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웅 안중근 -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않는 세계를 꿈꾸다
전우용 지음 / 한길사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세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은 단 한 번이다. 그렇기에 삶의 기로에서 항상 신중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의 선택지가 삶의 끈을 부여잡는 것일 것이다. 죽을 수도 있는 병이 들었든, 생활이 곤궁하든 살려 달라!”고 하곤 한다.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생각하고 방법을 강구하며 살아갈 길을 모색하고 그 길을 간다.


그러나 안중근은 죽음을 택하였다.


누구나 안중근을 안다.

190910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제에 의한 재판을 당하고 사형언도를 받은 후 1910336일 순국하였다.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고 유묵 휘호들을 남겼다. 현재까지 그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일제의 앞잡이 이토를 처단한 민족의 영웅이며 의사(義士)이며 독립운동가이다. 2010년 안중근 서거 100주년을 전후하여 그에 대한 출판물,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예술작품이 나왔다.

아마도 대다수가 이 정도는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린 안중근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가?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여야 했는가.

무슨 이유로 대한제국사람이 중국 뤼순의 감옥에 갇히고일제의 재판을 받아야 했는가.

왜 그는 재판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지 않고사형을 받아들였을까.

그에 대한 평가와 연구는 어떠하고왜 이토록 안중근에 열광하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듯싶다. 안중근의 자서전인 안응칠역사를 비롯하여 그에 대한 전기 서적, 후대에 나온 안중근을 평한 도서 등 어느 정도 이상의 다양한 책들을 탐독하든지 안중근에 대한 연구내용을 검색하든지 각종 언론기사와 증인들의 증언을 수집하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같다. 이 책 민족의 영웅 안중근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포함하여 안중근에 관한 그 어떤 궁금증에 대해서도 모든 답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저자 전우용 님은 이 책을 쓰면서 교양서와 학술서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지만, 이도저도 아닌 책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너그러운 양해를 바란다.”(p10)며 겸손의 말을 하였으나, 이 책은 안중근의 저서인 안응칠역사, 동양평화론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들의 저술, 언론기사, 사진자료, 연구자료, 역사적 고증 내용이나 증언 등이 저자의 손을 거쳐 수집되고 분석, 분류되어 얻어진 벽돌들을 가지고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결과물이라 하겠다. 그만큼 각고의 노력이 2,000매 가까운 원고 뭉치 속에 배어들어, 우리는 그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안중근을 원거리, 중거리, 근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고 마치 3차원 입체 모델링이 된 듯 안중근의 겉모습은 물론 속속들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전우용 님은 19세기 말 이 땅에 전래된 근대적 개념어들에 관해 연구했는데, 근대적 개념어들을 사용하여 시대를 뛰어넘는 선구적 사상을 정리한 사람이 안중근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p9)면서, 안중근이 동양평화체제 구상을 세우는 데 사용한 개념과 그의 사상 하나하나를 세밀히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 책의 2를 먼저 썼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의 생각과 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기에 안중근의 일대기를 가급적 충실히 정리해보고자 했으며 그 내용이 1에 해당하고, 마지막으로 현 시대 안중근이 갖는 상징적 위상과 그렇게 된 이유, 과정에 대한 답을 찾고자 3를 덧붙였다고 하였다.(p9~10)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고스란히 이 책의 목차를 이루었다.

1<안중근의 삶>

2<안중근의 생각>

3<안중근에 관한 생각>

이 목차에 이 책의 정체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이 목차로 인하여 저자는 교양서와 학술서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다고 하였는데 - 전기, 평전, 수필, 근대사서 등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긴 교양서와 학술서 간의 경계는 물론, 백과사전의 경계까지 허무는 새로운 형태의 저술 장르 탄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안중근의 삶>, 말 그대로 안중근의 삶을 조명하였다. 이 부분을 읽기 전에는 제1부가 안중근이 뤼순감옥에서 저술한 자서전 안응칠역사를 소개하고 그 내용을 선보이나보다 지레짐작하였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일반인이 한 역사적 인물을 접할 수 있는 흔한 방법은, ‘위인전과 같은 책을 읽는 것이다. 특히 어릴 때나 학창시절에 주로 읽게 되므로 읽기 편하게 각색되어 있고 위인을 통해 교훈이 될 만한 점을 부각시킨다.

