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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가 담긴 꽃과 나무
양경말.김이은 지음 / 황소걸음 / 2025년 8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어떤 꽃과 나무를 좋아했을까?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은 나도 아주 재밌게 읽었다.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과 나무, 또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이 꽃 이름에 이런 사연이 있었어? 하며 스토리와 함께 읽으니 더 정겹게 느껴진다.
일례로 개나리의 '개'는 질이 떨어진다는 뜻이고, '나리'는 백합 같은 참나리를 말한다. 이 참나리에 비해 볼품이 없어 개나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꽃은 작지만. 꽃부리 끝이 네 갈래로 갈라진 모양이 나리와 똑같아서 개를 부쳤나 보다. 마치 개꿈이나 개떡처럼.
또 뭐가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하는 말은, 옛날 보릿고개 때, 새로 나온 소나무 가지 속껍질을 벗겨 먹으며 굶주림을 견뎠는데, 변비로 거기가 진짜로 찢어져서 이런 속담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과장해서 말하는 표현인 줄 알았다가 이런 슬픈 사연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은 '오이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이다. 내 성은 이(李)씨다. 오얏리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며 그 뜻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전주 이씨처럼 오얏이라는 지명인가 보다 생각했던 것 같다. 과전은 꼭 오이밭뿐만 아니라 참외나 수박 같은 덩굴식물을 심은 밭을 말한다.
이 책으로 내 성인 '오얏나무 리(李)'의 그 오얏이 지명이 아니라 자두의 옛말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게다가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에서 이자를 배나무(梨)라고 알고 있었다. 배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정확하게는 오얏나무다!
봉선화는 뱀을 쫓는 꽃이라는 뜻의 금사화(禁蛇花)라고도 한다. 봉선화가 뱀이 싫어하는 향기를 내뿜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잡귀를 쫓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에 울타리에 봉선화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아이들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들여 준 이유도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병을 막기 위해서였다.
옛날 사람들은 귀신이 붉은색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는데, 드라마 같은 데서 나오는 부적을 보면 빨간색으로 그림이나 글씨 같은 것을 쓴다. 붉은색은 양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색이라 음의 기운을 가진 귀신을 물리치는데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나는 문구류를 좋아한다. 내 친구라는 뜻의 모나미(MonAmi)와 나팔꽃이라는 뜻의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팔꽃은 동요 '꽃밭에서'의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라는 노랫말처럼 주변의 물체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감고 자라는 덩굴 식물이다.
이방원의 하여가는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의 칡덩굴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함께 누리자'라며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지은 시조다. 여기에 칡덩굴이 나온다. 함께 잘 얽혀서 새 시대를 열자는 제안이다.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오후에 꽃잎이 오므라들며 시들어서 모닝글로리라고 한다. 모닝글로리 마크를 보면 빨간색, 흰색, 남색으로 되어 있는데 해마다 꽃 색깔이 들쑥날쑥한 요술쟁이 꽃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나팔꽃 씨앗을 견우자(牽牛子)라고 하는데, 약효가 뛰어나 귀한 소와 바꾸어 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칡과 등나무는 덩굴 식물인데, 칡덩굴은 왼쪽,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 이 두 식물이 뒤엉키면 풀기 어려워 갈등(葛칡 갈, 藤등나무 등)이라는 말이 생겼다. 감기에 좋은 갈근탕의 갈근(葛根)은 칡뿌리다. 옛날에는 먹거리가 부족해서 배고플 때 칡뿌리를 먹었지만, 요즘은 건강을 위해 칡즙을 마신다.
군자(君子)는 덕과 학식이 높은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사군자는 매란국죽(梅蘭菊竹)이다. 사계절을 대표하여 군자의 덕목을 상징하는 말이다. 나는 그중에서 서리에도 홀로 피어있는 절개라는 뜻의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는 국화가 좋다. 대나무는 쓸모도 많고 죽순도 먹을 수 있지만 풀같이 생겨서 예쁘지 않고, 매화는 주위에서 보기 힘들고, 난초는 기르기가 너무 힘들어서 왕년에 너무 많이 죽여서 미안해서 면목이 없어 좋아할 수가 없다.
국화는 고인의 순수한 영혼을 기리고, 평안하게 떠나기를 바라는 의미로 장례식에도 쓴다. 서리를 맞으면서도 피어나는 국화의 특성은 고인을 향한 변치 않는 존경과 추모의 의미도 담고 있다.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서는 일본인의 평화를 사랑하는 국화의 모습과 전쟁을 숭상하는 칼의 모습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국민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꽃 피는 동백 섬에 봄이 왔건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첫 소절에 나오는 동백 섬은 동백나무가 무성하여 동백 섬이라고 한다.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서쪽 끝에 위치한 섬이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광안대교, 오륙도 풍경도 들어온다. 신라 시대 학자인 최치원의 호가 해운(海雲)인데 그의 호를 따서 해운대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동백 섬 정상에는 최치원의 동상과 기념비가 있다.
하지만 김유정의 단편 소설 <동백꽃>에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은 소설의 무대인 춘천시 실레마을에 피는 생강나무 꽃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제주 4·3 희생자를 추모할 때 동백꽃을 사용한다. 송이째 떨어진 동백꽃이 그때 곳곳에서 죽어 간 이들의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꽃과 나무는 이 책 맨 끝에 나오는 귀신 쫓는 복사나무다. 내가 모르는 나무인 줄 알았는데 복숭아나무를 복사나무라고 한다. 복숭아의 옛말이 복사다. 복사나무는 꽃을, 복숭아나무는 열매를 보고 부르는 이름이다. 제사를 지낼 때도 복숭아를 올리지 않아서 왜 그런지 궁금했었는데 복숭아가 귀신을 쫓는 과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도교에서는 복숭아를 장수와 불멸을 상징하는 과일이라고 생각했다. 심청전에 도화동이 나오는데 원래는 황해도 황주의 도화동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포구 도화동은 복숭아꽃이 많이 피어 복사골이라고 불리던 곳에서 유래한 지명이고 심청전과는 관련이 없었다. 무릉도원(武陵桃源)과 같은 이상향에 복숭아도(桃) 자를 쓰는 걸 보면 신선들이 좋아하는 과일로 불로불사의 상징인 것 같다.
삼천갑자 동방삭(東方朔)의 긴 수명은 60갑자가 3천이니 18만 년을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복숭아밭에서 복숭아를 훔쳐먹고 전설적인 수명을 누렸고, 손오공도 복숭아를 몰래 따먹고 오래오래 살았다는 전설 때문인지 복숭아는 장수 과일로 알려져 있다.
요즘은 제사를 안 지내는 집이 정말 많아진 것 같다. 내 주위에는 나를 포함해서 하나도 없다. 그래서 명절에는 가족끼리 모여 식사를 하거나 가족 여행을 간다. 가족끼리 모였을 때 즐거운 얘기를 나누며 동방삭이 먹고 18만 년을 살았다는 장수 과일인 복숭아를 먹어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