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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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과 검이 맺은 기이한 인연…

마법의 문양으로 살아 움직이는 자동인형과 기계 용이 꿈을 꾸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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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고 나니 조예은 작가님의 추천사에 쓰인 구절이 더욱 와닿는 듯했다. '중요한 건 그들이 낙원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날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신화가 되기를 바란다. 책장을 덮자마자 다음 장면이 간절해졌다. 이 익숙하고도 낯선 세계를 더 보고 싶다.' 나 또한 그랬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는 라잔 제국에 지배당하고 있는 국가 화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라잔인들이 내어준 현대 복식은 양복의 도입을, 라잔 총독부에서 라잔식 개명을 권유하는 것은 창씨개명을 쉽게 떠올리도록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라잔 제국과 화국으로 상징화하면서, 동시에 자동인형과 마법의 문양, 구미호, 검투사, 달나라 등 섞이기 어려울 법한 여러 가지 픽션적 요소들을 치밀하게 결합시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소설이다. 주인공 제비의 언니 봉숭아와 형부 지아는 라잔식 개명을 반대하거나 직접 무장 독립 운동의 현장에 뛰어드는 등, 독립을 위해 열렬히 제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 그에 반해 제비는 적극적인 독립 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필요에 따라 라잔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라잔의 것이라 해서 무조건 적대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비가 독립에 대한 마음을 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라잔의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순간에도 제비는 화국인으로서의 자유와 화국의 것을 그리워하고 여러 번 곱씹는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 라잔의 것을 택하게 되었으나, 결국은 조국의 독립 운동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제비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을 인물로서 상징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를 관통하는 가치는 사랑이며 애정이고 결국 마음이다. 예술에 대한 마음, 꿈에 대한 마음, 삶에 대한 마음, 기계 용이 가진 마음, 연인에 대한 마음… 그 마음들이 얽히고설켜있기에 제비는 라잔 제국의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증오하지 않고, 화국 사람들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거대한 독립투쟁의 역사 속에서 개개인의 수많은 마음들이 지워지고 가려졌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개인이 어떤 꿈과 열정을 가지고 어떤 마음으로 겨우 살아남아야 했으며 또 어째서 스러져가는 조국을 향해 발길 돌릴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를 읽고 난 뒤에도, 명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이야기는 명백한 역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으나… 동시에 제비라는, 그 시대를 살아갔던 평범한 개인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속에 품은 이 마음과 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라지는 마음과 생겨나는 마음을 거쳐가며 성장하는 사람과 사람을. 국가가 없다면 개인 또한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크게 쓰이는 역사의 뒤안길로 바래고 침잠해버린 각자의 욕망 또한 무시해서는 안 되는 존재일 테다. 그리고 제비와 베이가 맞이한 결말은, 어쩌면 그럼으로써 '이 세계에 남은 희망'과 '(어느 곳에서든) 지속되는 갈망'에 대한 상징이자 해석일지도 모른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라는 제목 또한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형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투쟁하고자 사랑하고, 사랑하고자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마지막까지 남은 염원. 봉황색이란, 그런 내면을 구체화한 빛깔이 아닐까. 덧그려진 그들의 색채가 오랫동안 이어지길 끊임없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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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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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소설집, 허블, 『빛과 영원의 시계방』


❝극단의 폭발력으로 마법의 영역에 도달한 과학

죽음과 시공간을 초월한 현대의 마법서❞


#공간서점 #오리진 #달을멈추다 #꿈의귀환 #악몽 #가깝게우리는 #어디서무엇이되어다시만나랴 #끝없는우편배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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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듦새


『빛과 영원의 시계방』은 초월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이었던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과 동일 판형으로, 세로가 조금 긴 형태의 견장정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겉표지 디자인과 책 제목, 그리고 뒤표지에 실린 책소개 문구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극단의 폭발력으로 마법의 영역에 도달한 과학/죽음과 시공간을 초월한 현대의 마법서'라는 문구에 걸맞게 책은 한 권의 마법서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다. 책 표지에 수놓인 문양들은 단편에 등장하는 여러 상징들을 형태화시킨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앞표지의 문양들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었다는 점과 뒤표지의 바코드가 태엽인형을 본땄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지 편집도 깔끔하고 좋았다. 그런데 소설에서 본문 외 내용(편지글 등 텍스트 묘사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 내용 묘사 등)이 다른 글꼴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본문 글꼴과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고, 한자 지원이 되지 않아 한자 병기 부분이 표기되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뒤표지 중하단부에 쓰인 나눔스퀘어 네오 정도 사용해 주었다면 좀 더 보기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그렇게 되면 통일감도 있지 않았을까. (나눔글꼴 라인업 자체가 한자병기 시 한글과 한자 간 이질감이 적은 편이라 더욱.)