이 책의 제1부는, ‘안중근의 삶을 각색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저자가 수집한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을 기술하였는데, 찾아낸 자료가 각색되어 있다면 바로잡기를 하였고, 어떤 상황에 대해 여러 자료(혹은 증언)가 차이가 나면 비교분석한 바를 객관화 시켜서 보여주었다. 즉 저자는 사실을 뽑아내고 사실을 보충하거나 사실대로 바로잡아 안중근의 삶을 보다 극명화시켰다.

예를 들어, 안응칠역사에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해 놓았고(p99~108) 안중근과 친분이 있는 안창호, 이강, 이범윤, 최재형, 이범진 등 독립운동 동지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기술(p119~120)해 놓은 부분이 있다. 저자는 <안중근 기록의 의문점들>이라는 제목 하에 저격까지의 과정 중 의문점들을 조목조목 바로잡았고 왜 동지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는지를 합리적으로 보충설명 하고 있다.(p108~126)



또한 저자는 (안중근)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은 사사로운 원한이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의 대표로서 정의를 실천했다. 그에게는 개인의 삶이 곧 민족의 역사이자 인류의 역사였다.”(p31)와 같은 저자가 생각하는 바를 책 곳곳에 실었다. , 일종의 평전의 성격도 가미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근대사를 전공한 국사학 박사로서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객원교수,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역임한 저자의 학문적 관점에서 바라본 안중근에 대한 평가를 곁들여 보는 재미도 있다.


1부를 통해, 안중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게 된 이유와 그러기까지의 과정을, 중국 땅에서 일제의 재판을 받아야 했던 시대상을, 그가 사형을 받아들인 마음을 소상히 알 수 있다.



2<안중근의 생각>, 안중근이 남긴 글을 통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안중근이 남긴 글은 그리 많지 않다. 뤼순감옥에서 쓴 안응칠역사동양평화론, 연해주 망명 중에 쓴 해조신문기고문, 200여 점에 달하는 휘호가 있다. 그리고 일본 검찰관과 논쟁한 내용도 문서로 남아 있다. 많지 않은 글과 기록으로나마 그가 죽기 전에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그가 자기 목숨을 버려 이루고자 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p223)



이 책의 제2부를 먼저 썼다.”(p9)라고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2부를 읽다보면 저자가 이 부분을 쓸 때 상당히 혼신의 힘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 자신이 안중근의 사상 기반에 대해 너무도 궁금해 했던 것이다.

(안중근)는 정의, 인도, 민족, 평화, 민권, 독립, 만국공법 등 여러 개념어를 벽돌로 사용하여 동양평화론이라는 웅장한 건물을 지으려 했다. ... 그는 이 벽돌들을 어디에서 구했을까?”(p224~225)

그리고 저자는 결심하였다.

(안중근)는 시대를 앞서는 생각을 키웠고, 그 생각을 확신했다. 죽음을 앞두고 모든 사심을 버렸기에, 그의 생각은 ... 투명한 결정체가 되었다. 결정체를 통해 그의 생각을 만든 원소(元素)들을 추적해본다.”(p226)



저자는 안중근 집안의 가풍’, ‘부모의 영향, ‘유교기본 소양, ‘천주교교리 학습, ‘신서적신문읽기, ‘들과 사귀기 등을 통해 안중근의 사상 기반을 파악하였고, 안중근이 의거 전날 밤에 지은 한시 장부가에 담긴 굳은 신념과 동양평화론에 담긴 앞선 생각들, 죽음을 마주하고 쓴 휘호들에 담긴 그의 지식과 이상 등을 살펴보았다.

특히 동양평화론을 구성하는 개념어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그 유래, 분석 내용 등을 기술한 <동양평화론을 구성한 개념들>이란 부분은, 저자의 근대적 개념어연구 성과와 안중근의 사상을 잘 아울러 기술하여 저자가 이 부분에 꽤 힘을 실은 느낌이 역력하다.



3<안중근에 대한 생각>, 1909년 안중근 의사 의거 직후부터 현 시대까지 무려 113년에 걸쳐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 , 입을 통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안중근에 대한 평가와 반응을 다루고 있다. 그런 만큼 제3부는 이 책에서 상당한 지면이 할애되어 있고, 저자가 근현대를 헤집어 총망라하다시피 수집한 수많은 객관적 자료들과 역사적 사료들이 제3부를 굳건하게 지탱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도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안중근에 대한 반응이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도 무척 뜨겁고 다양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시기별로 안중근에 대한 예우, 평가가 각 시대상과 결합되어 다사다난했음을 처음 알았고, 일제와 한국 귀족 친일세력들의 부정적 반응도 처음 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안중근의 상징성은 오래도록 유지 확산되어 그 명성이 드높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 안중근은 한국인들이 존경하는 역사상의 위인앞자리를 점한다. 안중근은 이순신과 더불어 특히 일본을 향해 강력하게 발산하는 한국 민족주의의 대표 상징이다.”(p395)

