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가라앉지 마 - 삶의 기억과 사라짐, 버팀에 대하여
나이젤 베인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싱긋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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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이 한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겨우 할 수 있는 사랑의 마지막 표현일지 모른다. _ 문태준(시인) 】

 

『엄마, 가라앉지 마』 나이젤 베인스 글/그림, 황유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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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살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음을 종착지로 하는 긴 여행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타자의 삶과 죽음 또한 무수히 접하곤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는 것 또한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체험일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실감과 슬픔. 『엄마, 가라앉지 마』는 저자가 저자의 어머니 치매 발병으로부터 죽음까지 2년 동안의 회고를 담은 논픽션 그래픽내러티브다. 원제는 『Afloat』으로, 떠 있음의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원제는 부유하는 상태,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상태를 떠올리게 한 반면 번역된 한국판 제목은 어머니를 바라보는 저자의 절박함과 상실을 느끼게 해 주었다. 맥을 같이하면서 서로 다른 느낌을 주어 원제와 한국판 제목 두 가지 모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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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내러티브 형식을 갖추고 있는 만큼 각 페이지마다의 연출이 상당히 뛰어났는데, 어떤 부분은 살 떨릴 만큼 아릿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했다. 가족여행을 회고하는 부분에서는 저자가 오르막을 오르고 있음에도 부유하는 느낌과 푹푹 빠지는 느낌, 가라앉는 느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가족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지만 결국 어머니의 치매를 계기로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돌이켜보는 것이므로, 연출을 통해 그러한 회고가 그저 편안하지 않았음을 표현해낸 것 같았다. 그러나 그저 아픈 기억에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죽음을 향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으나 그 내면에는 삶이 존재했다. 상실 속에서 저자는 살아감을 찾는다. 그것이 연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필요에 따라 문단을 특수하게 구성한 것 또한 마음에 남았다. 글자의 배치를 통해 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이 하나씩 저자를 덮쳐오는 상황을 형상화했다. 결국 '그것들의 발아래에 깔려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저자의 끝맺음에서 묵직한 고통을 느꼈다. 가장 좋았던 연출은 마지막에 저자가 자아와 삶에 대한 고찰을 네 가지 형태의 바다를 통해 표현해낸 부분이었다. 「하나의 유일무이한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고 자아가 분열적이고 유동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171쪽)」 절망과 상실의 질곡 속에서 다시 아침을 맞이하며 이 말을 남겨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바다의 물살이 잠잠할 때도 있고 때론 파도가 몰아칠 때도 있는 것처럼 인간 또한 순간순간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결코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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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도 마찬가지다. 말들 사이의 틈새. 순간들 사이의 공백. 없어져버린 듯한 것들. 바로 그곳이 우리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127쪽)

 

* 나는 엄마네 집 화장실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어떤 거울이라도 본 게 언제였을지 궁금했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온전한 하나의 '나'를 상상하지, 변덕스럽고 분열된 자아를 상상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엄마가 낯선 그 사람을 보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129쪽)

 

* 나는 그동안 늘 엄마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었고, 그 생각을 하고 있자면 소름끼치게 몸이 떨려오곤 했었다. (162쪽)

 

* 하지만 세상에 영원히 계속되는 일은 없고, 그건 심지어 나쁜 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자유이며 나 자신의 본질을 규정하는 그 어떤 잘못된 생각들에도 얽매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현듯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조차… 괜찮게 느껴졌다. (169쪽)

 

* 엄마는 여전히 엄마로 대접받을 자격이, 존엄성을 지닌 한 생명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있었다. 요양원 직원들은 훌륭한 분들이며 더 나은 훈련과 보수를 받아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사회가 노화와 질병을 다루는 방식을 재교육할 필요가 있다.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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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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