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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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희선 소설집, 허블, 『빛과 영원의 시계방』


❝극단의 폭발력으로 마법의 영역에 도달한 과학

죽음과 시공간을 초월한 현대의 마법서❞


#공간서점 #오리진 #달을멈추다 #꿈의귀환 #악몽 #가깝게우리는 #어디서무엇이되어다시만나랴 #끝없는우편배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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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듦새


『빛과 영원의 시계방』은 초월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이었던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과 동일 판형으로, 세로가 조금 긴 형태의 견장정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겉표지 디자인과 책 제목, 그리고 뒤표지에 실린 책소개 문구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극단의 폭발력으로 마법의 영역에 도달한 과학/죽음과 시공간을 초월한 현대의 마법서'라는 문구에 걸맞게 책은 한 권의 마법서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다. 책 표지에 수놓인 문양들은 단편에 등장하는 여러 상징들을 형태화시킨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앞표지의 문양들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었다는 점과 뒤표지의 바코드가 태엽인형을 본땄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지 편집도 깔끔하고 좋았다. 그런데 소설에서 본문 외 내용(편지글 등 텍스트 묘사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 내용 묘사 등)이 다른 글꼴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본문 글꼴과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고, 한자 지원이 되지 않아 한자 병기 부분이 표기되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뒤표지 중하단부에 쓰인 나눔스퀘어 네오 정도 사용해 주었다면 좀 더 보기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그렇게 되면 통일감도 있지 않았을까. (나눔글꼴 라인업 자체가 한자병기 시 한글과 한자 간 이질감이 적은 편이라 더욱.)


✦ 상실함으로써 되찾는 삶


『빛과 영원의 시계방』에 실린 모든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종류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내면의 감정이나 감각, 기억부터 외부의 타인과 맺은 관계까지 다양한 '잃어버림'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실의 공통점은 상실의 감정을 전면에 표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아도 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간 서점>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이 살던 시간대를 잃어버림으로써 평행세계 - 혹은 아버지가 개발해낸 시공간 이동이 가능한 기압 운송선을 통해 형성된 '다른' 시공간 - 로 이행하여 새로운 삶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무언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과거의 시간대에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공간 서점>은 그에 더하여, 과연 우리가 상실해온 것이 언제나 '과거'라는 시간대에 남아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끔 한다. 아버지가 기압 운송선으로 시간을 되돌려 알고 있던 미래를 바꾼 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 서점> 속 세계는 단순히 '과거'와 '현재', '미래' 세 단어로 명명할 수 없는 모습으로 뒤틀린다. 


그래서 이야기의 결말부에서 헌책방 주인은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결국 나는 그 모든 버전이 각각의 진실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길이 반드시 한 갈래로만 뻗어 있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길은 여러 갈래일 수 있고 한 사람이 동시에 그 길을 모두 걸을 수도 있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43쪽)"라고 말하게 된다. 이는 현재의 과학으로는 아직 설명할 수 없는 미래에 인간에게 부여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말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반추하며 현재의 인간 또한 단순히 하나의 서사를 걷는 단순 내러티브적 동물이 아님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미래를 보여줌과 동시에 현재 또한 함께 비추면서 시간선의 명료성을 흐리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어떠한 시간대가, 어떤 어휘로 통칭할 수 없게끔 모호하고 종잡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곧 기지에 대한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영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추신】 보통 단편집의 책 제목을 정할 때는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을 따오는 경우가 많은데, 『빛과 영원의 시계방』의 경우 개별적인 책 제목이 따로 붙어 있어 좋았다. 약간 이 소설책 자체가 책이면서 하나의 '시계방'이 된 느낌이랄까. 책은 이따금 책으로서의 물성을 가짐과 동시에 또다른 속성을 함께 내재하며 존재한다.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것은 책이 책 이외의 다른 무언가로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 책은 상실한 시간대와 그럼으로써 다시 형성되고 이해되는 새로운 시간대를 모두 셈할 수 있는 시계방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 진짜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가)


<악몽>에는 인간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장치가, <가깝게 우리는>에는 인간을 쏙 빼닮은 자동인형이 나온다. 비틀리는 자아와 복제임을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이 복사되는 인간까지, 『빛과 영원의 시계방』에는 인간의 개별성과 단일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소재들이 여럿 등장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과연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현존하는 기억을 여러 번 재구성하여 행복한 기억만 남도록 하는 기술이 존재한다면, 당신은 과연 기억 시술에 동의할까? 내면을 평생 괴롭힐 고통과 번민의 기억이 사라지고 영영 평화롭고 행복한 기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습관처럼 찾아오는 편두통과 이따금 물밀듯 닥쳐오는 과거의 우울, 미래까지 안고 살아가야 할 매일의 슬픔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언젠가 이것이 세상을 바꿀 거예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구상엔 불행한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겁니다. 어둡고 비통한 과거 대신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테니까요.(189쪽)" 이 말이 정말 진실이 된다면. 하지만 인간의 손을 타고 만들어진 행복이 과연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과연 '행복'이라는 개념이 유의미할까? 나는 적어도, 우리가 불행을 이해하기 때문에 행복 또한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행복한 기억' 속에서 살아가더라도 우리는 직접 일궈냈던 과거의 진짜 행복을 계속해서 그리워하리라 믿는다. 그건 사실 본능이 아닐까?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 생이 끝날 때까지 결코 놓지 못할 삶의 지속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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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서포터즈 7기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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