안중근은 북한에서도 민족 영웅이다. 그런 점에서 안중근은 민족 통합의 상징이다.”(p395)

안중근은 한국 민족운동과 민족주의의 모범이 되었다. 이토를 처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목숨보다 민족의 자존을 더 중하게 여겼기 때문이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기 때문이다.”(p427~428)

정권의 통제력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상당히 약해졌다.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 평화와 공존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산했다. 국내 정세와 국제관계 모두가 바뀐 상황에서, 반일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표상이던 안중근을 평화의 아이콘으로 재인식하기 시작했다.”(p530)

안중근은 한국 국민 통합의 상징인 동시에 동아시아 지역 통합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통합의 상징이다.”(p396)


저자는 안중근을 통합의 상징이라고 해놓고는, ‘분열을 내포한 통합의 상징이라고 표현하였다. 그에 대한 설명은 제3부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책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읽는 내내, 그 내용의 객관성 및 합리성, 이색적인 구성방식, 내용과 구성을 밑 받치고 있는 자료의 딴딴함 등으로 인해 읽는 독자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오는 매력이 느껴졌다.


앞서 새로운 형태의 저술 장르 탄생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소설이나 영화 등의 작품을 팬들이 재창작한 작품을 일컫는 팬 픽션(Fan Fiction)’과 사실에 근거하여 쓴 작품을 가리키는 논픽션(Nonfiction)’을 조합함으로써, 민족의 영웅 안중근과 같은 스타일의 작품 장르를 팬 논픽션(Fan Nonfiction)’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명명하는 것은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읽은 독자라면, “이제는 안중근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091026일이 안중근 의사 의거일이란 것을 안다.

191033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일임을 우린 안다.

그리고 올해 2022년은 의거 113주기이자 순국 112주기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짠해 왔다. 100여 년 전의 한 인물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대한의 백성들에게 하나 됨의 촛불과도 같은 심상(心象)을 오래도록 남겨주고 있다. 분명 안중근의 혼은 현세에 깃들어 있고, 그 살아있는 혼이 지금껏 우리에게 뭔가를 얘기하는 것이리라.

저자의 각고의 노력으로 탄생한 이 책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통해, 우리는 제대로 안중근을 되새길 수 있고 앞으로도 민족, 애국, 평화, 통합, 그리고 영웅으로 그를 기억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들에게는 아들의 속도가 있습니다 - 아들에게는 왜 논리도, 큰소리도 안 통할까?
정현숙 지음 / 월요일의꿈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아들 양육에 도움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엄마의 마음’이 많이 느껴진다. 더불어 아이의 양육에 ‘아빠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점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들에게는 아들의 속도가 있습니다 - 아들에게는 왜 논리도, 큰소리도 안 통할까?
정현숙 지음 / 월요일의꿈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표지에 천진난만하게 웃는 남자아이가 눈에 띈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 아들이 클 때 모습이 떠올랐다. 아장아장 걸을 때,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며 놀 때, 해수욕장 해변에서 모래놀이 할 때, 외식 나가서 맛있게 먹던 모습, 생일 때 기억, 유치원과 초등학교 입학하고 졸업하던 때... 여러 추억어린 장면들이 머릿속에 회전목마 일렁이듯 지나쳐갔다.

즐거웠던 추억거리밖에 없었나? 아. 글을 일찍 깨우쳤던 것, 바늘이 돌아가는 시계를 보고 처음으로 시간을 알아맞힌 때... 나를 놀라게 했던 일도 있었구나.

그런데 나에게, 내 아들과 싸우고 아들 때문에 지치고 힘겨웠던 적은 없었던가?



이 책의 저자인 정현숙 님은 사내 아이의 ‘육아’가 힘든 과정이었다고 말한다.(p5)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조곤조곤 논리 공격을 해보았지만 먹히지 않아 단전에 힘을 실어 ‘사자후’를 내지르곤 했으나 이때마다 지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 아들에게는 논리도, 큰소리도 안 통할까?"


