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보름
R. C. 셰리프 지음, 백지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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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고양적이며 삶을 긍정하는 책이다" / 가즈오 이시구로(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이 책은 스티븐스 가족이 보그너 해변으로 보름간 여름휴가를 떠나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티븐스 씨 부부, 양재사 밑에서 일하는 곧 스물인 큰 딸 메리, 런던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열일곱인 둘째 아들 딕, 아직 학교를 다니는 열 살 아들 어니가 주인공이다.

휴가를 떠나기 전날 밤의 설렘 가득한 일상으로 이야기의 포문이 열리는데, '이번에도 보그너냐'고, '아직도 해수욕을 즐기냐'는 이웃들의 짓궂은 물음과 방해를 솜씨 좋게 넘기고 보그너를 향한 기차에 몸을 싣는다.

열차에서는 읽을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신봉하는 주의의 스티븐스 씨가 클래펌 환승역 서적 노점에서 가족들을 위한 읽을거리를 사거나 평평해지는 창밖 전원의 세세한 풍경들을 눈에 담는 사소한 일들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고. 😌

매년 오는 휴가임에도 바다가 처음으로 보이는 갈림길에서는 늘 헤매고, 해변 오두막을 예약하는 것만으로도 더없는 기뻐하며 지나가는 무리의 관계를 알아 맞히는 것에 진심을 다하는 이들을 보는데 '왜 때문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지.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맛본게 언제적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스티븐스 씨가 혼자서 한나절 동안 산책을 즐기는 것을 가족 모두가 배려해주는 것, 아이들이 경험하는 모험과 낭만. 낡은 게스트 하우스의 허깃 부인을 향한 의리, 날씨 하나에도 감사하는 마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안락한 잠을 청하는 모습들이 특별할 것 없지만 큰 울림이 있었는데..🌱

다른 모든 이가 귀가 중이거나 곧 귀가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구월의 휴가에서 받는 위안 중 하나라는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여름내내 휴가를 오매불망 기다리게 되고, 더 소중했을 터였다.

실상 그저 해수욕을 했고, 대부분 빈둥거렸을 뿐임에도 찬란한 행복을 맛보았다는 마음이 사소하지만 소중하게 느껴졌고..

몽고메리 씨 저택에서의 다과회가 살짝 걸리긴 했어도 이마저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스티븐스 씨를 보며 인간의 선량함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도 있었던 소설이기도 했다.

어떠한 극적인 사건도, 반전도, 긴박감도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소설이었지만 그 어떤 소설보다 평안한 마음으로 안도감을 느끼며 몰입해서 읽었고.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느끼게 할 만큼 섬세하면서도 정교하게 풀어내는 문체에 홀릭했던 것 같다.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

"당신은 사실, 기어를 바꾸려고 더듬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한순간 여행길이라는 윙윙대는 저속 기어와 휴가라는 보드랍고 천천히 변하는 고속 기어 사이 중립의 공백 속에서 달리고 있는 것이다." p.157

"어쩜 시간은 이토록 놀랍게도 쏜살같이 지나갔던지! 그들은 거의 뭘 하질 않았다, 실상. 그저 해수욕을 했고, 빈둥거리고 다녔지. 그런데도 찬란한 휴가였다."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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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협찬받아서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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