5. 타인의 여행을 엿보는 것도 여행의 한 방법이고, 세계를 이해하는데에는 타자의 시선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그들의 느낌과 경험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내 여행의 경험에 얹힌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117)

 

6. 여행지에서라야 나는 나의 그림자의 유무를 자각하게 되므로. '그림자'란 타인으로부터 승인받는 나의 정체성이다. 고향에서 나는  타인들로부터 그 장소에 적합한 인물로 환대를 받는다. 반면 여행지에서 나는 그림자가 없는 인간이고, 그러므로 그 장소에 대한 어떠한 의무도 책임도 없다. 여행지에서라야 나는 나의 그림자를 의식하며 고향으로 돌아갈지 말지 고민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7. 여행지에서 우리는 모르는 타인의 환대에 의존하는 약한 존재가 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인류애를 느낄 수 있으므로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148)

 

8. 여행지에서 우리는 '노바디'가 될 수 있으므로

 

젊은 날의 나는 특벼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의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특별하게' 분류되고, 일단 분류된 이후에는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경험은 그전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180)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185)

 

9. 여행은 소설과도 같이 실험실적 상황 속에 의식적으로 들어갔다 돌아올 수 있으므로

 

여행 역시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으로 움직이지만 이주나 피난과는 다르다. 여행은 자기 결정으로 한다. 자기 결정은 통제력과 관련이 있다. 이주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정제된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199)

 

그런데 이렇게 책을 요점정리하고 보니 작가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이런 조악한 요점정리로 환원시키는 일은 부당하다는 생각도. 그러기에 이 책은 너무 재미있고, 요약으로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이 사실은 이 책의 핵심이요, 진짜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이란 이 책을 읽고 나면 혼자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게 되는 마음이 그것이다. 요약된 글을 읽어본들 그런 느낌을 얻을 수 없다. 이 요점정리는 책을 읽고도 당장 여행을 떠나지 못해 안달이 난 나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복기일 뿐, 작가에게는 누가 되고,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해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