저자의 직업은 ‘사회복지사’이다. 아들과의 지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매일 고민하던 차에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배우고 실천해 왔던 기술’을 아들을 키우는 데 적용해 봤고, 그 덕에 아들은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고 여전히 달라지고 있으며, 아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p5)

저자의 아들은 사회성 결핍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발이 더우면 실내화를 벗고 다니고, 관심 없으면 대답도 안 했으며 단체활동에도 잘 참여를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 아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거라 단정하곤 했지만, 저자는 ‘그냥 성향이 그런 애’라고 하였다.

사회복지 실천의 기본은 ‘상대를 믿어 주는 것’이다. 이렇듯 아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믿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의 속도에 맞추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규칙을 알려주는 것이다.(p6~7)


저자는 ‘사회복지 실천’이 ‘자녀 양육’과 통하는 부분이 많음을 깨달았고, 이 책을 통해 아들을 키우며 겪었던 것을 중심으로 아들 양육 시 필요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목차를 보면 책 구성이 섹션별로 잘 정돈되어 있고 독자의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논리정연하며 조근조근 잘 설명이 되어 있다. 아마도 저자의 그러한 성향이 책 구성에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제1장은 아들의 특징이, 제2장과 제3장은 아들의 감성지수를 높이고 아들과 소통을 잘 하는 교육법이 소개되어 있다. 제4장은 아들에게 잘 맞는 훈육의 기술, 제5장은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교육법, 제6장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가르쳐야 할 교육법이 소개되어 있다.



아들이 ‘아들’일 수밖에 없는 선천적인 생리학적 이유 2가지가 먼저 나온다.

우선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다. 아들의 ‘남성성’은 태생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이란 호르몬에 지배되고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아들의 뇌에 영향을 미쳐 공격성, 경쟁심을 지니고 모험적 행동을 하게 한다. 아들의 이상 행동은 철저하게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이다.(p23)

다음으로 뇌 부위의 발달 차이이다. 딸은 기억, 정서와 관련있는 ‘해마’가 크고, 감정과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백질이 많을뿐더러 자라면서 감정 담당 부위가 대뇌피질 전체로 넓어진다. 반면에 아들은 ‘편도’라고 하는 뇌의 작은 부위에서 감정을 담당해서 ‘감정’과 관련된 그 어떤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 그래서 일할 때 오로지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다. 감정 처리 관련하여 반항, 방어, 충동적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아들이 아들일 수밖에 없는’ 아들의 특징을 머리로 이해한 다음, 제2장에서 ‘아들의 감성지수를 높이는 법’을 활용토록 한다. 이렇게 감성지수가 올라간 아들과 제3장을 통해 ‘소통’으로 이어지고, 이후 ‘훈육’과 ‘마음 단단하게 하기’ 등으로 아들과 교감하도록, 이 책은 독자를 도울 것이다.


저자의 아이 감정 반응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아이는 감정 반응이 커서, 잘 놀다가도 감정이 상하면 매우 크게 반응하고 화를 냈고, 작은 일에도 흥분하고 그 반응 정도가 거셌다고 한다.(p62) 이 부분은 아들 키우는 입장에서 실제 나도 경험해본 적이 있어서 무척 공감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감정 조절법’, ‘감정 이해하기’, ‘아들의 상황을 공감하고 신뢰하는 공감능력 키우기’ 등을 제시하고 있다.

아들과 이야기하는 게 답답한 독자라면, ‘아들과 소통하기’, ‘칭찬하는 법’, ‘아들의 말을 경청 잘함으로써 의사소통하기’, ‘아들용 잔소리 원칙’ 등 책 속에 제시된 주요 내용들이 무척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제4장 아들에게 맞는 훈육의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아들과의 소통도 소통이지만, 아들의 잘못된 방식과 행동거지, 마음상태 등을 꾸짖고 훈육해야 할 땐 너무도 힘이 들었다. 잘못된 가치관을 형성하여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기에, 이를 방치할 수도 없다.

이와 반대로 철저히 바로잡고자 거세고 단호하게 훈육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훈육은 의미가 없음을 다들 ‘체감’하여 알 것이다. 직장에 다니는 어른이라면 업무상 오류나 잘못이 있을 때 직장상사로부터 인격 모욕성 발언과 질타를 당해봤을 것이고, 추후에 그들이 해주는 “다 당신 잘 되라고 하는 말이었다.”라는 말에 일말의 공감도 할 수 없다. 특히 성장하는 아이이기에 상처로 남을 수도 있으므로, ‘비난어린 단호한 훈육은 좋지 않다’고 나 스스로 마음 속에 새겨두고 있었다.