✦ 상실함으로써 되찾는 삶


『빛과 영원의 시계방』에 실린 모든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종류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내면의 감정이나 감각, 기억부터 외부의 타인과 맺은 관계까지 다양한 '잃어버림'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실의 공통점은 상실의 감정을 전면에 표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아도 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간 서점>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이 살던 시간대를 잃어버림으로써 평행세계 - 혹은 아버지가 개발해낸 시공간 이동이 가능한 기압 운송선을 통해 형성된 '다른' 시공간 - 로 이행하여 새로운 삶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무언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과거의 시간대에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공간 서점>은 그에 더하여, 과연 우리가 상실해온 것이 언제나 '과거'라는 시간대에 남아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끔 한다. 아버지가 기압 운송선으로 시간을 되돌려 알고 있던 미래를 바꾼 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 서점> 속 세계는 단순히 '과거'와 '현재', '미래' 세 단어로 명명할 수 없는 모습으로 뒤틀린다. 


그래서 이야기의 결말부에서 헌책방 주인은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결국 나는 그 모든 버전이 각각의 진실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길이 반드시 한 갈래로만 뻗어 있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길은 여러 갈래일 수 있고 한 사람이 동시에 그 길을 모두 걸을 수도 있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43쪽)"라고 말하게 된다. 이는 현재의 과학으로는 아직 설명할 수 없는 미래에 인간에게 부여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말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반추하며 현재의 인간 또한 단순히 하나의 서사를 걷는 단순 내러티브적 동물이 아님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미래를 보여줌과 동시에 현재 또한 함께 비추면서 시간선의 명료성을 흐리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어떠한 시간대가, 어떤 어휘로 통칭할 수 없게끔 모호하고 종잡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곧 기지에 대한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영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추신】 보통 단편집의 책 제목을 정할 때는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을 따오는 경우가 많은데, 『빛과 영원의 시계방』의 경우 개별적인 책 제목이 따로 붙어 있어 좋았다. 약간 이 소설책 자체가 책이면서 하나의 '시계방'이 된 느낌이랄까. 책은 이따금 책으로서의 물성을 가짐과 동시에 또다른 속성을 함께 내재하며 존재한다.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것은 책이 책 이외의 다른 무언가로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 책은 상실한 시간대와 그럼으로써 다시 형성되고 이해되는 새로운 시간대를 모두 셈할 수 있는 시계방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 진짜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가)


<악몽>에는 인간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장치가, <가깝게 우리는>에는 인간을 쏙 빼닮은 자동인형이 나온다. 비틀리는 자아와 복제임을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이 복사되는 인간까지, 『빛과 영원의 시계방』에는 인간의 개별성과 단일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소재들이 여럿 등장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과연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현존하는 기억을 여러 번 재구성하여 행복한 기억만 남도록 하는 기술이 존재한다면, 당신은 과연 기억 시술에 동의할까? 내면을 평생 괴롭힐 고통과 번민의 기억이 사라지고 영영 평화롭고 행복한 기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습관처럼 찾아오는 편두통과 이따금 물밀듯 닥쳐오는 과거의 우울, 미래까지 안고 살아가야 할 매일의 슬픔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언젠가 이것이 세상을 바꿀 거예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구상엔 불행한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겁니다. 어둡고 비통한 과거 대신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테니까요.(189쪽)" 이 말이 정말 진실이 된다면. 하지만 인간의 손을 타고 만들어진 행복이 과연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과연 '행복'이라는 개념이 유의미할까? 나는 적어도, 우리가 불행을 이해하기 때문에 행복 또한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행복한 기억' 속에서 살아가더라도 우리는 직접 일궈냈던 과거의 진짜 행복을 계속해서 그리워하리라 믿는다. 그건 사실 본능이 아닐까?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 생이 끝날 때까지 결코 놓지 못할 삶의 지속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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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라앉지 마 - 삶의 기억과 사라짐, 버팀에 대하여
나이젤 베인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싱긋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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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이 한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겨우 할 수 있는 사랑의 마지막 표현일지 모른다. _ 문태준(시인) 】

