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일전에 리뷰한 바가 있는 전쟁으로 보는 서양사의 후속작 '전쟁으로 보는 동양사'가 출간되었다. 이러한 드립으로 가득한 가벼운 만화에 대한 본인의 관점에 대해서는 저번 서평에서 충분히 밝힌 바가 있으며, 개인적 사정과 갑작스러운 와병으로 인해 필자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 관계로 본 서평은 다소 실용적인 관점에서 구성과 내용의 밀도를 중심적으로 논할 것임을 미리 밝힌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전세계적인 사례를 망라하는 거대연구, 한권으로 보는 XX 류의 주제에 대해서 다소 우려의 시각을 가지곤 한다. 이러한 비교연구 혹은 간략한 '총집편'과 같은 책들이 분명히 필요하지만 문제는 세부적인 내용에서의 정확성과 밀도가 보장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가령 필자의 주전공인 북한학을 다루는 비교연구, 거대연구들에서는 북한 정보를 아주 얇게, 그것도 엉터리로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읽는 필자의 한숨을 자아낸다. 하물며 수천년에 달하는 '동양사'의 주요 전쟁을 한권에 담는 것은 책이 10만쪽 짜리라고 할지라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전쟁으로 읽는 중국사', '전쟁으로 읽는 일본사'로 좁힌다 하더라도 한권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이 책도 주로 몽골의 원정, 일본 전국시대, 중일-태평양전쟁에 집중하는데, 전쟁으로 보는 서양사 리뷰를 할때 밝힌 입장이지만 이럴 것이면 차라리 '만화로 보는 태평양전쟁'과 같은 좁은 주제로 가는 것이 "왜 이 전투는 넣고, 저건 넣지 않았느냐"라는 지엽적 비판을 피하기에 더 좋은 접근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결과는 서양사를 읽었을때에 비해서 더욱 비판적이다. 아무래도 필자가 더 자세히 공부해본 분야를 매우 엉성하게 다룬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초한지와 같은 아시아의 고전 대서사시를 아주 얇고 짧게 다룬다는 선택지는 엄청난 무리수였다. 관련하여 만화, 드라마, 영화, 2차 창작 소설이 수없이 나온 초한지를 동네 바보들이 투닥거리는 수준으로 짧게 압축묘사한 것은 거부감까지 들었다.
2. 일부 전쟁, 전투에만 집중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내용의 밀도가 그럼에도 너무 낮으며, 어떤 전쟁을 설명할 때는 대충 원인과 전개만 훑으면서 어떤 전쟁은 갑자기 전투에 대한 (상대적으로) 자세한 묘사가 넣는 구성은 일과성이 없다. 이러한 점은 몽골 원정편에서 주로 드러난다.
3. 내용의 밀도가 서양사 시절보다 낮아진 느낌인데, 특히 중일-태평양전쟁의 묘사는 아주 심각할 정도로 대충이고 뒤떨어져있다. 이건 나무위키만 열심히 읽었어도 이 정도로 묘사하진 않았을 것인데 엉성한 밀도를 드립으로 때우려고 하니 단점이 두드러진다. (쓸데없는 시비를 피하고자 미리 말하자면 나무위키 중국 현대사 문서들은 거의 다 필자가 썼다)
다시 말해서, 필자의 생각으로 전작의 단점들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악화되었다. 단순히 '덕후 만화'이기 때문에, '한권으로 담기엔 지나치게 큰 주제이기 때문에'는 변명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처음부터 기획을 제대로 하고 자료조사를 충실히 하지 않는 이상 '재미'로도 '정보전달'로도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다소 엄격한 평가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