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철학자
도마노 잇토쿠 지음,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가끔 책을 읽으면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책의 내용이 다를 때가 있다. 어떤 경우는 그럴 때 책에 대해서 실망하지만, 어떤 경우는 그럴 때 나의 선입견을 내려놓고 더 차분히 책에 몰입하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철학자]는 내게 후자에 속하는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의 제목만 보고 당연히, 서양 철학자들의 유년시절에 관한 책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이 책은 저자의 철학적 자서전이었다. 사실 자서전이라는 것은 저자에 대해서 평소부터 관심이 있다거나 더 알고 싶은 사람이 읽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도마노 잇토쿠의 책은 국내에 단 한권도 소개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저자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체 저자의 자서전을 읽고 말았다. 끝까지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소감은 저자의 삶이 아주 흥미롭다는 점이다. 저자는 유년시절부터 남과는 다른 삶을 선택해서, 그것이 득이 될 때도 있었지만, 독이 될 때도 있었다. 저자는 어떤 때는 왕따도 당하고, 어떤 때는 인기스타가 되어 학교를 주름 잡을 때도 있었고, 우울증이 와서 누구도 만나지 않고 방에 처박혀 있을 때도 있었고, 조증이 와서 23일 동안 쉬지 않고 박장대소만 한 적도 있었다. 1980년 생인 저자의 삶이 그리 길지 않지만, 내게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잘 경험하지 못할 급격한 변화를 그의 인생에서 자주 경험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은 바로 재일교포인 다케다 세이지 교수를 만난 것이다. 철학자인 다케다 세이지 교수의 밑에서 박사과정을 거치며 저자는 철학의 깊이와 넓이를 더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철학 수행이 시작되었다.

다케다 세이지 교수는 자신의 제자에게 먼저 1년간 막대한 과제를 내주었다. [세계의 명저] 시리즈 중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 루소, 칸트, 헤겔 같은 고대와 근현대 철학자들의 명저를 포함하여 60권 정도를 1년 동안 전부 읽고, 한 권당 2-3만 자 정도, 긴 것은 5만 자를 넘는 상세한 요약본을 작성해야 한다.

이것이 다케다 세이지 교수로부터 받은 과제였다. -201p.

 

이렇게 저자는 다케다 세이지 교수 밑에서 철저하게 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철학의 역사를 톱아보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철학적 사명을 자각하는 것이다. 나는 저자가 철학자로서 홀로 설 수 있게 된 계기가 바로 저 철저한 철학 공부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케다 세이지 교수의 책은 국내에 4권 정도 번역되었는데, 제자의 책을 통해서 만난 다케다 세이지 교수의 풍모가 위대하기에, 다케다 교수의 철학 책도 조만간 읽어보고 싶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다 읽고 또 느낀 것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다 보면 그 안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사는 사람, 나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을 통해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를 배운다. 저자처럼 누구나 직업적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만의 철학은 필요하다. 철학은 삶의 기술이고, 삶은 철학의 실험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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