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이자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중요한 기본권이다. 표현은 사람마다 그 해악을 느끼는 정도가 각기 다르고 사회의 자정 능력에 의해 그 해악이 치유될 수도 있다. 그래서 표현에 대한 개입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 일베나 여성 혐오가 문제라는 점에 동의하더라도 그것이 표현에 머물러 있는 한은 쉽게 규제 카드를 꺼내들 수 없다는 것이다. - P14

표현의 자유는 권리 중의 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권리 주장의 출발점이다. 부당노동과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부당한 차별에 시달리는 이주자, 고속버스 탈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없이 다른 권리의 보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문제, 특히 소수자의 문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이 ‘자유 확대’가 아니라 ‘자유 축소’로 귀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사 ‘아주 공평하게’ 진보와 보수, 강자와 약자, 좌파와 우파의 표현의 자유를 모두 축소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제약받는 정도가 커질수록 이득을 보는 쪽은 강자다. 서로 할 말을 못 하는 상황은 ‘현상 유지’를 바라는 강자의 입장에서 그리 나쁘지 않다. 반면 소수자의 입장은 정확히 그 반대다. 소수자에게는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부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고 그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19

사전적 의미로 혐오는 매우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혐오는 ‘혐오시설’, ‘혐오식품’처럼 시설이나 음식을 수식하는 말로 주로 쓰여왔다. 혐오표현은 ‘헤이트 스피치 hate speech’를 번역한 말인데, 영어에서 ’헤이트‘도 극도의 싫음, 역겨움, 적대감을 뜻한다. 헤이트나 혐오 모두 상당히 강한 늬앙스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혐오표현에서의 혐오는 이러한 일상적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여기서 혐오는 그냥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혐오표현은 ’차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자유권규약은 차별, 적의, 폭력 등을, ’유럽 평의회 권고‘는 민족주의, 자민족중심주의, 차별, 적대 등을 나란히 혐오표현의 개념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혐오표현은 소수자를 사회에서 배제하고 차별하는 효과를 낳는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승진시험에서 탈락시키는 것도 차별이지만, 회사 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하는 것 역시 차별과 다름없다. 혐오표현 자체가 성소수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줄 분만 아니라 차별로 직결되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현과 행위는 이분법적으로 분리될 수 없으며 표현이 곧 차별의 "사회 현실을 구성"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 P24

표현 방식 중 가장 해악이 크다고 간주되어온 것은 ‘선동 incitement’이다. 대중들에게 차별과 적대를 선동하여 구체적인 행동이 촉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면 선제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 자유권규약은 사실상 혐오의 선동, 고취를 금지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개별 국가의 혐오표현금지법도 대개 이 선동형 혐오표현을 주된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 반면 유럽평의회 권고처럼 선동, 고취뿐만 아니라 확산과 정당화 등도 혐오표현의 개념에 포함시켜 혐오표현을 광범위하게 정의하는 경우도 있다. 정리해보자면, 혐오표현이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정도로 그 개념을 정의해볼 수 있다. - P31

"우선 필자는 동성애에 매우 비판적이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맹활약했던 이준석 씨는 동성애에 대한 칼럼을 이렇게 시작했다. 칼럼은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서 동성애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취하자는 주장으로 마무리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가히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칼럼이었다.

내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점은 그 칼럼이 놓여 있는 현재 한국 사회의 맥락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혐오표현이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하여 다소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차별이 현존하는 한 아무리 사소하고 점잖은 표현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 P40

<시사IN>과 아르스 프락시아가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와 나무위키의 ‘메갈리아’ 항목을 분석한 결과, 여성혐오를 당한 여성들의 감정적 반응은 ‘공포’로 귀결되는 반면, 남성혐오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쪽의 검정선에는 공포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남혐과 여혐이 사회에서 작동하는 기제가 똑같다고 볼 수 없고 남혐을 여혐과 비교하여 ‘그게 그거고 다 나쁘다’는 식으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 P44

침묵과 무시가 대안일 수는 없다.