 

『엄마, 가라앉지 마』 나이젤 베인스 글/그림, 황유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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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살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음을 종착지로 하는 긴 여행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타자의 삶과 죽음 또한 무수히 접하곤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는 것 또한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체험일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실감과 슬픔. 『엄마, 가라앉지 마』는 저자가 저자의 어머니 치매 발병으로부터 죽음까지 2년 동안의 회고를 담은 논픽션 그래픽내러티브다. 원제는 『Afloat』으로, 떠 있음의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원제는 부유하는 상태,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상태를 떠올리게 한 반면 번역된 한국판 제목은 어머니를 바라보는 저자의 절박함과 상실을 느끼게 해 주었다. 맥을 같이하면서 서로 다른 느낌을 주어 원제와 한국판 제목 두 가지 모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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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내러티브 형식을 갖추고 있는 만큼 각 페이지마다의 연출이 상당히 뛰어났는데, 어떤 부분은 살 떨릴 만큼 아릿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했다. 가족여행을 회고하는 부분에서는 저자가 오르막을 오르고 있음에도 부유하는 느낌과 푹푹 빠지는 느낌, 가라앉는 느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가족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지만 결국 어머니의 치매를 계기로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돌이켜보는 것이므로, 연출을 통해 그러한 회고가 그저 편안하지 않았음을 표현해낸 것 같았다. 그러나 그저 아픈 기억에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죽음을 향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으나 그 내면에는 삶이 존재했다. 상실 속에서 저자는 살아감을 찾는다. 그것이 연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필요에 따라 문단을 특수하게 구성한 것 또한 마음에 남았다. 글자의 배치를 통해 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이 하나씩 저자를 덮쳐오는 상황을 형상화했다. 결국 '그것들의 발아래에 깔려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저자의 끝맺음에서 묵직한 고통을 느꼈다. 가장 좋았던 연출은 마지막에 저자가 자아와 삶에 대한 고찰을 네 가지 형태의 바다를 통해 표현해낸 부분이었다. 「하나의 유일무이한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고 자아가 분열적이고 유동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171쪽)」 절망과 상실의 질곡 속에서 다시 아침을 맞이하며 이 말을 남겨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바다의 물살이 잠잠할 때도 있고 때론 파도가 몰아칠 때도 있는 것처럼 인간 또한 순간순간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결코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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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도 마찬가지다. 말들 사이의 틈새. 순간들 사이의 공백. 없어져버린 듯한 것들. 바로 그곳이 우리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127쪽)

 

* 나는 엄마네 집 화장실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어떤 거울이라도 본 게 언제였을지 궁금했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온전한 하나의 '나'를 상상하지, 변덕스럽고 분열된 자아를 상상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엄마가 낯선 그 사람을 보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129쪽)

 

* 나는 그동안 늘 엄마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었고, 그 생각을 하고 있자면 소름끼치게 몸이 떨려오곤 했었다. (162쪽)

 

* 하지만 세상에 영원히 계속되는 일은 없고, 그건 심지어 나쁜 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자유이며 나 자신의 본질을 규정하는 그 어떤 잘못된 생각들에도 얽매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현듯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조차… 괜찮게 느껴졌다. (169쪽)

 

