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선의 세계사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후루가와 마사히로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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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보면 17세기 중반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영국은 17세기에 북아메리카의 버지니아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카리브 해에 진출했다고 한다. 로빈슨 크루소가 포르투갈선에 구조되어 브라질로 가는 내용은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당시 영국과 포르투갈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17세기 설탕의 시대라고 해서 브라질에서는 노예제 설탕 플랜테이션이 번성할 시기였다. 담배농작은 적은 자금으로 시작할 수 있는데 자급적 곡물 재배부터 담배, 사탕수수 재배로 농장을 확대하는 경우가 많아 많은 노예 노동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 역시 노예 노동력을 찾아 아프리카로 향한다. 이렇게 문학에서도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듯 '노예'는 노동력이 필요성에 의해 생겨나게 되고, 항해술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된다.


프랑스 낭트는 최대 노예 무역항이었다고 한다. 대서양 노예무역에 앞장선 것은 포르투갈 왕국으로 이슬람 세계와 이탈리아 상인을 통해 얻었던 동방의 향료와 금은 등을 직접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왕실을 정점으로 귀족, 관리, 성직자, 상인 등의 부유한 계층은 노예 노동력을 수탈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노예를 소유했다.


 


영국의 노예선들의 평균 크기는 147톤 정도로 아프리카 연안에서 단기간에 최대한 많은 노예를 획득하고 선상에서의 노예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중간 항로를 지나는 일수를 줄이고자 했다. 남성 노예들은 주갑판 아래에 있는 하갑판에 두 명씩 손목과 발목을 쇠사슬에 묶여 누워 있었다. 배 주위에는 밧줄로 엮은 그물을 설치해 노예가 바다로 뛰어드는 것을 방지했다. 그리고 노예선 안에는 노예를 구속할 도구도 가득 실려 있었다. 채찍은 노예를 위협하거나 벌할 때 상시 이용되는 도구였다. 하지만 노예선에서는 빈번하게 노예들읩 반란이 일어났지만 반란은 진압되고 성공한 반란은 아주 드물었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노예무역과 노예제도에 항거하는 조용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계기는 1772년의 서머싯 사건으로 북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 구입한 노예 서머싯을 영국으로 데려왔고 되팔기 위해 자메이카로 가는 노예선 선장에게 의뢰한다. 그런데 서머싯이 후견인은 쇠사슬에 묶여 배에 갇힌 서머싯을 발견하고 법원에 인신보호 영장을 신청하게 된다. 서머싯의 처우에 관한 재판으로 재영 흑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노예제에 대한 부정적인 풍조가 생겨나게 된다. 흑인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농장에서는 노동력을 대체할 새로운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민자를 받아들이게 된다. <노예선의 세계사>는 400년 남짓 대서양의 노예무역에 대한 역사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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