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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 따위 넣어둬 - 365일 퇴직을 생각하는 선생님들께
장정희 지음 / 꿈의지도 / 2025년 11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장정희 작가님이 학생들과 함께했던 이야기를 읽다가 유독 <차례차례 피는 꽃>이라는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서 꽃 이야기를 제일 먼저 가져왔다. "지금 이 교실엔 서로 다른 꽃씨가 서른 개나 있네?"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을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학생들은 모두 대학입시라는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아이들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존경 따위 넣어둬>라는 제목은 존경을 받는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제목이 아닐까 싶었다. 글도 소설도 아닌데 얼마나 재밌게 술술 읽혔는지 모른다.
모든 꽃은 차례차례 피어난다. 누군가는 봄, 누군가는 여름. 하지만 문제는 오랫동안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을 때,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 안에 꽃피울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체념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늦더라도 언젠가는 꼭 피어나는 꽃이다. 꽃을 피우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피게 된다!
p.148 진달래가 피었다고 해서 철쭉도 같이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꽃을 피웁니다. 조팝나무 꽃이 피었다고 싸리나무가 몸살을 앓거나 안달하지 않습니다. 피워야 할 때 피우는 꽃들이 모여 이 나라 산천을 꽃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도종환의 산문시 <차례차례 피는 꽃> 중에서
이 책은 실수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제자들과 동료들에게 바치는 고해성사이자,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선생님들께 건네는 위로다. 이 글이 혹한의 시간을 건너갈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작은 촛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저자는, 존경 따위 넣어 두고 서로의 고통을 알아주고, 공감하며 함께 버티자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의 부제는 "365일 퇴직을 생각하는 선생님들께"다. 지금의 교사는 존경보다는 버틸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퇴직을 떠올리는 교사들에게는, 학부모의 따뜻한 한 마디, 학생들의 격려, 서로의 고단함을 알아주는 동료들의 마음이 필요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문학 선생이 된 저자는 가사와 육아가 겹치며 전인 교육은 점점 더 멀어지고, 오로지 점수를 올리기 위해 서로를 매섭게 다그치는데 익숙해져 갔다. 과중한 업무는 스스로를 점점 소진시켰고 의욕은 희미해지고 우울은 깊어졌다.
그러다가 결국 뇌출혈로 쓰러진다. 하지만 다행히 잘 회복해서 학교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남편에게 불행이 닥친다. 그래서 남편 대신 가장이 되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시절, 학교에서 아이들이 건네는 미소와 애정 어린 쪽지가 그녀를 구원했던 천상의 손길이었다고 한다. 그때 그녀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던 건 아이들과 교사라는 일이었다고.
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래야 자녀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너그럽게 대할 수 있다. '선생이 못 견딜 때가 되면 방학을 하고, 부모가 못 견딜 때가 되면 개학을 한다'는 말에 나도 웃음이 나오며 너무도 공감이 되었다.
저자는 숨구멍을 내기 위해 특별활동 동아리 문예반을 만든다. 이 동아리 활동은 스스로를 위한 숨구멍이었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해방구였다. 저자는 학생들을 제자가 아니라 글쓰기 도반(道伴)이라고 생각했다. 도반은 글자 그대로 길(道)을 함께 가는 짝(伴), 즉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라는 뜻이다. 글을 쓰면서 학생들과 함께 선생님도 성장했다.
문예반은 잘 쓰는 사람보다 잘 쓰고 싶은 사람을 반기는 곳이다. 문예반은 공부와 시험에 지친 아이들에게 출구이자 힐링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열정이 재능이다"는 문예반의 모토다. 글 쓰는 동력은 재능이 아니라 열정임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가 설정한 문구다.
저자는 글쓰기의 재능을 탓하지 않는다. 끝까지 쓰는 사람이 재능 있는 사람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문예반을 이끄는 동력은 아이들의 열정이었다. 인문계 고교의 꽉 짜인 일정 속에서도 아이들은 밤을 지새우며 필사하고 시와 소설을 써냈다.