회사 회식자리다. "전 동성애가 참 싫어요. 뭐 우리 회사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서 차별받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다른 직원들이 맞장구를 친다. "맞아 맞아. 난 솔직히 소름끼쳐. 그렇다고 차별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야." 옆에는 동성애자 직원이 있다.
‘차별하면 안 된다’는 명제에만 동의한다면 ‘동성애 반대’, ‘동성애에 비판적’이라는 말을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면 "동성애에 비판적이다"라는 내용의 칼럼이 신문에 실려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이 차별을 조장하고 소수자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면 이 엄중한 현실을 외면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이 아무런 제지 없이 발화되는 사회를 두고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는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듣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민감하냐고 타박할 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사회적 현실을 고려하여 발언하는 게 윤리적으로 옳다. 그것이 공적 인물의 공적 발언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공인은 자신의 발언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세심하게 고려하여 신중하게 발언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 차별의 맥락이 있는 한, 표현의 수위와 상관없이 혐오표현은 차별을 재생산하고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혐오표현의 개념을 넓게 설정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혐오표현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 P49

증오범죄란 무엇인가

증오범죄 여부를 가리는 것은 ‘편견의 동기’다.
편견, 혐오, 혐오표현, 그리고 증오범죄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이 증오범죄도 저지른다. - P95

혐오표현도 표현인 이상, 이른바 ‘사상의 자유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이 있지만, 사상 시장에서의 ‘자유롭고 평등한 경쟁’을 가정하는 것은 "합리적 숙의의 잠재성을 과대평가" 한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실제로 시장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소수자이고 실질적으로 불평등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수자들이 공론을 장악한 상황에서 소수자들 스스로 혐오표현이 맞서 싸울 수 있겠냐는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고 제3자인 청중들이 혐오표현이 발붙일 곳이 없도록 충분히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혐오표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은 현실의 권력관계를 인정하고 시장의 실패를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 P147

형성적 규제는 범국가적 차원에서 반차별 정책을 시행하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인식을 제고하고, 소수자 집단에 대한 각종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형성적 규제는 궁극적으로 혐오 표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센터를 지원한다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퀴어문화축제를 지지하고 지원한다면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규제를 ‘금지하는 규제’와 대비되는 ‘지지하는 규제’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입은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형식적인 자유가 주어져도 소수자가 실제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진정으로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국가 개입의 목표는 바로 이 ‘진정한 자유’와 ‘실질적 평등’의 실현을 위해 소수자의 ‘자력화 empowerment’를 지원하고 시민사회의 대항 담론을 활성화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은 금지와 처벌을 위한 개입이 아니라, 개인의 권한을 강화하고 그들의 대항표현을 지원하는 개입을 말한다. 이를 통해 소수자 및 그와 연대한 시민사회가 혐오표현에 맞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혐오표현에 대처하는 가장 원칙적인 방법이다. - P152

형사범죄화로 인해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에너지가 처벌에만 집중된다는 문제도 있다. ‘합법’이라고 인정하면 사회는 그것을 ‘문제없음’으로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회피하곤 한다. 반면, ‘불법’으로 판결하여 처벌에 성공하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착시현상이 생기고 국가는 자기 역할을 다했다는 면죄부를 얻어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등한시할 수 있다.
법이 발화자 처벌에만 머무른다는 것도 문제다. 혐오표현의 원인에는 복잡한 정치, 사회, 경제적 배경이 깔려 있어서 이런 것들을 도외시한 채 혐오표현의 ‘발화자’만 처벌하는 것은 진정한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범죄를 낳은 것은 ‘사회’인데, 처벌받는 것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된다는 문제다. 금지와 처벌로 인해 겉으로는 법규제가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수면 아래에 있는 혐오와 차별은 언제든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 P160

증오범죄자들은 흑인, 여성, 성소수자를 고립시키고 배제하려고 한다. 이에 맞서는 우리의 대응은 차별과 배제를 획책하는 이들을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사회의 몫이기도 하지만 법과 정책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며,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자가 일관되게 견지해야 할 입장이기도 하다. - P201