이에, 저자는 ‘아들에게 효과적인 꾸짖기 방법’, ‘아들의 행동을 고치기 위한 효과적인 반복 말하기 방법’, ‘아들을 움직이게 하는 논리적인 훈육법’ 등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아들 때문에 지치고 힘겨웠던 적이 있었다. 아들과의 소통 부분은 그나마 무난한 편이었지만, 아이를 훈육해야 했을 때가 심적으로 힘겨웠다.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다. 아들 미취학 시기였다. 어린 아들이 엄마에게 큰소리로 반항 비슷한 행태를 부린 적이 있었다.(지금 이 책을 읽어서 그 이유를 알겠다. 그러나 그 당시엔 몰랐다. 그저 어른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아이를 불러 세우고 이유를 묻고 잘잘못을 가리고 꾸짖었다. 나름 ‘왜 잘못된 행동인지’를 잘 이해되도록 얘기한다고 했다. 그러나 혼나고 있는 ‘작은 아이’ 입장에서 혼내고 있는 ‘거대한 어른’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싶다. 짐작컨대 “무서운 괴물”로 보였을지 모른다.



현세에서 다들 ‘한 번 살아가는 삶’이기에, 모든 것이 ‘첫경험’이다. 아이는 ‘아이 시기’를 처음 겪고 있는 상황에서 ‘왜 자기가 그렇게 감정 반응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깨닫지도 설명하지도 못할 것이다. 부모도 자라나는 아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부모된 입장에서, 아이의 탄생과 육아 등 그 모든 것들이 ‘첫경험’일 뿐이다.


아이는 아이가 접하는 모든 ‘첫경험’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여린 존재이다. 다행히 부모는 ‘학습’이 익숙한 인격체이다. 어르신의 경험 및 노하우를 얻거나 전문가의 지적 산물을 구함으로써 학습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으며 실천해 나갈 수 있다.



이젠 핵가족 시대이고 맞벌이 부모도 많다보니, ‘전문가’에 의존해야 하는 비중이 높을 것이다. 나도 아들을 키우면서 책에 의존한 적이 있는데, 육아 관련 전문도서가 현학적, 학구적 내용이 다분히 있어서 부드럽게 읽어내기가 쉽진 않았다.


그런데 이 책 <아들에게는 아들의 속도가 있습니다>는 좀 달랐다.

‘아들’의 특성과 육아 관련 배경지식이 되는 전문적 내용과, ‘사회복지사’로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대상자들을 대하면서 알게 된 실천 노하우를 ‘엄마’로서 실제 아들을 키우는 양육 환경에 접목한 과정과 그 성과가 녹아들어 있기에, 왠지 ‘공감’이 되고 ‘신뢰감’이 느껴지며 무엇보다도 전문도서의 느낌인데 기존의 전문도서들 같은 현학적인 냄새가 나지 않아서 매우 읽어내기가 쉽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제5장과 제6장은 아들이 좀 더 커가면서 10대 사춘기, 심지어 20대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 때까지도 염두에 두고 작성된 섹션으로, ‘엄마의 마음’이 담뿍 담겨져 있다. 이 시기를 준비하거나 마침 시기에 놓여있는 아들을 두었다면 읽어보면 좋을 내용들이다.



추가적으로 하나 더 남기고 싶은 책 속 문구가 있다.


“아들이 어른 남자와 강한 유대를 갖게 하고 세상을 배워나가게 해야 한다. 아들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는 문제 해결을 도와야 한다. 이들은 존경하는 남자의 인정을 받으면 의지가 높아진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은 어른 남자의 역할 모델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면 ‘아빠’의 역할이 중요해진다.”(p31~32)


이 책은 엄마가 아들을 대하면서 쓴 책이다 보니 왠지 ‘엄마의 마음’이 많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이의 양육에 ‘아빠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점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터네이트 (일반판) - Alternate
가토 시게아키 지음, 김현화 옮김, 반지수 일러스트 / ㈜소미미디어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춘 드라마 한 편을 본 것 같다”는 것이다. 그냥 본 게 아니라, “몰입해서 보다보니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터네이트 (일반판) - Alternate
가토 시게아키 지음, 김현화 옮김, 반지수 일러스트 / ㈜소미미디어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얼터네이트>는 엔메이학원고등학교의 3학년 ‘니미 이루루’와 1학년 ‘반 나즈’, 그리고 오사카에서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한 ‘다라오카 나오시’ 이렇게 3명의 10대가 주인공인 청춘들의 이야기이다.