나는 맞춤법 틀리는 남자친구를 우아하게 가르쳐 준 여학생 이야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독감에 걸려 학원을 못 갔더니 남자친구가 "어서 빨리 낳아"라고 문자가 왔다. 그래서 답장하길 "고마워, 꼭 순산할게"
2교시 수업의 <꿈을 찾는 것이 꿈인 아이들>이라는 제목은 딱 나에게도 해당된다.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 권 읽고 온갖 핑계를 대면서 책을 읽지 않는 나 자신을 위해 서평단을 신청했다. 나 자신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서 남들과의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내 성격을 이용한 것이다.
2년 이상 서평단을 해오면서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것은 찾지 못했지만 처음에 책을 읽으면 재밌었다고밖에 표현을 못 하던 내가 책 내용도 조금씩 요약하고 내 생각을 쓰는 분량도 처음에 비하면 정말 많아졌다. 이 수필의 제목처럼 나 역시 나의 꿈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꿈을 못 찾으면 뭐 어떤가? 이미 행복이라는 꿈은 이루어졌는데.
저자의 살인적인 양의 지식 주입을 그만두고, 재밌을 것 같은 질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에 나도 100% 찬성한다. 공부도 하고 행복한 기억도 많이 만드는 교육은 이런 선생님들이 많아진다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감동 스토리는 저자가 학생들에게 사과하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에게 감성만이 아니라 깊이를 갖춘 시도 마주하고, 시를 섬세하게 골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에 상처를 받은 학생이 있었다. 윤미라는 학생인데, 어느 날 저자를 찾아와 자신이 정성껏 준비한 시가 그렇게도 무의미한 거였는지 계속 생각이 나서 수능까지 망칠까 봐 털어버리고 싶어 찾아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즉시,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 학생의 발표를 함께 들었던 아이들 앞에서 사과한다. 이게 소설이 아닌 실화라니... 존경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와 버렸다.
윤미가 발표를 잘못한 게 아니라고, 열심히 준비해서 발표한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선 안 됐었다고, 문학 교사로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내 책임을 윤미에게 전가한 것처럼 보인 건 내 잘못이라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나도 배웠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는 사실을. 기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소개팅할 때 마음에 드는 사람을 붙잡는 방법은 경청이다. 이것도 내 생각과 똑같다. 그런데 어쩌면 표현을 이렇게 이해가 쏙쏙 되게 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경청인지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마주 앉은 사람이 내 이야기에 관심 없거나 도통 아는 게 없는 태도를 보이면, 아무리 예뻐도 매력이 없다. 하지만 상대의 눈높이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정작 내가 자란다. 상대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게 아니라, 그가 보는 세상을 함께 바라보려는 마음과 듣고 싶어 하는 태도를 말한다.
나를 억지로 상대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을 통해 더 많은 세계를 이해하고, 더 단단해져 가는 것이다. 나도 남편에게 억지로 맞추지 말고, 그가 보는 세상을 함께 바라보려고 노력해야겠다.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네가 중요하다는 표현이다. 네가 보는 걸 나도 함께 보고 싶다고 손 내미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관계는 언제나 감정보다도 '자기 존중'에서 시작된다.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이 남을 존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6교시는 나누는 즐거움이다. 문학과 영화 등 작품을 소개하고 이야기한다. 소설이나 수필은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 <숨그네>, <괴물 부모의 탄생>,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헤븐>,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등이 나오고, 영화와 드라마는 <가버나움>, <소년의 시간>, <패터슨>, <다음 소희>를 소개한다. 에필로그에서는 나를 지금의 나로 키워낸 시간들을 회고한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니 존경이 아닌 존중을 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다.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를 완벽하지 않은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고 존경 대신 존중을 실천한다면,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지 않을까?
40년간 국어를 가르치고 문예반을 이끌었던 교사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같은 교사가 읽으면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힘든 감정노동 속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고, 번아웃이 오기 전에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현실적인 생존법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