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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예술로 빛난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
조원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8월
평점 :
당신에게 정신적 만족을 주는 작업은 무엇인가?
그것이 당신의 예술이다.
그리고 그것을 단 한 번뿐인 당신의 삶에서 행할 때, 당신에게 예술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다른 대상이 아닌, 당신 자신이 된다.
이 책은 예술 작품을 설명해 주는 책이 아니다.
툭 던져진 질문에 자꾸만 자꾸만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예술을 처음으로 조금 느껴 볼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정답 맞히는 것에 익숙한 나는 예술 작품을 접할 때, 내 느낌이 틀리리면 어쩌나? 뭔가 더 심오한 뜻이 있을 텐데... 하며 답이나 해설지 찾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역시 너무 이해하기가 어려워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러나 예술 작품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그럼 내가 배웠던 수많은 해설들은? 그냥 감상하신 분의 의견이고 생각일 뿐이었던 것.
예술은 전문가들의 영역이 아니다. 예술은 나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
이 책 자체도 예술작품이이다.
책을 읽다가 그림을 보고, 그림을 보다가 일상의 묘사를 읽는다.
평범한 풍경의 세상이 선물해 주는 예술의 순간들...
이 책을 읽다 보면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예술 작품인 것을 느낄 수 있다. 글로 그림으로 감동을 주는...
첫 부분에 나오는 온 카와라라는 화가의 작품은 도장을 찍었나 했는데, 그림으로 그린 것이었다. 제작한 날짜를 써서 색칠하고, 뒤에 신문을 오려 붙였다.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간을 표현한 것이다.
나도 날짜 도장을 매일 찍는다. 단순한 일상이다. 의미 자체를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시간은 온 카와라를 만나 우리도 시간을 느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우환 화가의 작품은 나도 본 적이 있다. 벽지 모양인가? 싶었다. 그런데 매일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을 점과 선으로 나타냈다고 한다.
책에서 배운 대로 다시 그림을 보며 나의 느낌을 찾았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니까 내 맘대로 생각했다. 모호함... 끝없는 단조로움... 다 같아 보이지만 같지 않음... 끝을 알 수 없음... 내 인생 같다.
인생도 예술처럼 정답이 없다.
예술은 정답이 없어 좋다.
삶도 정답이 없어 좋다.
이우환 화가님의 어머니 이야기는 늘 집안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쌀을 씻을 때마다 매일 다르게 느끼셨다는.
화가님도 어머님도 예술가다. 아무리 허접한 일도 매일 새롭다. 매일 새로우니 매일 즐겁다. 매 순간이 전혀 새롭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행위. 이를 우리는 예술적 행위하고 부른다.
보기를 스스로 결정하며 살고 있느냐는 물음이 너무나 당연해서 생소했다. 누구나 스스로 보기를 결정하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짧은 동영상도 내가 선택해서 본다. 그런데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내가 결정한 듯 보이지만 실은 끌려다녔던 것이다.
왜 나는 안 보는 것을 결정한 적이 없었을까?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는 말이 와닿았다.
뒤샹의 변기를 뒤집어 놓은 <샘>이라는 작품은 좀 황당했다. 그러나 자신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 진정 자신의 예술이었다는 말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추하고 더러우면 뭐 어떤가.
살아 있는 것 그 자체가 예술이지 않은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이보다 더 순수한 행위예술이 어디 있겠는가?
유명 화가들의 허접한 초기 작품들은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 유명한 작가들의 초기 작품 사진을 구하신 건지? 작가님의 열정이 느껴졌다.
나는 이 책에서 최정화의 '소쿠리 탑'과 고흐의 만종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소쿠리 탑'은 어릴 때 엄마랑 갔던 그릇 가게에서 사이즈 별로 팔던 기억이 나서 였을까? 아니면 마트 개업할 때 받았던 빨강, 파랑 소쿠리가 떠올라서 였을까? 어떻게 흔하고 평범한 소쿠리가 이런 거대하고 감동적인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
압도된다는 단어를 처음으로 느낀 예술작품이었다.
그리고 고흐의 만종은 허접한데...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고흐가 밀레의 만종을 따라 그린 습작이 왜 고흐의 유명한 작품보다 더 감동을 주나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고흐가 느껴져서 일까? 실력이 아닌 진심이 느껴져서 였을까?
작가는 마지막에 묻는다.
당신의 사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사회적인 것이 아닌 사적私的 정체성은 처음 듣고 처음 생각해 본다.
나도 사적 정체성을 일찌감치 정립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았어도 됐을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내 정신의 뿌리인 사적 정체성을 내 힘으로 탐구해서 밝혀내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조금씩 찾아가 보자.
매일 나에게 물어보자.
나의 사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가?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러고 보니 나에게 단 한 번도 질문해 본 적이 없었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배우는 능력.
독학력
우리 본연의 능력
저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체험하고 공부하고 훈련하며 나 자신만의 독특한 지적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독학을 사랑한다. 그래서 이런 아름다운 책이 나온 것 같다.
세상은 우리에게 진전을 원하지만 예술가는 자신의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길 즐겁게 반복한다.
오랫동안 커피 독학으로 행복을 만들고, 덤으로 받은 일상의 쾌거인 '이게 정말 커피냐'라는 평가에 나도 덩달아 기뻐지는 오후다.
매 순간은
오직 단 한 번뿐인
전혀 새로운 순간이다.
일기일회라는 말처럼, 차를 마시는 지금 이 순간은 평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일임을 가슴에 새겨 차 한 모금을 아주 새롭게 음미한다는 마음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