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 재건축 열풍에서 아파트 민주주의까지, 인류학자의 아파트 탐사기
정헌목 지음 / 반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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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ogimukja.blog.me/221169108490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처음에는 대도시 중심으로 아파트가 대단지로 들어서더니, 지금은 전국 어디나 아파트가 대단지로 들어서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문화인류학 전공자로서, 구체적인 현장조사를 통해 한국형 대단지 아파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구했다. 나는 사실 문화인류학에 문외한기에, 이 책을 읽으며 문화인류학이 오지에서 살아가는 원시부족을 연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지극히 가까이 있는 것도 연구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아파트가 이렇게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여태껏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일반 주택에 살았다. 나는 아파트에 놀러 간 적은 있지만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본 적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만약 내가 아파트에 오랫동안 살았다면 나의 성격에 그 주거환경이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는 말 그대로 재건축 아파트를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 입주민들이 노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가치"라는 말이 오해의 여지가 있다. 재건축 아파트 입주민들이 생각하는 "가치"있는 아파트는 살기 좋고 편한 아파트가 아니다. 입주민들이 생각하는 "가치"있는 아파트는 판매 "가치"가 있는 아파트다. 프리미엄이 붙을 만한 "가치"가 있는 아파트다. 이는 아파트를 주거의 대상이 아니라, 매매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파트를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적인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파트 입주민들은 아파트를 어떻게 하면 비싸게 팔 수 있지를 먼저 생각하지, 이곳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일까? 막상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 아파트 입주민들은 아파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매우 무관심해진다. 아파트 매매가를 제외한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아파트의 문화를 "무관심의 문화"라고 정의한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무관심하다. 아파트에 같이 사는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무관심하다. 

한국 대형교회는 최근까지도 아파트 대단지의 종교부지를 분양받아 큰 건물을 올려 교세를 확장하는 선교 방식을 지향하였다. 이는 참으로 한국적이며, 한국의 아파트 문화에 적합한 선교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파트 대단지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 아파트에 만연한 무관심의 문화를 교회에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교회의 교인들이 다른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다. 왜냐하면 괜히 교회 내 인간관계에 얽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설교만 듣고, 축도 끝나자마자 집에 가는 게 편하다. 그리고 교인들이 사람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담임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던지, 교회 내 재정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부교역자들이 어떤 처우와 환경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무관심하다. 이처럼 아파트 공화국에서 한국교회는 아파트 교회가 되고 말았다. 아파트에 의한 아파트를 위한 아파트의 교회가 된 한국교회는 과연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종교부지에 커다랗게 교회 건물은 지었건만 대출금을 갚지 못해 헉헉대는 여러 교회가 생각나 마음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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