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사람을 기록하는 마음을 홍은전은 삭발투쟁을 하는 유족의 머리를 밀어주며 "죄송해요"라고 말하던 여성의 마음에 비유했다. "바라는 것은 그가 나에게 안심하고 자기의 슬픔을 맡겨주는 것이고, 나는 되도록 그의 떨림과 두려움을 ‘예쁘게’ 기록해주고 싶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장애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은가 신경이 쓰"인다고. 이렇게도 말했다.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 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고 - P40
언제부턴가 공부란 호기심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만큼 나를 매혹시키지는 않았지만 호기심 이상으로 내 마음을 붙드는 것이 있다. 어떤 주제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것이 신기해서일 수도 있지만, 안타깝고 걱정이 되어서 혹은 서럽고 화가 나서일 수도 있다. 내가 가만히 있는 나 자신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부하는 심정이라는 것도 있다. 호기심 때문에 더 깊이 파고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염려 때문에 더 자세히 살피는 사람도 있다.
공부하는 심정. 어느 장애인의 글을 읽다가 이 말이 떠올랐다,. 그에 따르면 장애학자 중에 장애인 당사자가 많다. 비장애인 장애학자의 경우도 상당수는 장애인의 가족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자신에게는 너무 절실한데 세상에는 연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주체로 한 연구들, 이를테면 장애인들이 고통 속에서 축적해온 삶에 관한 지식, 장애 문제를 통해 바라본 사회와 세계,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한 실천 등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장애학의 학문적 지위는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를 닮았다. - P41
얼마 전 발달장애인 남매를 둔 한 어머니의 호소를 듣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마음이 떠올랐다. 이 호소를 전할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싸구려 앰프, 싸구려 광고판이라도 되고 싶다. 김미하씨의 이야기다. 2021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중증 발달장애인 남매와 살아왔다. 그는 유방암 4기 환자이기도 하다. 시한부 삶을 통보받았다. 의사는 운이 나쁘면 6개월, 운이 좋으면 1년을 살 수 있다고 했다. 통보를 받자마자 김미하 씨가 달려간 곳은 병원이 아니라 시청이었다. 자료를 찾고 공부를 했다. 남매의 살길을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제발 죽기 전에 시범 사업이라도 좋으니 ‘지원 주택’, ‘주거 돌봄 서비스’라도 시작해달라고 시청과 도청에 호소했다. 그가 받은 답변은 6개월 정도 검토 후에 시행이 될지 안 될지를 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2023년 1월, 경기도지사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8월에 전이가 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 제가 가장 크게 느꼈던 건 극심한 공포였습니다. 제가 죽을까봐 그 공포가 아니라 아이들이 무방비 상태로 이대로 방치가 되고 제가 죽을까 봐, 아이들이 그 어떤 지원도 못 받는 상태에서 제가 죽을까 봐, 그것 때문에 저는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저는 8월에 이미 의사로부터 운 나쁘면 6개월, 운 좋으면 1년밖에 못산다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 기간 내에 아이들이 지원 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밖에 저는 바라는 게 없었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제발 제가 살아 있을 때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원 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죽는 겁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저는 아이들을 이대로 두고 죽을 수가 없습니다."
성인 자녀들이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호소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보인 반응은 그야말로 절망적이다. 노력은 한다지만 계획이 없고, 계획은 있다지만 실행은 알 수 없다. "이렇게 아무것도 결정된 것도 없는 상태에서 제가 죽으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분의 답변은 ‘그럼 그때 어떻게든 해결되겠죠.’ 그래서 제가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그 해결 제가 살아 있을 때 보고 죽게 해주세요.’ 그러니 ‘우선 몸부터 돌보고 오래 사는 게 답’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아픈 부모가 오래 사는 게 답일 수가 있겠습니까." 국가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을 방기하는 곳에서 부모들이 내몰리는 해법은 자녀보다 하루라도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해법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보모가 살아야만 자식이 살 수 있는 곳에서는 부모가 살 수 없을 때 자식을 죽이는 일이 일어난다. - P51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이 말에는 우리가 앓는 두 겹의 고통이 들어 있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상처로 인한 생리적 고통만이 아니라 그런 상처를 가졌다는 사실로 인한 해석적 고통도 앓는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의 고통과는 다른 고통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느끼고, 장애인은 손상된 몸이 주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사람들의 편견에서 느낀다. 몸의 멍에 더해 마음의 멍이 생기는 것이다. 흔히 고통은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치통처럼 간단한 것조차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저마다 자신이 앓던 치통을 떠올려볼 뿐이다. 그래도 생리적 고통은 해석적 고통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해석적 고통의 경우, 특히 그 고통이 자신이 사회적 척도에 부합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생겨난 경우, 고통의 호소는 부적합한 존재로서 자신을 확증하는 것처럼 느껴져 더 고통스럽다. 상대방은 내 호소를 내가 비정상적이고 뭔가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공감 대신 선고를 받는다. 네가 아픈 이유는 네가 아픈 존재이기 때문이야. 그러다 보니 소위 소수자들은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 폭력을 고발하는 경우에도 마치 고발당한 사람처럼 변명의 언어를 쓴다. 내가 당한 폭력, 내가 느끼는 고통을 내 존재의 본래적 성격 탓으로 돌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들의 호소를 곧잘 의심스러운 눈으로 본다. 네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폭력을 유발한 것은 아닌지. 너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 너무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사람을 구차하게 만든다. 이때 나의 말은 한없이 구질구질해진다. 내 고통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 삶의 멍든 곳을 다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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