혐오표현이 빈곤, 불평등, 실업 등의 사회경제적 위기와 결부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일자리 문제’와 연결시킨다거나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동성애에 반대해야 한다거나 5.18유공자의 공무원시험 가산점에 대해 "공부해봐야 소용없다"고 선동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회경제적 위기가 단기간에 극복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위기가 혐오와 만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편견이 항상 발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관련되면 쉽게 폭발할 수 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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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서 만납시다 - 짱구쌤의 세상에 없던 학교 이야기
이장규 지음 / 르네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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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혁신학교를 두 번째 교단이라 부른다. 학교의 역할과 수업의 본지르 동료성에 기반한 집단 지성, 삶에 밀착된 융통성 있는 교육과정은 내가 꼽는 혁신학교의 특징들이다. - P36

동장 건너 해먹은 누워서 ‘하늘멍’할 때도 좋ㄹ지만 이렇게 둘이 앉아 도란도란하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 마스크에 가면까지 썼지만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껌딱지 같은 두 녀석이다. 슬쩍 다가갔더니 신발, 옷 이야기가 한창이다. 나를 온전히 받아 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어디든 살 만하다. 그림자를 추월하려는 가망 없는 질수의 시대에 자기만의 속도로 느긋하게 나아가는 녀석들. 어른들의 걱정은 크겠지만 단짝은 선하고 희망차다. - P66

우리는 우유갑을 버리지 않고 재생 화장지와 바꿔 오는 교육 활동을 8년 이상 지속하고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변함없이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자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두 명의 실천이 아니라 대다수가 여러 해 동안 지속하기 위해서는 해마다 반복적으로 의미를 짚고, 평가하고, 시기별로 점검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 생태교육 해 봤는데 식의 소위 ‘알리바이’ 교육이나 우리도 그거 있어 하는 ‘백화점식’ 교육과정은 지속적인 실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 P69

"내가 사는 공간을 내 힘으로 바꾼다." 건축 수업은 미래 교육에서 추구하는 주도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수업이다. 함께 생활하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고 불편한 곳을 고쳐 더 나은 공간으로 바꿔 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또 소중한 것을 배웠다. 이것이 우리가 열어 가는 미래 교육이다. - P77

"내가 사는 공간을 내 힘으로 바꾼다." 건축 수업은 미래 교육에서 추구하는 주도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수업이다. 함께 생활하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고 불편한 곳을 고쳐 더 나은 공간으로 바꿔 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또 소중한 것을 배웠다. 이것이 우리가 열어 가는 미래 교육이다. - P90

초등 보통교육을 받은 아이가 스스로 자기 실내화를 빨지 못한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한 세대라고 불리는 요즘 아이들이지만, 스스로 뭔가 해내는 힘이 지금만큼 약한 시대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서른 넘어서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 갈수록 늘어난다. 적어도 학교교육에서 그런 기회를 자주 주는 것이 교육과정의 본령이었으면 좋겠다. 역량을 키울 기회 말이다.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삶의 힘을 기르는 것이라 이해했다. 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은,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을 해결해 내는 힘을 기르는 교육, 실내화를 빠는 일이 그러기를 바란다. - P99

입을 모아 합의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적어도 AI나 챗봇 같은 기능적인 부분으로 한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뜬구름 잡는 담론, 가령 4차 혁명 같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기대고 싶지도 않았으니, 우리 방식으로 해석하고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앉아서 미래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것으로 미래를 열자!" 우리는 꾸준하게 ‘지역과 생태’라는 키워드를 붙잡고 혁신학교를 운영하였으니 미래에도 이 학교와 지역이 존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구례의 여러 개인과 교육과정이 학교 울타리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으니, 이 학교와 지역에서 우리 아이들이 ‘구례를 사랑하고, 구례에서 오래 살아갈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공간’이다. 내가 살아갈 속을 바꾸어 보는 적극적인 교육행위, 불편한 것을 고쳐 보고, 새로운 곳을 창출해 내는 공간혁신을 통해 미래를 펼쳐 보이고 싶었다.