총 24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3명의 주인공 이야기가 매 장마다 이루루, 나즈, 나오시 순으로 번갈아가며 펼쳐지게 구성되어 있다.



‘니미 이루루’는 학교의 요리 동아리 부장을 맡고 있고, 원예부장인 ‘다이키’와 친구다. 이루루는 고등학생 대상의 요리경연대회인 ‘원포션’에 도전한다. 부모님이 일식집 ‘니이미’를 운영하기에 이루루가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을 거라고들 남들은 추측하지만, 이루루의 아빠는 이루루가 가게에 오는 걸 그다지 흡족하게 여기지 않았고 더군다나 이루루에게 응원은커녕 “요리사가 되지 마”라고 틈이 날 때면 말했다.(p246) 이루루는 아주 어릴 때부터 요리 프로그램을 좋아했고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는 즐거움에 눈을 떴으며, 성장하면서 요리 지식은 독학으로 익히면서 요리 실력을 늘려갔다.

직전년도에 1년 선배이자 당시 요리 동아리 부장인 ‘다가 미오’와 파트너로 ‘원포션’에 출전하여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에이세이 제1고등학교의 ‘미우라 에이지’의 팀에게 져서 준우승을 했다. 이제 다시금 ‘원포션’에 재도전을 하기 위해 관계가 소원했지만 요리 테마 스토리가 인상적이었던 ‘무화과초밥’ 레시피를 제안한 ‘야마기리 에미쿠’와 새로운 파트너로서 호흡을 맞추며 준비를 하는 와중에, 이루루와 미우라 간의 교제, ‘원포션’ 본선에서의 여러 갈등과 고민, 극복 과정을 거치게 된다.



‘반 나즈’는 ‘얼터네이트’ 앱의 신봉자로, 친구인 ‘시오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앱의 사용법 등에 대한 조언을 구할 정도이다. 그러나 나즈는 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잘 사용하지만, 이제껏 앱을 통해 그 누군가를 만나본 적은 없다. 앱을 통해 조건에 맞는 상대방과의 매칭률이 높아봐야 60퍼센트라는데, 나즈는 80퍼센트 이상인 사람을 찾게 되면 그때는 만나보려고 한다고 말했다.(p43) 즉 ‘운명적인 만남’을 고대하는 것으로, 결국 앱의 새로운 서비스인 유전자 레벨 궁합을 매칭한다는 ‘진 매치’서비스를 통해 92.3퍼센트라는 거짓말 같은 매칭율의 상대방 ‘가쓰라다 무우’를 만나보게 된다. 그러나 나즈가 생각해왔던 ‘운명’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상대의 모습, 태도 등에 실망감을 느끼게 되고, 고민과 갈등을 하게 된다.



‘다라오카 나오시’는 나오시의 아빠가 원양어선을 타고 있어 오래 집을 비우다보니 할머니의 보호 아래 남동생과 살고 있다. 나오시가 어릴 때 엄마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치료비 등으로 빚까지 졌을 정도로 가난한 환경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는 음악 밴드를 만들고 싶은 꿈을 꾸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경제적인 문제로 알바를 계속하고 있다. 나오시는 드럼을 친다. 초등학생 시절 우연히 드럼소리에 이끌려 ‘보니토’라는 바에 들렀다가 ‘마사오’ 아저씨에게서 드럼을 배웠고 초등 3학년 때 같은 반이 된 ‘안베 유타카’가 기타를 친다고 하여 함께 합주를 하며 실력을 다졌다. 그러나 유타카가 5학년 때 전학을 갔고 마사오 아저씨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시점에, 나오시는 오사카에서 도쿄로 유타카를 만나러 갔다. 그 이후 집을 나와 여름동안 미우라 반도의 료칸에서 알바를 하다가 알바 동료인 ‘겐이치’와 도쿄의 뮤지션 한정 셰어하우스에 묵으며 드럼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꾸던 중 ‘사에야마 미우’와 알게 되고, 여러 상황과 사건에 직면하면서 미우 및 유타카와 오해, 갈등을 겪게 된다.



이들의 관계 속에 ‘얼터네이트’라는 앱이 한 역할을 한다.

얼터네이트는, 고등학교 한정의 SNS 앱으로, 서로가 플로우를 보내서 커넥트되면 메시지 등의 직접적인 대화가 가능해지고, 유저가 지정한 조건에 맞춰 수많은 고등학생 중에서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추천해주는 중개인 역할도 한다.(p30~31)


이루루는 얼터네이트 앱을 깔긴 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포션’ 결선 이후 이루루의 팬이 늘면서 얼터네이트를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게 된다.