* 엄마는 여전히 엄마로 대접받을 자격이, 존엄성을 지닌 한 생명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있었다. 요양원 직원들은 훌륭한 분들이며 더 나은 훈련과 보수를 받아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사회가 노화와 질병을 다루는 방식을 재교육할 필요가 있다.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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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
김환영 지음 / 싱긋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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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비정치적인 것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196쪽) 】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김환영 지음, 싱긋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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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내용의 소재도 마음에 들었지만 만듦새 또한 눈에 띄었던 책이다. 머메이드지 느낌 나는 양장 표지가 빛을 비추면 광택이 돋보이는 홀로그램 박을 입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낭만적이라고 해야 할까, 제목처럼 '사랑을 읽고픈' 표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에서 다루는 작품은 모두 해외문학인데 그에 걸맞게 서체 또한 서양풍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책의 부제는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으로, 사실 이 부제만 보고서는 책의 소재가 되는 작품들이 모두 해외문학임을 알아채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러니 책의 디자인을 통해서 힌트를 준 셈이다. 사실 이러한 부제와 디자인이 어떤 고정적인 인식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디자인과 만듦새 또한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에, 일정한 사회적 약속을 따르는 것 또한 하나의 소통 방식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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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책을 읽을 때 내용 서술의 많은 부분이 저자의 주관적인 이해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쓰였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해외 명작에 담긴 사회적 문제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책을 통해 그에 관한 목소리를 내고자 하고 있다. 또한 여러 사랑의 양상과 인물의 행동 양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표현과 서술에서 일정 부분 정체감(停滯感)을 느꼈다. 

 

* '남자들은 "왜 여자들은 나처럼 착하고 능력 있는 남자가 아니라 늑대 같은 나쁜 놈들을 좋아할까"가 궁금할 수 있다. 여자들은 "왜 남자들은 나처럼 착하고 어여쁜 여자가 아니라 여우 같은 나쁜 년들을 좋아할까"가 궁금할 수 있다.' (27쪽) 

 

  책은 '이성 간의 사랑'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다. 물론 우정이나 정 또한 사랑이며 우정이 사랑으로 혹은 사랑이 우정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서술이 남성과 여성의 사랑에 한정되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성 간의 사랑'만을 다룬 책은 당연히 존재할 수 있지만, '이성 간의 사랑'만을 '사랑'의 범주에 포함해버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 아닌가. 저자가 조르주 상드의 여성 연인을 '사랑하는 사이'나 '연인', '애인'이 아닌 '동성애 관계'로 함축시킨 것, 그리고 상드가 남성용 의복을 입고 다닌 것을 '남장'이라 칭한 것 또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앞서 인용한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듯, 저자의 주관적 판단하에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대표성을 지닌 존재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남성의 경우 능력을 강조하는 반면 여성의 경우 외모를 강조하고 있어 표현에서부터 차별적 시선이 느껴졌다. 

 

* 진보나 페미니즘이라는 오늘의 잣대로 보면 '카마수트라'에 화낼 내용도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성희롱, 강간에 해당되는 일도 바차야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여성의 노no, 항의, 고통 호소를 남성을 자극하기 위한 '술책' 정도로 여러 번 이해했다. '카마수트라'의 남성은 가정을 꾸린 다음 집안의 왕처럼 군림했다. 눈살을 찌푸릴 만하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카마수트라'는 이례적으로 여성을 존중한 텍스트다. 여성의 욕구를 인정했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의 성욕은 남성보다 여덟 배 강렬하다. "여성은 만족시키기 힘들다"며 남편이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아내가 남편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160~161쪽)

 

  지난 시대의 잘못을 마냥 과거의 시선으로만 평가해도 괜찮은 것일까? 여러 문학 작품을 접하면서 딜레마처럼 고민하던 문제 중 하나다. '카마수트라'는 고대 인도의 성애와 성적 쾌락에 관한 문헌이다. 대략 서기 200~300년에 완성되었고 그 원초는 기원전 5,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 당연히 현대인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차별이 만연한 지난날 이례적으로 여성의 욕구를 인정하고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하였다 해서 '카마수트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여성의 욕구를 인정했다는 것이 당시에는 특별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따라서 '카마수트라'는 당시에는 흔치 않게 여성의 욕구를 인정했지만, 21세기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과거 수직적이었던 남성과 여성 간 관계를 명백히 드러내는 문헌이라고 볼 수 있다. 성희롱, 강간이나 마찬가지인 일이 당연시되었던 시대, 여성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닌가. 더불어 연인 관계에서 한쪽을 '만족시켜야 할', '만족시켜 주어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을 건강하고 바람직하다 보기는 어렵다. 지금은 과거의 최선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차별과 소외를 분명히 인식하고 차별 없는 세상으로 계속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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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존중을 바탕으로 한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서술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음으로써 해외문학작품에 드러나는 여러 사랑의 형태를 정리해서 볼 수 있었으나 그뿐이라는 점이 아쉬웠다. 작품 속의 내용을 저자 주관대로 이야기해주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작품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책의 내용을 완벽히 흡수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여성 문제와 페미니즘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현대의 저자가 과거의 (대부분 여성에게) 불합리한 사랑의 계보를 읽었을 때 어떤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또 현대의 사랑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시는 마치 초등학생처럼 관심 있는 여학생에게 일부러 못되게 굴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보통은 남자가 사랑에 빨리 빠지고 여성은 천천히 빠진다고 한다.' (187쪽) 와 같이 편견을 양산하는 문장 또한 존재한다.