지역, 생태, 공간, 이것이 우리의 미래이다. - P103

입학해서 잘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이들의 답변은 구체적이다. "그네타기, 인사하기, 정리, 뛰기, 줄넘기, 훌라후프, 그리기, 나무 타기, 잘 들어 주기, 친하게 지내기, 만들기, 잘 놀기…."

학부모들의 답변에서는 자녀의 성장이 대견한 마음이 잘 느껴진다. "밥 잘 먹기, 한글 잘 읽기, 축구 골 결정력 좋아지기, 소나무 잘 타기, 자신감, 애정 표현…"

담임선생님의 관찰기록에는 애정이 가득하다. "젓가락 사용하기, 바른 자세로 앉기, 책 즐겨 읽기, 그네 혼자 타기, 자전거 보조 바퀴 떼기, 채소 먹기, 연필 바르게 잡기…"
자신의 변화를 뿌듯해하고, 친구의 성장을 칭찬하는 시간이 계속 된다. 가장 좋은 것은 사람이 자라는 것,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함께여서 좋은 것이다. 더할 나위 없다. - P129

우리가 내건 비전과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이곳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비단 아이들만 성장시키는 곳이 아니라 함께 있는 나를 포함한 어른들도 성장시키는 곳이어야 한다. - P135

다만 경험이 부족할 뿐

"유년에 즐거운 추억이 많은 아이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한 말이다. 교실 활동을 넘어 실내화 빨기, 서시천 산책하기, 운동장 맨발로 걷기, 자전거 타기… 우리가 다소의 오해와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교육에 접목하는 이유이다. 다만 경험이 부족할 ㅂ분 충분히 지적인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실패한 경험까지도) 즐겁게 채워 줘야 한다. 그것은 다가올 어른의 시간을 안전하게 맞이할 에어백이 되어 줄 것이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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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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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토너 앞에 놓인 장래는 밝고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장래를 수많은 사건과 변화와 가능성의 흐름이라기보다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보았다. 그에게 장래는 곧 웅장한 대학 도서관이었다. 언젠가 도서관에 새로운 건물들이 증축될 수도 있고, 새로운 책들이 들어올 수도 있고, 낡은 책들이 치워질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의 진정한 본질은 근본적으로 불변이었다. 그는 몸을 바치기로 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곳에서 자신의 장래를 보았다. 장래에 자신이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장래 그 자체가 변화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변화의 도구라고 보았다. - P39

전쟁선포 후 처음 며칠 동안 스토너도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캠퍼스 내의 사람들 대부분을 사로잡은 혼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나이 많은 학생들이나 강사들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어도, 사실 그는 전쟁을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쟁이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자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엄청난 무심함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전쟁 때문에 대학의 일들이 중단된 것에 화가 났다. 자신의 내면에서 강렬한 애국심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또한 독일인들을 미워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 P49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네.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우리 학과에서 거의 3분의 1이 사라져버려서 말이야. 게다가 이 자리를 메울 사람을 찾을 희망도 없다네. 내가 화난 건 자네 때문이 아니야. .." 그는 스토너에게서 시선을 돌려 높은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빛이 그의 얼굴에 곧바로 떨어져서 주름살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고, 눈 밑의 거뭇한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들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그가 병든 노인처럼 보였다. "나는 1860년에 태어났네. 반란의 전쟁(주로 북부 사람들이 남북전쟁을 부르던 이름))이 일어나기 직전이지. 물론 나는 그 전쟁의 기억이 없네. 너무 어렸으니까. 내 아버지도 내 기억 속에 없어. 전쟁 첫 해에 실로 전투에서 전사하셨거든." 그는 재빨리 스토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네. 전쟁은 단순히 수만 명, 수십 만 명의 청년들만 죽이는 게 아냐.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 마음 속에서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뭔가가 죽어버린다네. 사람이 전쟁을 많이 겪고 나면 남는 건 짐승 같은 성질뿐ㄴ이야. 나나 자네 같은 사람들이 진흙탕 속에서 뽑아낸 그런 인간들 말일세."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학자에게 평생 구축하고자 했던 것을 파괴하라고 해서는 안 되네."

