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
전대호 지음 / 해나무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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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p.37  피카소의 작품을 시대 순으로 보여주는 전시회에서 중년의 여성 관람객이 피카소에게 물었다. "초기 작품들은 짜임새가 좋고, 차분하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데, 나중 작품들은 경솔하고 제멋대로예요. 거꾸로 되어야 맞는 것 아닐까요?"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사님, 잘 모르시나 본데, 젊어지려면 아주 긴 세월이 필요합니다." 


젊어지려면 아주 긴 세월이 필요하다는 피카소의 명언은, 성숙이란 젊음에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오랜 성숙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젊음에 이른 피카소는 마치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자유분방한 그림들을 그리게 된 것이다.


니체 역시 성숙이란 불확실성과 고통을 긍정하고, 스스로 가치와 의미를 창조하는 것, 삶을 놀이처럼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피카소와 니체가 말하는 성숙이란 모든 것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이 아니라 흔들림을 인정하고, 삶을 긍정하는 힘이다. 


우리는 통일성과 안정성이 있는, 정답에 도달했거나 근접한 것을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뉴턴 역학이나 DNA 이중 나선처럼 확정된 지식이 과학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실패, 고민, 도덕적인 선택 등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을 외면하고, 정답만 강조하는 과학은 인간답지 않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과학을 읽으면 다른 세계가 보인다. 저자가 말하는 인간다운 과학은 과학에 대한 기대와 미래의 불확실함 사이에 있다. 이 책이 이제까지의 책들과 달랐던 건 결론이 안 보였다는 것이다. 피카소의 후기 작품을 본 여성 관람객의 느낌이었다고 할까?


피카소가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서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그리기 위해 평생을 보냈듯, 이 책의 저자는 과학을 인간처럼 묻기 위해 과학과 철학의 세계에 오래 머물렀다. 100권이 넘는 과학 책을 번역한 것만으로도 그 깊이를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이 나오기까지 아주 긴 세월이 필요했다."라고 말하는듯하다. 


피보나치 이야기를 통해 과학이 인간의 필요 때문에 태어난 것임을, 퀴리 부인의 특허 포기 이야기를 통해 지식은 공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슈뢰딩거의 이야기를 통해 권위보다 웃음거리가 될 용기를 생각해 보게 한다. 과학은 정답을 암기하고 지키는 학문이 아니라, 그 정답에 의문을 던지며 미지의 세계로 계속 나아가는 도전이다.


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은 과학을 ‘정답 찾기’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 독자에게 이것이 과학이라며 결론을 내주지도 않는다. 그 대신 다양한 과학 에세이를 통해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해 보게 한다. 처음에는 "어? 그래서 결론이 뭐지?" 하며 당황했지만, 하나씩 읽으면서 나만의 결론, 나만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과학을 배우는 책이 아니다. 과학에 대한 태도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질문을 열어두어, 독자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했다. 과학을 인간답게 읽으려면 “이게 맞나?”라고 묻기보다 “이게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인간답게? 인간답다는 건 뭘까? 인간다움은 정해진 게 아니다. 어떤 기준도 아니고, 과학처럼 공식화할 수도 없다. 완벽함 보다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객관적이기보다는 감정을 고려하며, 어려운 전문용어가 아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일상용어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과학은 진리이기 이전에, 인간이 살아온 방식이다. 그래서 과학을 이해하려면 ‘정답’이 아니라 ‘사람’을 보아야 한다. 과학은 정말 가치 중립적인가?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인간다워졌는가? 저자는 과학의 위대함을 의심하려는 게 아니라, 과학을 절대화하는 태도를 경계하라고 이 에세이를 쓴 것 같다.


자연과학의 피카소는 수학의 왕 프리드리히 가우스다. 가우스는 수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동료들에게 경외감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객관적인 진리만을 다루듯 보이는 과학 역시 인간의 활동이기에, 진리를 향한 탐구와 존경, 질투, 좌절 같은 인간적인 감정도 얽혀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도로 발달한 과학의 시대에 인간의 자리는 어디일까? 그것은 과학을 무조건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과학이 만들어낸 결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가치를 묻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과학을 철학·역사·윤리와 함께 인간답게 읽는 시간을 가져 보자. 명확한 결론보다 질문을 즐기며, 과학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보자. 외우는 과학이 아니라, 생각의 씨앗을 심어주는 인간다운 과학을 느껴보자. 


🌱우리는 이 책을 사물을 보이는 대로 수용한 ‘초기 피카소의 시선’으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대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끊임없이 질문한 '후기 피카소의 시선’으로 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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