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 난 창
박지향 지음 / 좋은땅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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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야 만들어 가는 거지.

살아 보니 알겠더군

집의 중심에 엄마가 있어야 하고,

엄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집은 건강하고 튼튼하지

(p.136)

물리학 교수였던 할아버지는 연구와 강의에 몰두하느라 아내는 늘 뒷전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곁을 떠난다. 그 때서야 비로소 할아버지는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한 긴 세월들을 후회하며 한 말이다.

만약 아들이 있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면 제일 우선적으로 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할 건 그 무엇도 아닌 아내를 많이 많이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해 줄 거라며...

집에서 살림을 한다 는 것은 아무도 알아 주지 않고 눈에 보이는 소득이 통장으로 찍히는 것도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다. 인정받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희생을 각오해야 한 가정의 행복이 지켜지는 것이다. 남자가 살림을 하는 경우에는 아내를 남편으로 바꾸어 읽으면 된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했으면 그 사람의 좋은 면만 보겠다는 각오를 하자. 그리고 서로 맞춰 가는 것이 사랑이다. 사람 다 거기서 거기라는 흔한 말처럼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저자가 캐나다 밴쿠버 리타이어먼트 홈에서 만난 분들 이야기도 나라와 환경은 다르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는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상처 하나 없는 인생 역시 없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쌓인 한과 사연을 가진 한 분 한 분의 삶은, 흔들어 놓은 콜라병 같았다고 한다. 그렇게 터져 나온 이야기들을 시처럼 엮어 낸 것이 이 책이다.

평생 한 여자를 사랑한 일이 눈부신 성공이었다고 말하는 《노트북》이란 영화 속 노아와 같은 해리 할아버지. 치매에 걸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아내를 홀로 두고 돌아와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등으로 우는 남자를 본 적이 있는가? 커다란 등이 들썩일 때마다 굵은 눈물방이 뚝뚝 떨어지는 남자를 본 적이 있는가? 아내는 해리 할아버지에겐 집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서쪽으로 난 창이란 제목은 리타이어먼트 홈 2층의 통유리 창문이 서향이라, 저무는 황혼과 일맥 상통해서 지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책 표지의 모래시계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세월일까. 저 서쪽으로 난 창은 지금도 그대로 일 텐데... 창을 바라보던 분들만 밀물과 썰물처럼, 모래시계처럼, 과거와 현재를 드나들고 계실 것이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왕년에 할머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생 한 적도 없고, 나밖에 모르던 할머니. 잘나가는 남편에, 유명 인사가 된 딸도 있다는 왕년에 할머니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방에 왕년에 누렸던 화려한 장식품과 물건들에 둘러싸여 왕년을 사신다. 왕년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그래도 무방하지 않은가.

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오셨었다는 은퇴한 교수님은 1950년대의 우리나라에 시계가 귀해서 시계 밀수까지 하셨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배를 타고 그 옛날 울 엄마가 사시던 시대에 한국에 오셨었던 분을 만나다니.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작가님이 대신해 주는 이야기를 통해 만나도 반가웠다. 이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분들이 더 많은, 아직도 살만한 세상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지친 저녁에도 밥 한 끼 같이 먹으려고 쌀을 씻는 엄마의 일상이 사랑이다. 이런 평범한 일상 외엔 아무것도 이뤄 놓은 게 없다는 분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한 평생 감사히 잘 살다 간다고~

한 분 한 분의 평생이 녹아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모르는 음악과 영화, 꽃과 나무도 찾아보았다. 무더위 속에서 캐나다로 떠났던 가슴 먹먹한 책 속 여행이었다.

글로 집을 짓는 사람을 작가라고 한다. 집은 누구에게나 편안한 안식처다. 이 책은 스트레스가 쌓였거나 힘들고 지쳐 쉬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휴식 같은 책이다.

국적 불문, 학벌 불문, 나이 불문, 성별 불문하고 한 인간의 삶은 이룬 것이 있건 없건 마지막 순간에 잘 살았다고 느끼건 후회만 가득 하건 다 그 나름대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이왕 사는 인생 신나게 탱고 리듬에 맞춰 웃으며 석양을 향해 가자. 책 마지막 문장처럼~

혼자도 좋고, 둘 이면 더 좋은

인생은 탱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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