——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 - P53

스토너는 이틀 동안 수업에 나가지 않고, 아는 사람들과 한 마디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내내 작은 바엥 틀어박혀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했다. 조용한 방과 책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바깥세상에서 멀게 들려오는 학생들의 고함소리, 벽돌로 포장된 길에서 따각따각 빠르게 마차가 달리는 소리, 시내에 열 대 남짓한 자동차의 단조로운 엔진소리 등이 아주 가끔씩 그의 의식 속으로 들어올 뿐이었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살짝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자신에게 내놓을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 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또한 거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나자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금요일에 매스터스와 핀치를 만나 자신은 독일군과 싸우러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 P55

고든이 이 질문에 대답한 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윌리엄의 아파트 앞에 차를 대기 직전에 고든 핀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지만, 아까 예배 중에 나는 계속 데이브 매스터스를 생각했네. 프랑스에서 죽은 데이브와 자기 책상에 앉아 죽은 채 이틀을 보낸 슬론. 두 사람의 죽음이 같은 종류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는 슬론하고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아마 좋은 사람이었겠지. 적어도 내가 듣기로는 그렇다고 했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교수를 물색하고, 새로운 학과장도 찾아봐야 해. 모든 게 그냥 이런 식으로 계속 돌고 도는 것만 같아. 도대체 이것이 다 뭔가 하는 생각이 드네."
"맞아." 윌리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고든 핀치에게 커다란 호감을 느꼈다. 그는 차에서 내려 고든의 차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또 다른 한 부분이 거의 알아보기 힘들 만큼 천천히 그에게서 멀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절감했다. - P128

"지난 1, 2주동안 아버지가 살이 많이 빠지셨다."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밭에 나가지 말라고 말했는데도 내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나가버렸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야. 병이 너무 깊어서 제정신을 잃고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랐던 거다. 의사말이 틀림없이 그랬을 거라더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거라고."

어머니가 말하는 동안 스토너의 눈에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어머니도 이미 죽어버린 것 같았다. 어머니의 일부가 남편과 함께 저 상자 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야 어머니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여윈 얼굴이 퀭하게 보였다. 피부가 늘어져서 가만히 있을 때조차 얇은 입술 사이로 치아 끝이 살짝 드러났다. 걸을 때는 무게도 힘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는 뭐라고 중얼거리고는 거실 밖으로 나가 어렸을 때 자신이 쓰던 방으로 가서 그 황량한 풍경 속에 서 있었다. 눈이 뜨겁고 건조했다.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 P151

윌리엄은 놀란 표정으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 정말로 그렇게 믿는 거로군."
"당연하죠." 이디스가 말했다. "나는 그 아이 엄마예요."
스토너는 이디스가 방금 한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것만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가 왠지 고요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나를 증오하는군. 그렇지 않고, 이디스?"
"뭐라고요?" 그녀의 목소리에 깃든 놀라움은 진심이었다. "아, 윌리!" 그녀가 또렷란 소리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 같은 소리 마세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당신은 내 남편인데요."
"아이를 이용하지 마시오." 그는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요. 당신도 알 거요. 다른 건 뭐든 괜찮지만, 계속 그레이스를 이용한다면 내가…" 그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 P176

