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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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프랑스 식민 지배 하의 알제리 원주민들이 자신의 실제 모습을 부정하고 지배자들과 동일시하는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 자신이 검다는 것을 애써 부인하면서 백인의 정체성을 취하는 것이다. 자신이 배치되어 있는 사회적 위치를 받아들이기 괴로운 상황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허위의식이다. 그러한 환상은 피차별 집단에게서 종종 나타난다. 그 결과 자신들이 당하는 억압의 구조를 보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을 쏜다. 그의 다른 책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주민이나 경찰은 언제나 원주민에게 매질을 하고 모욕을 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원주민이 품속의 칼을 빼는 것은 다른 원주민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적대적인 행동을 하거나 공격적인 눈길을 보냈을 경우다. 원주민에게 최후의 수단은 형제를 상대로 자신의 인격을 방어하는 것이다..."
그런 행위를 통해서 자기가 당면한 현실이나 일상의 경험에 눈을 닫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문제는 그러는 동안 부조리한 구조와 억압은 더욱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심각한 결과는 동일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타인을 통해서 자기의 객관적인 모습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콤플렉스의 핵심 작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러한 개별화다. 저마다 골방에 갇혀 지내면서 마음을 열지 않는다. 힘을 모아서 세상의 잘못된 점들을 바꿔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요원해진다. 삶의 힘을 키워내는 문화도 박약해진다. 예를 들어 어느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축제를 하지 않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원래 공고는 그런 거 안 해요. 그 짓도 소속감이 있어야 하죠. 학교 축제 안 한지도 2년 됐거든요."
앞서 인용한 글에서 로버트 풀러가 말한 노바디nobody(사회적으로 별 볼 일 없게 여겨지는 사람)의 특성을 짚어내고 있다. 수치심 때문에 자아를 숨기고 더 나아가서 상대방을 학대하기까지 한다. 남에게서 받은 경멸을, 남을 학대함으로써 보상받으려 한다. 유명인에 대한 험담과 악플이 극심해지는 것은 사회 전반에 열패감이 만연해 있다는 반등일 수 있다. 누군가의 약점을 들춰냄으로써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젖어든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착각이며, 그럴수록 점점 무력해지고 모멸감에 더욱 취약해진다.
부당한 일을 지속적으로 겪는 사람들이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면 상황을 직면할 용기가 생겨난다.
- P243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자기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무지하다. 현실의 조건에 발이 묶여 있거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자기 안에 있는 열정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이나 사회가 부여한 편견에 의해서 일정한 틀 안에 자신을 가둬두기도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그 굴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재능을 상대방의 눈으로 발견하게 되고, 삶을 나누는 가운데 새로운 꿈의 씨앗이 뿌려진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싹을 틔운다.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두 사람만의 관계로는 한계가 많다. 다양한 시너지가 일어나고 변화가 안정적으로 지속되려면, 선에서 면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적인 만남에서 공적인 세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인간은 사사로운 삶의 공간에서 친밀감과 평온함을 누리지만, 그것을 넘어선 공공의 세계에서 자기의 존재 가능성을 확대한다. 낯선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공동의 경험과 공적인 서사(내러티브)를 창출하면서 더욱 고양된 자아를 만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 <섬>)라는 시구처럼 너와 나를 넘어선 세계를 지향할 때 내면의 부피가 커질 수 있다. 그 섬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아를 조망할 수 있다. 일인칭과 이인칭의 배타적인 긴장에서 풀려나 삼인칭의 시선으로 각자를 되돌아보는 여유가 생긴다. - P255

1937년 네루다는 칠레의 산티아고 중앙시장 짐꾼들 앞에서 연설 대신 시집 한 권을 낭송했다. 그때 지도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철저하게 잊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는 이렇게 크게 감동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주저앉아 울었고 주변 사람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관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억지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내가 못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수치스럽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뒷담화를 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는 신뢰의 공동체가 절실하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의 결점에 너그러우면서 서로를 온전한 인격체로 승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 P258

언제부터인가 힐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치유는 단순히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음의 새살이 돋아나기 위해서는 내면의 어떤 힘이 약동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소망과 가능성을 응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을 꺼내어 존재의 날개로 펼칠 때 기꺼이 갈채를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우정과 환대가 곧 힐링이 된다. 살아 있음을 축복하면서 존재를 중심으로 맞아들이는 만남에서 우리의 생애는 고귀해진다. 서로를 격려하면서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관계에서만 인간적 존엄을 누릴 수 있다. 샘 킨 Sam Keen 이라는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열린 마음과 가슴으로 듣는 신뢰할 만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을 스스로 들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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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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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위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틀만이라 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비누가 없어도 얼굴을 씻고 윗도리로 몸을 말려야 한다. 