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하는 인류 - 인구의 대이동과 그들이 써내려간 역동의 세계사
샘 밀러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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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책은 역개루 카페와의 서평 이벤트로 쓰였음을 밝힙니다.


우리는 모두 이주민의 후손이었다.”

 

<이주하는 인류>는 이 반박할 수 없는 담대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아프리카에서 최초의 인류가 탄생한 이후 인류는 전 세계로 진출해 나갔고, 모든 인류는 거슬러올라가면 최초로 새로운 정착지에 발을 디딘 탐험가들의 자손인 셈이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필자는 네안데르탈인이 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네안더 골짜기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란 것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현대 멕시코의 이주민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인류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섬세하고 우아한 발걸음으로 오간다.


저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에서부터 파리대왕에 이르는 고대와 현대의 문학작품들을 유려하게 인용하며 이 유서깊은 역정길을 수완좋게 인도한다. 그가 역사의 여러 대목길에 남기는 많은 주석들을 동반한 사려깊은 논평들은 저자가 가진 관점과 학식의 높은 수준을 짐작케하는데, 가령 칠레의 야간족의 최후에 대해서 그는 우리는 모두 네안데르탈인들과 약 1억년전 아프리카를 떠난 현대 인류의 후손들이다. 우리의 혈족관계는 순수혈통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야간족의 혈통을 잃는 것이 아니라 야간족의 문화를 잃는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한다.”라고 마무리짓는다. 저자의 잘 다듬어지고 조심스러운 태도는 필자를 실망케한 근래의 여러 책팔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을 보여주며 그가 이 문제에 보이는 진지한 태도와 품들인 노력을 증명한다.


본 책이 전반적인 인류의 이주사를 다루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과 페니키아인, 유대 디아스포라, 게르만족의 대이동, 바이킹에서부터 현대 아시아인과 히스패닉 이민에 이르는 민감한 정치, 사회적문제들의 근원도 다루고 있다. 앞서 필자가 높이 평가한 저자의 세심한 연구와 탄탄한 조사는 모든 장에서 드러나는데, 가령 아시아 이민에 있어 그는 아시아인을 황인이라 부르는 분류체계의 학술적 근원을 거슬러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하여 중국인 이민에 대한 배척이 흔히 생각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황화론을 떠나서 1603년 중국인 이민자 학살 사건을 거론하며 17세기 스페인의 아시아 식민지에서부터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방대하고 치밀한 조사는 필자와 같이 지식습득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대단히 즐겁게 하며 모든 사회적 현상과 문제들이 일조일석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랜 맥락과 연원을 가지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점은 인종차별, 인종주의가 더욱더 민감해진 2020년대 오늘날에 큰 의의를 가지는데 인종주의 문제는 지나치게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현대적이고 인공적인 개념들을 억지로 주입하는 선정적인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의 조심스럽고 섬세한 대응은 인터넷과 거리에 선동가들이 판을 치는 오늘날에 꼭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고색창연한 순수혈통주의자들과 오늘날의 선동가들에게 동시에 가해지는 엄중한 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매 장의 마지막마다 저자노트라는 부록을 할당하여 저자 본인의 혈통적 근원을 추적한 경험, 이 문제를 놓은 개인의 경험을 서술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과거 올레그 흘레브뉴크의 스탈린 평전에서 본 바가 있는데, 이 책이 단순히 사실 나열이 아니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연하자면 본 책의 서술방식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중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쓰여졌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신하고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하고 싶다. 가령 노예도 이주민인가에 대한 저자의 부연은 저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깊고 신중하게 (특히 저자가 매도되기 쉬운 유대-영국-북유럽계의 백인 혈통의 남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필요한 태도였을 것이다) 접근하고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학술의 자유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부연한다면 필자의 지나치게 나간 사족이 될 수 있으나, 어쩄거나 그렇게 느꼈음을 밝혀둔다.


정리하여 이 책은 오늘날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를 잘 다룬 의의있는 책이며 여러 독자들의 일독을, 특히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필독을 권하고 싶다. 이주민 문제로 과도한 증오와 선동이 판을 치는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큰 의의를 가질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 쉽게 망각한다. 때로는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이 책은 그 여정을 잘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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