나즈는 얼터네이트를 ‘운명적인 만남’의 수단으로 신봉하다가 앱을 통한 2차례의 매칭 만남 이후 이렇게 결심한다. “난 (운명적인 만남을 위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싫어!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하지 않을 거야! 더 더 나를 믿을 거야! 나 자신을 더 좋아할 거야! 그러기 위해서 난 나를 성장시킬 거야!”(p468) 이후 나즈는 앱에 의존하지 않기로 했다.

나오시는 고교 중퇴로 인해 얼터네이트 앱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상실되어 앱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할 수 없게 되었고, 이 때문에 유타카를 만나기 위해 도쿄까지 움직여 와야 했다. 결국 나오시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얼터네이트를 부활시켰고, 이를 통해 멤버를 커넥트하면서 밴드의 꿈을 이루기 위한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분명 독서를 하는데 왠지 머릿속에 영화 스크린이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 ‘가토 시게아키’는 오늘날 일본 문학계를 석권하고 청춘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작가로, 그의 필력은 이미 수많은 히트작과 수상 이력, 작품의 영상화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도 감을 잡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에서 돋보이는 점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갈한 흐름이 돋보이는 구성력이다.

주인공이 3명이나 되지만, 서로의 이야기가 크게 간섭되거나 방해됨 없이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이 잘 읽혔다.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대로 이야기가 서술되지만, 중간중간에 회상 장면, 과거에 있었던 일 등의 에피소드를 잘 섞어 넣어 독자가 궁금할 수 있는 점들을 해소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따라가게 만들면서 서서히 긴장이 고조되어감에 따라 독자 입장에서 딸려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렇다보니, 책의 두께가 나름 두꺼운 편에 속함에도 읽는 데 있어서 전혀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둘째, 전반적으로 묘사력이 탁월하다.

작중 배경장소나 심적 상태를 묘사하는 부분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묘사 능력에 감탄한다. 어떤 부분은 그냥 읊조리듯, 어떤 땐 색채를 터치하듯, 다른 땐 다소 역동적이어서 마치 동영상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도쿄에 있는 유타카를 만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독은 도쿄에 갔던 예전보다 더 부풀어 올라 허무한 마음이 온몸을 적셨다.”(165)

“이쪽은 덥긴 하지만 고향과는 종류가 다른 느낌이 나요. 저쪽의 여름은 거의 냄비 같거든요. 졸인다고 할까요? 사람을요. 더구나 물 없는 찜통 같아요. 수분이 쪽쪽 빨리는 느낌이에요.”(p225)

“(호른의) 롱톤이 울려 퍼졌다. 몸이 소리에 공명했고 떨렸다. 공기의 모양이 달라졌다. 심지가 있는 음이면서도 질감은 포근해서, 얻어맞은 충격과 동시에 어루만지는 듯한 자애로운 느낌이었다.”(p228)

“재미있었어. 요리가 웃으면서 춤추는 느낌이야.”(p251)

“땅에 비치는 미우라의 그림자를 보았다. 크게 뻗은 그림자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어서, 왠지 거인이 볼링에서 스트라이크를 쳤을 때 같다고 이루루는 남몰래 웃었다.”(p253)

“젠야의 음이 몸에 가득 차 흘러넘쳐 녹슨 철의 표면이 뒤집혀서 떨어지듯이 나오시를 서걱서걱 벗겨나갔다.”(p498)



셋째, 자유로운 필력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찰나의 내적 심정을 전혀 거리낌 없이, 막힘없이 자유롭게 써내려갈 수 있을까? 단적인 예로, ‘엔메이학원고등학교 축제’ 중에 예기치 못한 나오시와 유타카가 저지른 ‘기습 공연’ 당시 유타카의 기타 연주에 대해 나오시가 느낀 생각과 감탄을 한꺼번에 몰아치듯 약 2페이지(p436~437)에 걸쳐 써내려간 필력을 들 수 있겠다.


넷째, 소설 중간중간 명언과도 같은 문구들이 빛난다.

몇 개만 예로 들어본다.