로맥스의 질문이 끝나고 홀랜드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스토너는 지금 훌륭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로맥스는 지나치게 나서지 않으면서 아주 매력적이고 유쾌하게 공연을 주관했다. 홀랜드가 질문을 던지는 동안 로맥스는 사람 좋은 표정으로 우아한 척하며 몇 번 추가 설명을 요구했다. 자신의 열정이 지나친 것을 사과하며, 홀랜드의 질문에 자신의 추측을 얹어 워커를 토론으로 이끌 때도 있었다. 그래서 마치 그가 실제로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질문의 문구를 다시 정리해서(항상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명하는 동안 원래의 질문 의도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주 정교한 이론적 논쟁처럼 보이는 것에 워커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주로 그였다. 그는 계속 사과를 하면서 홀랜드의 질문을 자르고 자신이 직접 질문을 던져, 워커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동안 스토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위에서 소용돌이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핀치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의 표정이 무거운 가면처럼 변해 있었다. 러더퍼드는 눈을 감고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었다. 홀랜드는 워커의 정중하지만 경멸 어린 태도와 로맥스의 열광적인 활기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토너는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려고 기다리는 중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움과 분노와 슬픔이 점점 강렬해졌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바로볼 때 그들 중 누구도 자신과 눈이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219

따스함과 애정, 오랜 친구를 향한 다정함과 존경심이 스토너의 마음속에 내려앉았다. 그가 말했다. "물론, 알지, 고든. 내가 이해하지 못할 줄 알았나?"
"좋았어." 핀치가 말했다. "한 가지 더 있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로맥스가 총장을 꽉 틀어쥐고 멋대로 휘두르고 있네. 그러니까 어쩌면 자네 생각보다 훨씬 더 심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자네는 그저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고 한마디만 하면 되네. 그냥 전부 내 탓으로 돌려도 좋아. 내가 억지로 시켰다고 하게."
"지금 내 체면을 살리는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닐세, 고든."
"그건 나도 알아." 핀치가 말했다. "내가 말실수를 했군. 그럼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게. 워커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그내, 나도 알지.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 하지만, 자네가 생각해야 할 또 다른 원칙이 있네."
"원칙 때문이 아니야." 스토너가 말했다. "문제는 워커일세. 그 친구를 강의실에 풀어놓는 건 재앙이 될 거야.
——-중략

"고든, 데이브 매스터스가 엣날에 했던 말 기억하나?"
핀치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썹을 치떴다. "갑자기 데이브 매스터스 얘기는 왜?"
스토너는 맞은편 창밖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우리 셋이 함께 있을 때 그 친구가 뭐라고 했냐면… 대학이 소외된 자, 불구가 된 자들이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는 피난처라는 얘기를 했어. 하지만 그건 워커 같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지. 데이브라면 워커를….. 세상으로 보았을 걸세. 그러니까 그 친구를 허락할 수가 없어. 만약 우리가 허락한다면, 우리도 세상과 똑같이 비현실적이고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은 그 친구를 허락하지 않는 것뿐일세." - P235

"내 아주 솔직하게 말하겠네, 스토너." 로맥스가 말했다. 이제 분노가 잦아들어서 목소리가 차분하고 냉정했다. "내 생각에 자네는 교육자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닐세. 재능과 학식보다 편견이 앞서는 사람이라면 절대 안 되지. 내게 그럴 힘이 있다면 십중팔구 자네를 해고했을 걸세. 하지만 우리 둘 다 알다시피 내게는 그럴 힘이 없지. 우리는…. 자네는 종신교수 제도의 보호를 받고 있네. 나도 그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내가 위선을 떨 필요는 없네. 난 이제 무슨 일에서든 자네와 얽히는 건 사양일세. 절대로. 그렇지 않은 척 가식을 떨지도 않을 거야." - P248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의 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그의 생각엔 그런 것 같았다). 문제의 의문이 지금 자신이 직면한 가장 뻔한 원인, 즉 자신의 삶에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나이를 먹은 탓에, 그가 우연히 겪은 일들과 주변 상황이 강렬한 탓에, 자신이 그 일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탓에 그런 의문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는 보잘 것 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분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無)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 P252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이 그 누구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문득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세상이 자신을 향해, 캐서린을 향해, 두 사람이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작은 방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세상을 지켜보면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지어 캐서린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 P284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날 이 자리에 붙들어둔 것은 이디스도 아니고 심지어 그레이스도 아니오. 반드시 그레이스를 잃을 것이라는 사실도 아니지 당신이나 내가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이나 추문 때문도 아니오, 우리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도 아니고, 어쩌면 사랑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도 아니오. 그저 우리 자신이 파괴될 것이라는 생각, 우리의 일이 망가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
"알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도 세상의 일부인 거요. 그걸 알았어야 하는 건데.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조금 뒤로 물러나서 그렇지 않은 척할 수밖에 없었던 거요. 그래야 우리가….." - P303

