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
정상규 지음 / 아틀리에BOOKS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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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75년이 지났지만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되지 않고 친일파가 독립군이나 애국지사로 기록되어 있거나, 독립운동을 하였음에도 기록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또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올해가 '청산리 전투' 100주년이라는 것뿐, 청산리 전투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름없는 독립군들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조상들을 찾아내야 한다. <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를 읽다보니 더욱 이런 숨은 독립운동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의 주인공인 신홍균 선생은 한의사로 30세에 가족과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독립군 3대 대첩으로 불리는 '대전자대첩'에서 군의관으로 참여해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신홍균 선생뿐만 아니라 조카인 신현표 역시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한국전쟁 후 남한에서 한의사 시험에 합격하고 의료재단까지 만들게 된다. 1912년 최운산 장군이 간도 지역에서 자위 부대를 창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을 데리고 만주로 떠나게 된다. 가족 모두가 만주로 떠난다는 소식에 마을 이웃들은 자신의 작은 노리개나 반지, 음식과 찬거리 등을 싸서 주기도 했다. 만주로 왔다고 해서 바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운산 장군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고 자신이 한의학으로 사람을 치료해 준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나 군자금을 지원하려고 하는 것도 거절당하기도 했다.


신홍균 선생의 일기를 보며 오직 나라의 독립을 걱정하고 독립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의술이 독립군에 보탬이 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되고 싶어 외국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독립운동을 하는데 있어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배반자도 생기고 독립군의 사기도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조선의 미래를 포기할 수 없었다. 1920년 일본군은 독립군의 국내 진입 작전 기밀을 입수하고 만주 국경지대 주변에 활보하는 독립군들의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6월 7일 독립군 홍범도 부대와 최진동 부대의 소대가 각각 북간도를 출발해 간도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의 일본군 헌병 국경 초소 지대를 기습 공격 몰살하게 된다. 이것이 '봉오동 전투'이다. <내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에는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적혀 있고 오직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싸운 독립군들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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