“기쁠 때 무엇을 먹는지보다 슬플 때 무엇을 먹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p141)

“무화과의 꽃은 바깥에서 보이지 않아 무화과라고 쓴다고 합니다. 못난이 나무로 보여도 무화과에는 숨겨지니 아름다움이 있습니다.”(p184)

“그만두긴. 좋아하는 거잖아. 그래서 관두면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남한테 도둑맞는 거잖아. 내 취향은 내가 지킬 거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어.”(p249)

“대상에게 변화하기를 원하고, 안정감을 타파하려는 요구가 점점 강해지고, 상대는 기대에 부응하기 힘들어지고, 그러다 충돌해서 참을 수 없어져서 끝나지.”(p263)

“석면을 생각했다. 예전에는 편리하다며 중요하게 여기던 재료가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서 나쁜 것이 되는 이치는 대체 뭐란 말인가.”(p285)

“단순한 말로 칭찬했으니 친해졌잖아. 친해지고 싶으면 알기 쉽게 해야지.”(p296)

“(꽃의) 예쁜 부분만 본다면 본질은 모를 거라고 생각해. 이 꽃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알뿌리를 심은 우리뿐이야.”(p330)


다섯째, 매개물의 적절한 활용이다.

소설 속에 ‘얼터네이트’라는 앱이 연결의 매개물로 관통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매개물만으로 3명이나 되는 주인공과 그들 주변의 다양한 인물들을 모두 연결해내기는 벅찼을 것 같다. 작가는 똘똘하게도 각각의 인물과 인물을 자연스럽게 이으면서도 인물 스토리 전개 상 일종의 ‘복선’과도 같은 매개물들을 곳곳에 등장시켰다.

우선 ‘옥수수’다.

[제1장 종자]의 처음에 원예부원과 요리부원, 그리고 지도교사인 ‘사사가와’ 선생님이 학교 텃밭에 옥수수 씨를 심는 장면이 나오는데, 파낸 구덩이 한 곳에 씨앗 3개를 심자 “세 개 다 싹이 나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신입부원의 질문에 ‘두 개는 잘라낸다’는 답변이었고 이루루는 ‘한 식물을 지키기 위해 불필요한 존재를 잘라낸다는 선택이 정말 타당한지 늘 생각에 잠기게 된다’(p14)고 했다. 이것 관련하여, 후반부에 ‘원포션’결선 이후 이루루와 아빠 간에 어색한 관계가 해소되려는 시점에 ‘콩’과 ‘콩나물’중에서 “전부를 선택할 수는 없어.”(p476)라는 아빠의 말에 이루루는 ‘옥수수싹’을 연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옥수수’는 니미 이루루와 미우라 에이지가 처음 말문을 트게 되는 매개로 작용한다. 그리고 둘 간 교제에 ‘위크엔드시트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크엔드시트론. 주말에 소중한 사람과 먹기 위한 레몬케이크... 사귀어줄래?”(p252)



다라오카 나오시와 안베 유타카 사이에 어릴 적 공통의 기억 속에 민요 ‘찻잎 따기’가 있었고, 이 음악은 추후 축제 중의 ‘기습 공연 사건’을 통해 둘만의 관계 개선의 매개물로 작용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록그룹 ‘젠야’도 매개체로써 한몫을 한다.

그리고 다라오카 나오시와 사에야마 미우 간의 첫 대면과 그리움의 매개체로 ‘학교 교회 건물 파이프오르간’이 등장하고, 둘 간의 첫 만남과 대화, 오해, 고백의 매개 장소는 ‘제방’이다.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축제’와 ‘원포션’ 결선을 통해서 교차 편집을 한 듯 빠르고 짧은 연출을 연속적으로 감행하였다. ‘니미 이루루’, ‘반 나즈’, ‘다라오카 나오시’가 지니고 있던 불안요소와 고조되었던 갈등은, 축제 속 나오시의 드럼과 유타카의 기타가 만들어내는 연주 음악이 축제 장소와 원포션 결선 장소 2곳의 공간을 아우르듯 공감각적으로 울려 퍼지게 만든 상황에서, 폭발적으로 전개되어 흘렀다.

그리고 마지막 2개의 장에서 고조되었던 긴장감이 봄날의 벚꽃이 샤랄라 휘날리듯 해소된다.



이 책 <얼터네이트>를 다 읽고 난 소감은, “청춘 드라마 한 편을 본 것 같다”는 것이다. 그냥 본 게 아니라, “몰입해서 보다보니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까?

이 몰입감은, 작가의 필력이나 구성력, 묘사력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번역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번역예술가’ 김현화 님의 유려한 번역이 이 책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었고, <보통의 것이 좋아>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반지수 작가의 일러스트가 청춘드라마적인 책의 성격을 제대로 표현해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