우리가 신발을 검게 칠해야 하는 것은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과 청결함 때문이다. 우리는 나막신을 질질 끌지 말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걸어야 한다. 그것은 프로이센의 규율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청결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수용소에 완전히 예속되지 않겠다, 인간임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환경에 굴하지 않고 몸을 씻는 것은 살아서 나가겠다는 의지를 선언하는 신성한 의례가 아니었을까. 죽을 때 죽더라도 인간다움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행위는, 사람이 동물과 구별되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극한 상황에서도 노예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그 몸부림은, 매일 샤워를 할 수 있고 온갖 화장품으로 외모를 가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당신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이냐고. 타인에게 당당하고 스스로의 위웜을 지니고 있냐고. 몸을 아끼면서 그 안에 얼을 담고 있느냐고.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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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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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 실업자를 위해 마련한 일자리가 종사자들의 자존감을 깎는 경우도 있다. 행정 문서 보관함의 서류 정리를 맡았던 나의 후배는 관청이 억지로 만든 일을 한다고 느꼈다. 돈 몇 푼 받기 위해 무의미한 일을 하루 종일 하고 있자니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자원봉사 점수를 따러 곳곳에 파견되는 청소년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준비가 제대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보니 하나 마나 한 일을 시키게 되고, 누구도 그 노고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은 꿰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시간만 때우게 되는데, 그런 푸대접 속에서 스스로를 비하하기 쉽다.
공공일자리든 자원봉사든 참여하는 사람들이 환대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무원들은 자신이 수립하고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느낄지 충분하게 상상해야 한다. 좋은 취지로 기획된 정책이 혜택을 주기는커녕 열등감을 심어줄 수 있다. 그렇듯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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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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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감수성의 문제다. 상대방에게 입힌 손해의 명백한 증거가 있는 명예훼손죄와 달리, 모욕죄에 해당하는 언사는 그냥 기분이 좀 상했다는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둔감하기 쉽다. 성희롱도 예전엔 그러했다고 볼 수 있다. 성폭행처럼 눈으로 드러나는 해를 입힌 것이 아니기에 씁쓸한 웃음 한번 짓고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렇게 흘려보낸다고 해도 나쁜 기운은 침전물처럼 쌓인다. 그런 말들이 반복되면서 자존감을 떨어지고 남녀관계는 피상적으로 겉돈다.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고 농락의 대상으로 삼는 마음의 습관이 굳어지다 보면, 성폭행 등에도 둔감해진다.
그러한 정황을 모욕 일반에 확대 적용해볼 수 있겠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습관적으로 짓는 표정이나 눈빛에 대해 민감해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담론을 만들어가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역지사지로는 부족하고 역지감지,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끼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대학에서 청소를 하는 어느 아주머니가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동승한 교수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해서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유심히 관찰해보니, 대학의 청소 아주머니들은 교수는 물론 학생들과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듯했다.
그런 괴로움은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블랙 라이크 미’라는 책을 쓴 존 하워드 그리핀은 차별받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1959년에 특별한 피부과 시술을 받아 흑인의 모습을 하고 7개월 동안 미국을 횡단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백인으로서 당연하게 영위하던 일상사들에 생각지도 않은 장애물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매일 드나들던 식당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고 버스 휴게소의 화장실도 이용하지 못했다. 평소에 밝은 인사를 건네던 가게 점원은 굳은 얼굴로 자기를 대했다. 친절하게 대하는 백인이 있기는 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흑인을 멸시하는 태도가 금방 드러났다. 그는 "내가 가진 개인의 자질을 보고 나를 판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내 피부색을 보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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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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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양에서 감정노동자로 일해 보았는데, 그들의 노동문화는 친절하되 결정적인 선을 넘으면 가차 없는 반격을 한다. 무리한 요구를 하며 무례하게 구는 손님이 있었는데, 지배인이 나서더니 식당 문을 열어주고 당장 나가라고 요구했다. 어기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엄포도 놓았다. 실제 경찰을 부른 적도 있었다. 이때 놀라웠던 건 업주와 다른 손님들의 태도였다. 누구도 그 지배인을 비난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감정은 팔지만 자존심은 절대 팔지 않는다는 원칙이 존중받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권과 정의의 문제다. 그것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향상되어야 하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변화를 매개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감정노동자들이 자신의 인격을 방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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