윌리엄 스토너는 젊은 동료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 속 깊은 곳, 기억 밑에 고생과 굶주림과 인내와 고통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그가 분빌에서 농사를 지으며 보낸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무명의 존재로서 근면하고 금욕적으로 살다 간 선조들에게서 혈연을 통해 물려받은 것에 대한 지식이 항상 의식 근처에 머므르고 있었다. 선조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을 향해 무표정하고 단단하고 황량한 얼굴을 보여주자는 공통의 기준을 갖고 있었다. - P309

전쟁이 벌어진 몇 해 동안은 시간이 흐릿하게 한데 뭉쳐서 흘러갔다. 스토너는 견디기 힘든 맹렬한 폭풍 속으르 지나갈 때처럼 고개를 숙이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생각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데에만 고정시킨 채 그 시절을 겪어냈다. 하지만 단단한 인내심과 무신경함으로 하루를 보내고 몇 주를 보내면서도 그의 마음속은 격렬히 분열되어 있었다. 마음 한쪽은 매일 헛되이 스러지는 생명, 냉혹하게 마음과 정신을 강타하는 수많은 파괴와 죽음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며 움츠러들었다. 이번에도 교수진이 고갈되었고, 강의실에서 젊은 청년들이 사라졌으며, 남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고뇌가 가득했다. 그 얼굴들에서 그는 서서히 죽어가는 마음, 모질게 마모되어 사라지는 감정과 애정을 보았다.
하지만 또 다른 마음 한구석은 그가 움츠리며 피한 그 학살을 향해 강렬히 끌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도 몰랐던 폭력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그 일에 참여하기를 갈망했으며, 죽음의 맛과 쓰라린 파괴의 기쁨과 피의 느낌을 원했다. 그는 수치심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면서 또한 자신과 이 시대, 그리고 자신 같은 인간을 만들어낸 주변 상황에 쓰디 쓴 실망을 느꼈다. - P347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 P353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 P390

스토너의 삶은 행복하다. 우리들 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끝까지 애정을 잃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래서 작가 윌리엄스는 이 소설을 슬프다고 생각하는 독자의 반응에 오히려 놀랐다고 한다.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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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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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 지닌 양가성을 다룬 소설 <마더 나이트>를 읽고 있었다. "우리는 우기가 흉내 내는 그 사람이 되므로, 어떤 사람을 흉내 낼지 신중히 골라야 한다."라고 보니것은 썼다. - P24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 사이에 수많은 잡음이 끼어들었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다. 문득 발을 미끄러뜨리는 시커먼 바위가 솟아나 우리 둘을 아래로 넘어뜨린 거다. - P53

아버지를 용서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았다. "당장 토론토롤 가서 네 엉덩이를 걷어차 주마." 자기 자식이 보호를 필요로 했을 때, 자기 자식이 사랑을 필요로 했을 때, 그는 폭력을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미성년자인 내가 겁도 없이 성인 남자와 인터넷으로 교류했다는 이유로 노여워했다. 그 순간에 내게 돌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순간에 내게 안전과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영영 그런 것을 얻을 날은 없지 않을까? 아버지의 그 한마디 말은 그 남자의 위협보다, 그의 집착보다, 내 팔을 훑던 그의 손가락보다 내 몸속에 더욱 오래 머물렀다. - P89

"그럴 줄 알았어, 넌 동성애자잖아!"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렇게 반응했다.
마치 이런 노력을 애써 사소한 것으로 일축하고자 하는 듯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경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그 경험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권력을 여기저기에 과시하고 다니면서, 자신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었다. 나는 숙이고, 받아들이고, 그저 마음속에서 삭일 뿐이었다. - P109