 

  소재가 흥미롭고 문학 작품으로 사랑을 읽는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챕터를 읽을 때마다 이 작품에 대한 또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사랑이란 인간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며, 그것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더불어 문학 작품 내 인물 양상과 시대상에 관한 고찰과 검토, 반성은 지속해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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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무음에 한하여 아르테 미스터리 14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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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모르는 것과 맞닥뜨렸을 때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상식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배웠죠."
  당장은 믿기 힘들지만 무턱대고 부정할 생각은 없다는 뜻인 듯했다. (중략)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부정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도 했어요." (60~61쪽)


『단지, 무음에 한하여』 오리가미 교야 장편소설, 김은모 옮김, 아르테 펴냄


  그가 볼 수 있는 죽음의 흔적은 생의 마지막 힌트를 남기듯 소리 없이 흩어져 있었다. "확실한 정보를 쥐고 있는 자는 죽은 당사자뿐"이었다. 


  영혼을 보는 탐정, 아마노 하루치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종종 보통 탐정이 해결하기 어려워할 법한 사건을 도맡게 된다. 하루치카는 영혼을 볼 수 있으며 영혼이 있는 곳에서 잠들면 영혼의 기억을 일부 읽어낼 수 있으나, 영혼의 소리를 듣거나 혹은 영혼과 소통할 수는 없다. 영혼이 보이는 장소, 영혼이 보여주는 장면의 조각조각을 맞추어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치카는 그리 뛰어난 탐정은 아니다. 추리력이 아주 뛰어나지도 않고,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노련하게 써먹을 만큼 영악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런 점이 매력적이다. 


  "네가 더 탐정에 적합할지 모르겠다. 돌파구가 생긴 건 기쁘지만 프로로 살아갈 자신감이 좀 없어졌어."
  "밖에서 보면 금방 알지만 안에 있으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죠. 그렇게 낙담할 것 없잖아요." (275쪽)


  아주 뛰어난 탐정이 아니기에 사건을 해결하는 데 여러모로 난항을 겪기도 하지만, 하루치카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는 아주 인간적인 탐정이었고 또 타인의 말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는 『단지, 무음에 한하여』에서 맡은 사건들을 어찌저찌 끝으로 이끌어간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영리한 소년과의 티키타카가 상당히 흥미롭다. 나이는 어리지만 하루치카가 집어내지 못하는 부분을 예리하게 찾아내는 소년은 '평범한 탐정'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밋밋함을 보완해준다. 올해 3월에 일본 출간된 속편 『여름에 기도를: 단지, 무음에 한하여』에서는 탐정과 소년 콤비가 함께 활약한다고 하니, 국내 출간을 기대해볼 만하다. 


  "…하지만 그건 영혼이 최종적으로 거기 정착한다는 뜻이지, 죽은 순간부터 내내 거기에만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을까요. 내가 죽어서 영혼이 되면 시신이 옮겨지는데도 그 자리에 머무르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도 시신과 함께 구급차에 타겠죠. 시신이 있는 동안은 그 근처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 (중략) "…영혼이 어딘가 나타나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즉 영혼이 그 장소에 결속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 장소보다 더 강한 결속력을 지닌 뭔가가 존재한다면 영혼이 그쪽으로 끌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272쪽)


# _ 아르테 책수집가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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