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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상처 입은 용
윤이상.루이제 린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평점 :
이 책은 여러모로 역사적인 책이다. 왜냐하면 윤이상 작곡가의 생애를 대담 형식으로 독일의 문학인 루이제 린저가 엮은 책이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은 한국인의 생애를 독일인이 독일어 책으로 만들고, 그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그렇다면 왜 윤이상은 자기 스스로 한국어로 자서전을 쓰지 못했을까? 아마 그 이유는 '동백림 사건'으로 인하여 남한에 여전히 그를 '빨갱이 작곡가'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기에, 그가 자신의 모국어로 자신의 생애를 담은 책을 출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루이제 린저라는 독일인에게 1917년부터 약 60여 년 동안 있었던 그의 삶을 담담하게 진술한다. 루이제 린저는 그의 삶을 음악적으로, 문학적으로 때로는 종교적으로 충실하게 재해석한다.
윤이상 작곡가는 한국음악과 세계 음악의 창조적 퓨전을 지향하였다. 그는 서양음악의 악기로 한국음악의 고유한 음색을 표현하려 했다. 이는 서양인들의 귀에 매우 이국적이며, 이색적인 음색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첼로를 가지고 해금의 음색을 표현하고, 오보에를 가지고 대금의 음색을 표현하였다면 이는 얼마나 신비로운 음악이 될 것인가?
그러나 윤이상 작곡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동백림 사건'으로 인해 남한에서 오해 아닌 오해를 많이 받았다. '동백림 사건'은 유신정권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안기부를 동원하여 조작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윤이상이 그 조작의 가장 큰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남한 국민들 대다수는 한동안 윤이상을 독일에서 활동하는 '종북 음악인'으로 오해했다. 만약 '동백림 사건'과 윤이상과의 관계를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이정민 군이 쓴 석사 논문 '東伯林事件을 둘러싼 南韓政府와 西獨政府의 外交葛藤'(2011)을 찾아서 읽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논문은 동백림 사건이 한국 정부와 서독 정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윤이상 작곡가가 석방되기까지 서독 정부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윤이상은 이 책에서 자기 자신이 그 누구의 음악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는 제2의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 위해 음악을 공부했다.
언젠가 누가 나에게 대체 어떤 음악을 쓰는 거냐고, 동양적인지, 서양적인지, 아니면 또 무엇인지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나의 음악을 쓰고 있는 거다"라고요. 나는 이런 질문은 아주 하찮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음악에서 정신적으로는 동양의 원천에 서있고 한국 음의 이미지를 서양 현대 작곡 기법의 도움을 빌어 음악화하고 있는 겁니다. -95p.
인간은 모방을 통하여 성장하고, 창조를 통하여 성취한다. 모방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고, 창조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다. 윤이상 작곡가의 생애를 살펴보며, 한국 신학계가 얼마 전부터 표절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가 한국의 신학자들이 서양의 신학을 모방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무엇인가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에는 서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계의 윤이상이 등장하여야 한다. 서양 신학과 동양 신학의 조화와 융합을 통해 새로운 신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그런 신학 말이다. 영광과 아픔이 공존하였던 윤이상의 생애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흡사한 부분이 많았다. 비록 그가 일평생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