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무음에 한하여 아르테 미스터리 14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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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과 맞닥뜨렸을 때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상식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배웠죠."
  당장은 믿기 힘들지만 무턱대고 부정할 생각은 없다는 뜻인 듯했다. (중략)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부정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도 했어요." (60~61쪽)


『단지, 무음에 한하여』 오리가미 교야 장편소설, 김은모 옮김, 아르테 펴냄


  그가 볼 수 있는 죽음의 흔적은 생의 마지막 힌트를 남기듯 소리 없이 흩어져 있었다. "확실한 정보를 쥐고 있는 자는 죽은 당사자뿐"이었다. 


  영혼을 보는 탐정, 아마노 하루치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종종 보통 탐정이 해결하기 어려워할 법한 사건을 도맡게 된다. 하루치카는 영혼을 볼 수 있으며 영혼이 있는 곳에서 잠들면 영혼의 기억을 일부 읽어낼 수 있으나, 영혼의 소리를 듣거나 혹은 영혼과 소통할 수는 없다. 영혼이 보이는 장소, 영혼이 보여주는 장면의 조각조각을 맞추어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치카는 그리 뛰어난 탐정은 아니다. 추리력이 아주 뛰어나지도 않고,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노련하게 써먹을 만큼 영악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런 점이 매력적이다. 


  "네가 더 탐정에 적합할지 모르겠다. 돌파구가 생긴 건 기쁘지만 프로로 살아갈 자신감이 좀 없어졌어."
  "밖에서 보면 금방 알지만 안에 있으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죠. 그렇게 낙담할 것 없잖아요." (275쪽)


  아주 뛰어난 탐정이 아니기에 사건을 해결하는 데 여러모로 난항을 겪기도 하지만, 하루치카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는 아주 인간적인 탐정이었고 또 타인의 말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는 『단지, 무음에 한하여』에서 맡은 사건들을 어찌저찌 끝으로 이끌어간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영리한 소년과의 티키타카가 상당히 흥미롭다. 나이는 어리지만 하루치카가 집어내지 못하는 부분을 예리하게 찾아내는 소년은 '평범한 탐정'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밋밋함을 보완해준다. 올해 3월에 일본 출간된 속편 『여름에 기도를: 단지, 무음에 한하여』에서는 탐정과 소년 콤비가 함께 활약한다고 하니, 국내 출간을 기대해볼 만하다. 


  "…하지만 그건 영혼이 최종적으로 거기 정착한다는 뜻이지, 죽은 순간부터 내내 거기에만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을까요. 내가 죽어서 영혼이 되면 시신이 옮겨지는데도 그 자리에 머무르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도 시신과 함께 구급차에 타겠죠. 시신이 있는 동안은 그 근처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 (중략) "…영혼이 어딘가 나타나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즉 영혼이 그 장소에 결속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 장소보다 더 강한 결속력을 지닌 뭔가가 존재한다면 영혼이 그쪽으로 끌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272쪽)


# _ 아르테 책수집가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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