내가 퀴어라는 것 때문에 벌을 받는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대놓고 학대하면서도 보호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뒤틀린 체계에서 잔혹성은 보편적이며 평범하게 보이고, 이를 해소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리어 이상해 보인다." 꼭 읽어 볼 만한 책인 세라 슐먼Sarah Schulman의 <끈끈한 유대감: 가족 내의 호모포비아와 그 결과>에 나오는 구절이다. - P163

로스엔젤레스의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거나 그들이 영영 읽지 않을 책을 사 주면 대체로 무시당하곤 했다. 자원 이용, 기후위기, 기후위기가 얼마나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지, 그것이 가장 취약한 이들부터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 대가는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클 것이라는 이야기, 얼마 남지 않은 사회의 붕괴와 그 속에서의 우리의 역할 같은 주제로 논의를 하려 들면 그들은 너무 드라마틱한 거 아니야? 하며 나를 향해 킥킥 웃었다.
대부분은 "너 오버하는 거 같아."라는 반응을 보였다.
"넌 레즈비언 히피야." 이렇게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면 난 답답했고,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으며, 관심과 공감을 얻지 못해 기운이 빠졌다. 부유함은 자격이 있다고 여기게 되는 마음을 부추키고, 자격을 얻으려면 무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독선적이며 타인을 재단하는 나의 성정은 로스엔젤레스에서 불필요한 소비를 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의 죄책감을 경감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 P178

성장과 확장을 멈추고 싶지 않았고, 멈추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더욱 성장하려고 애썼고, 독선을 버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언제나 배워야 할 게 더 있었다. - P188

좋아, 이번에는 말하는 거야. 이번만큼은 내 목소리를 내는 거야.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왜 저한테 그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연습했다. 이것도 연기인가?
그러나 당연하게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온 힘을 다할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계단 위아래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나면, 스니커즈를 채 벗기도 전에 등이 아프고, 불안해지고, 배 속에는 가스가 차고, 가슴 속에 벽돌을 품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본능적인 기부느 재단하는 눈길들. 그 기분은 여태 한 다짐을 낚아챈 뒤 린다가 크럼블에 넣는 피칸처럼 가루로 만들어버린다. 끈을 당겨 자동적인 반응만 되풀이하는 인형처럼, 진짜조차도 아니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나는 린다에게 사랑받고 아버지를 흡족하게 하려고 내가 소진될 때까지 온 힘을 다했다. 아버지가 내 편을 들어 주지 않는다면 분명 내가 문제일 테니까, 또, 언젠가는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안전한 기분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나는 집에 발길을 끊게 됐다. - P223

세상은 우리가 트랜스가 아니라 정신병자라고 말한다.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내 신체를 훼손했다고, 나는 영영 여성일 것이라고 말하며 내 몸을 나치의 실험에 비유한다. 병에 시달리는 것은 트랜스가 아니라 이런 혐오를 길러내는 사회다. 배우이자 작가 젠 리처즈Jen Richards는 이렇게 표현한 적 있다.

10년 전에 트랜지션을 한 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건강하며, 친구와 가족들과의 관계도 좋아졌고, 더 나은, 더 참여하는 시민으로 살고, 그뿐 아니라 더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다가…… 모르는 사람들이 내 선택을 병적인 것이라 말하는 모습을 보면 초현실적인 기분이 든다. 내가 트랜스라는 걸 생각할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것은 나를 사회 정의에 더욱 공감하고 참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것 외에는 내 현재와 거의 관련이 없는, 내 과거에 관한 사실일 뿐이다. 어떻게 그것이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가? 어째서 나의 평화에 독설, 폭력, 보호가 필요한가? - P289

이 푸른색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색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 된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속에 자리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의 여지 없이. - P327

자신의 존재가 끊임없이 논쟁과 부정의 대상이 되는 일은 우리를 고갈시키고 만다. - P385

자신의 진실을 묻고, 확인하고, 자신에게 그리고 나아가 세상에 말하는 일이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일임을 그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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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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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 있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직접적인 환경에서 작동하는 가치체계, 우리가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우리가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 -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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